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가깝고도 먼 이웃이다. 필자는 30년간 오랜 기자 생활을 하면서 일본을 많이 다녔다. 정치부 기자로 각종 행사와 다큐멘터리 특집취재를 많이 했다. 그리고 휴가 때에는 도쿄와 오사카, 교토 등 주요 대도시를 둘러보았다. 특히 일본에는 좋아하는 골프 여행으로 여름에는 북해도, 홋카이도 그리고 봄가을에는 미야자키, 후쿠오카 등 골고루 여행했다.
1992년 5월에는 제14대 우리나라 국회 개원을 앞두고 영국·스페인에 이어 일본 정치 제도를 취재했다. 해외 다큐멘터리 '선진의회 정치' 보도특집이다. 우리나라 국회가 선진국처럼 크게 변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사례를 취재해 보도했다. 영국과 스웨덴 국회의원들은 자신이 직접 자동차를 운전했고, 자전거로 의회에 출퇴근하는 내용을 크게 보도했다. 당시 취재에서 일본의원들은 지역구에서 도쿄로 오갈때에는 반드시 신칸센 열차를 이용했다. 도쿄에 오면 렌터카를 반드시 이용하고, 일본의원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일본의사당은 내부가 대부분 오래된 전통이 있는 나무로 장식되어 있다. 국회의원 의자와 바닥의 카펫은 여기저기 얼룩져 있으나 깨끗이 청소해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일본의 전통이었다. 그 이유는 예산을 아끼고, 선배들이 사용한 훌륭한 전통을 이어받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국회는 개원 떄마다 카펫을 갈고 책상과 의자를 바꾸는 것과 비교되었다. 1987년 필자는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와 김용환 정책의장 일행과 일본방문 취재를 했다. 당시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이 김종필 총재 일행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이날 김총재와 신 회장은 한일정치와 경제발전현안에 대해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필자는 신격호 회장의 매우 소탈한 대화에서 롯데 기업을 일으킨 훌륭한 인품에 감동받은 기억이 난다.
올해 들어 우리나라 관광객의 일본여행이 크게 늘고 있다. 일본의 관광객이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인이 일본을 찾는 이유는 2023년 7월 31일 엔저의 영향과 지역 관광지의 인기가 높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에 약 312만9천명의 한국인이 일본을 방문했다. 이는 일본이 한국방문의 3.6배에 해당한다. 상반기 일본방문은 한국뿐만 아니다. 대만, 홍콩, 미국인 등 다양한 외국인들의 관심이 모아져 일본 관광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세월이 흘러 일본의 추억을 더듬어 아주 특별한 기획으로 우리가족 3남매의 일본여행을 추진했다. 지난 4월 19일 3박4일 패키지로 일본 큐수, 쿠마모토, 뱃푸, 훗쿠오카를 다녀왔다. 우리 3남매는 누님이 83세, 동생이 77세로 모두가 혈연으로 똘똘 뭉친 멤버다. 염색을 하지 않았으면 모두가 백발의 중노인이다. 이번 여행은 해방 전까지 일본 오사카에서 사셨던 아버지의 생각이나 일본으로 여행지를 정했다. 새벽 5시에 인천국제공항에서 일본 나가사끼 공항에 1시간40분 만에 도착했다. 여행사 가이드의 안내로 70대 전후의 관광객이 봄소풍하는 어린이 기분을 맛보게 했다. 후쿠오카 작은 베네치아 야나가와에 도착했다. 도시의 크고 작은 수도를 따라 선상 유람이 시작됐다. 쪽배 10여 대가 한국관광객을 태우고 도시 속의 수로를 따라 선상 유람을 즐겼다. 일본인 뱃사공은 '이 나이가 어때서' 등 한국노래를 신나게 불러 박수갈채를 받았다. 일본이 한국관광객 유치를 위해 여러 가지 아이디어와 노력의 흔적이 여기저기 보였다. 작은 교토라고 불리는 마을, 전쟁피해가 없는 전통마을, 바둑판식 마을구조로 300년 이상 보존된 아기자기한 상가들이 그림처럼 널려 있다. 최근 아파트까지 짓는 한국의 농촌과는 달리 한 폭의 그림 같은 마을 전경이 보일 때는 일본의 농촌이 한없이 부러웠다. 이번 일본여행에서 가장 하이라이트는 큐수에서 손꼽히는 '츠에다테히젠야호텔'의 숙박이었다. 관광객들은 자연과 어울린 이 호텔에서 넋을 잃었다. 흐르는 강과 50여 m의 절벽을 이루는 자연경관에 폭포수가 흐르고, 맑은 계곡물을 마시고 싶을 정도다. 이 호텔에는 실내온천장과 자연 속의 노천욕을 즐길 수 있다. 호텔에 들어서면 일본기모노 전통의상을 입고, 일본전통 음식상 앞에 앉으면 관광객이 왕이 된 듯, 기분이 좋아진다. 음식도 한국인 관광객들의 입맛을 매료시켜준다. 술 한잔과 스시 등 한국의 입맛이 딱 들어맞아 저절로 흥이 난다. 한국관광객을 유치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일본의 상술에 놀랐다. 쿠마모토와 구로가와 온천마을도 유명했다. 2009년 온천지 별 2개를 받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온천이다. 마을 전체가 온천으로 대자연과 함께 노천탕이 유명해 아름다운 일본 관광지로 돋보인다. 또 3억년 전에 고생대에서 형성된 이즈나미 수중 종유동굴은 30만년 전 아소 화산의 대분화로 형성됐다고 한다. 200여 m 동굴의 내부를 관광하면 연못 속에 깨끗한 생수와 기암괴석들이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일본 최고의 경지를 조망할 수 있는 해발 936m 다이칸보 전망대와 북의륜산의 정상이 유명하고, 관광명소 하라지리 폭포. 튜립 농장도 눈길을 끈다.
이번 여행에서 과거 6.25전쟁 이후 처참했던 영암 고향의 유년 시절이 돌아가신 아버지의 넋과 함께 어머님이 모습이 자꾸 떠올라 3남매의 가슴을 울렸다. 당시 영암에는 모두가 가난하여 하루 3끼 먹기도 힘들었다. 당시 초등학교 시절 옆집에서는 보리밥을 먹는데 우리는 가난해서 보릿가루로 죽을 써 허기를 채웠다. 겨울철 난방을 위해 월출산 줄기 야산에서 죽은 나뭇가지와 노란 솔잎을 망태에 넣어 짊어졌던 소년 시절의 추억도 생각이 났다. 우리 3남매의 아주 특별한 3박 4일의 이번 일본여행은 먼저 가신 아버지의 일본 흔적을 기리고 우리 3남매를 백발이 되도록 건강하게 잘 살게 해주신 어머니를 추모하는 여행이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