월출산 벚꽃 백 리 길[186]
■ 구림마을(95)

구림마을 육우당 야경. 대문이 낡아 수리 보수를 위해 띠가 둘러쳐져 있다. 
구림마을 육우당 야경. 대문이 낡아 수리 보수를 위해 띠가 둘러쳐져 있다. 

불확실한 내용의 육우당 안내판
이전 글에서 말했듯이 육우당 안내판에는 지역에 전해오는 이야기와 맞지 않는 내용의 설명이 적혀있다.

「(중략) 육우당(六友堂) 현판은 어린 시절 우리 지역에서 공부하여 봉래 양사언, 추사 김정희 등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명필 중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는 석봉 한호(石峯 韓濩)가 썼다. 특히 우리 지역은 한석봉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전하는데 이곳은 그 유명한 한석봉과 어머니의 ‘글씨와 떡 썰기 시합’의 설화가 전해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며, 개성에서 태어난 한석봉이 스승 영계 신희남을 따라와 공부했다고 전해지는 덕진명 영보리 일대와 어머니가 떡장사를 한 곳으로 알려진 학산면 독천시장 등이 그곳이다.」

첫째, “이곳은 그 유명한 한석봉과 어머니의 ‘글씨와 떡 썰기 시합’의 설화가 전해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며”라고 설명해 놓았는데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구림마을을 방문한 사람들이 이 안내판을 보고 ‘한석봉 어머니가 육우당에 살면서 글쓰기와 떡 썰기 시합을 한 곳’으로 오해하도록 유도하는 문장이다. 

둘째, “어머니가 떡장사를 한 곳으로 알려진 학산면 독천시장”이라고 했는데 이것 역시 사실이 아니다. 한석봉 어머니가 떡 장사를 한 곳은 용산리 아시내(아천포) 장터였다. 아시내 시장은 훗날 독천 천변에 우시장이 생기고 상권이 발달하면서 독천으로 옮겨갔다. 한석봉 어머니는 용산리 ‘한새동’에서 살았고, 그 시절에는 용산리 아천포구에 시장이 있었다.

잘못된 정보, 언론에 계속 이어져
이렇다 보니 외지 사람들이 와서 육우당 안내판 내용을 액면 그대로 믿고  한석봉 어머니가 구림마을 육우당에 살면서 독천 시장에 떡을 팔았던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구림의 문화역사를 취재하여 알리는 언론 기자들이 앞장서서 잘못된 정보를 보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 예로, 동아일보 안영배 기자는 2022년 12월 17일 자 문화면에 다음과 같은 구림마을 소개 글을 실었다.

“함양 박씨 가문이 세운 육우당의 현판은 명필 한석봉의 글씨다. 한석봉은 스승인 신희남을 따라 영암으로 내려와 죽림정사에 머물며 공부했다고 전해진다. 한석봉과 어머니가 글쓰기와 떡 썰기 시합을 했다는 곳도 바로 이 구림마을이라고 한다.”

또 세계일보 최현태 기자는 2023년 3월 26일 자 문화면에 구림마을을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실었다. 

“대동계 문서 건물 옆 육우당(六友堂)으로 들어서니 한눈에도 범상치 않은 현판의 글씨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양사언·김정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명필로 꼽히는 한석봉의 글씨. 유명한 한석봉과 어머니의 ‘글쓰기와 떡 썰기 시합’ 설화가 전해지는 곳이 바로 구림마을이다. 개성에서 태어난 한석봉은 스승을 따라 덕진면 영보리로 거처를 옮겼고 어머니는 학산면 독천시장에서 떡장사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데일리호남 양준호 기자는 2024년 11월 4일 자 정치·행정 지면에 “구림마을은 어머니와 한석봉이 촛불을 끄고 ‘글쓰기와 떡 썰기 시합’을 했다는 설화가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이 외에도 오마이뉴스를 비롯한 여러 언론과 개인 블로거나 유튜버들이 이와같은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영암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구림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왜곡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은 구림마을의 정체성에 혼란을 가져다주는 일이며, ‘영암 관광’ 이미지에도 바람직스럽지 못한 일이다.

학산면 용산리 한석봉터와 아시내 장터
구림의 이웃 마을인 학산면 용산리에 한석봉 어머니가 살았던 한새동 집터와 떡 장사를 했던 아시내 장터 흔적이 남아 있다. 영암군에서 발간한 ‘영암의 땅 이름’ 학산면 용산리 편을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한새동은 한새미 혹은 한새머리동의 의미다. 학이 구고에서 목을 길게 빼고 먹이를 찾는 형상이다. 마을에서 남쪽으로 질펀하고 메마른 들판이 있다. 여기에 여러 군데 빈터가 있는데 여기저기에서 사기 조각이 나온다. 여기를 ‘한석봉터’라 전한다. 그 위 반월산에 ‘한 씨의 묘’라는 고총이 있다. 한석봉은 글공부를 하기 위해 집을 떠났고, 어머니는 아시내 장터에서 떡장수를 하였다.” 

한석봉이 공부를 했던 곳은 덕진면 영보리 신희남 선생이 지도하던 죽림정사였고, 한석봉 어머니가 실제 거주하면서 떡 장사를 했던 곳은 학산면 용산리 아시내 장터였던 것이다.

없는 것을 억지로 꾸미지는 말아야
구림마을 육우당 현판이 한석봉 글씨라고 해서 육우당이 한석봉 어머니가 살았던 집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육우당은 기문에 적혀있듯이 박흡 장군을 비롯한 6형제가 우애를 나누며 살았던 집이다. 구림마을을 널리 알리고 홍보하는 일은 꼭 필요한 것이지만 없는 것을 억지로 꾸미는 일은 삼가야 한다. 스토리 텔링 기법이란 없는 것을 꾸미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는 것에 창의적이고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입혀 돋보이게 하는 것’을 말한다. 

구림마을에는 실제 있는 것을 잘 활용하는 일이 절실히 필요하다. 굳이 기존에 있는 훌륭한 역사·문화·인물 자원을 놔두고 있지도 않은 것들을 끌어다가 구림마을의 전통과 정체성에 혼란을 줄 필요는 없다. 

이참에 영암의 역사문화 관광지에 설치된 안내판 내용을 제대로 검증하여 잘못 된 내용은 고치고 새로 보완할 내용은 제대로 첨부했으면 한다.<계속>


  글/사진 김창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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