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농현장 급습, 영암·나주 등 300명 이상 체포당해
농가·인력업체들, 수확기 인력 못구해 ‘발동동’ 원성

농촌에 일손이 가장 많이 필요한 농번기, 출입국관리소의 불법체류 외국인 단속이 한 달 넘게 이어지면서 파장이 만만치 않다.

양파, 마늘, 고추 등 수확기를 앞두고 외국인 노동자에 의존해온 농가들과 인력업체들이 갑작스러운 단속에 농사에 차질을 빚어 큰 피해를 입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이 영암지역 고구마 파종 현장에서 불법체류자 단속을 벌이고 있다. 현장에 있던 한 외국인 근로자가 단속 상황을 실시간 방송으로 알리며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출입국사무소, 5월부터 ‘불시 단속’ = 법무부 산하 서울 출입국사무소는 지난 5월부터 해남지역을 시작으로 최근에는 신북면과 시종면 등 영암지역 고구마 주산지를 중심으로 불법체류자에 대한 특별단속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 

특히 이번 단속은 서울출입국관리소가 주도하고 있으며, 예년과 달리 목포, 광주 출입국관리사무소와의 협조 없이 독단적으로 단속에 나서 10일 하룻만에 나주, 강진, 영암 등에서 300명 이상의 불법체류자를 체포해 농민들의 거센 원성을 사고 있다. 

더구나 사전 통보 없이 이뤄지는 ‘불시 단속’ 방식으로 인해 영암지역은 농작업 도중 70여 명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현장에서 적발돼 조사 중이며 일부 외국인은 단속을 피해 잠적하는 사태가 빚어져 고구마 농가에서는 파종 작업에 큰 차질을 빚고 있다.

고구마 농사를 짓고 있는 신북면의 한 농민은 “인건비는 계속 오르고, 한국 사람은 일손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매년 이맘때면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도저히 농사일을 감당할 수가 없다”며 “출입국사무소 직원들이 갑자기 밭으로 들이닥치는데 정말 속수무책이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시종면 농가는 “고구마 파종이 한창일 때 출입국사무소에서 외국인 인력을 체포했다. 지금 사람을 새로 구할 수도 없고, 단속으로 빠진 인력만큼 일손의 공백이 크다”며 “당장 눈앞의 수확량 감소는 물론, 계약 물량을 맞추지 못해 거래처와의 신뢰에도 금이 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손 부족한데…정부는 단속만” = 인력중개업체를 운영 중인 A씨는 단속 실태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계절근로자 제도가 농가에 도움이 되긴 하지만, 최대 8개월 체류 제한이라는 단점이 있다. 일을 조금 배울 만하면 돌아가야 하니 효율이 떨어진다”며 “그렇다고 불법체류자를 대체할 인력이 없는 상황에서 정부가 단속만 강화하니 농민과 업체가 양쪽에서 협공당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권이 바뀐 이후 출입국관리소의 단속 방식이 너무 실적 위주로 흐르고 있다. 일부 단속 사례를 보면, 외국인을 통해 고용 농가나 업체를 역추적해 실적을 올리기 위한 회유성 접근도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제도적 한계, 유연하고 현실적인 대안 시급 = 이 같은 상황은 단순히 개별 농가의 문제가 아닌, 전국적인 농업 구조의 불균형과 외국인 노동력에 대한 제도적 한계를 드러낸다. 특히 외국인 계절근로자 제도는 단기 체류로 인해 반복적인 숙련도 저하 문제가 발생하며, 농촌에서는 ‘일할 사람은 없고, 단속만 있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암군은 최근 일부 농가에서 제기하고 있는 법무부 단속강화 요청 사실에 관한 오해를 바로잡고자 해명 문자를  발송했다.
영암군은 최근 일부 농가에서 제기하고 있는 법무부 단속강화 요청 사실에 관한 오해를 바로잡고자 해명 문자를  발송했다.

영암군 통계에 따르면, 한 해 동안 영암군 11개 읍·면에서 필요한 농업 노동력은 약 11만 명에 달하지만, 국내 인력으로는 이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약 85% 정도가 외국인 근로자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농업계에서는 △계절근로자 체류기간 확대 △농업특화 장기비자 도입 △농번기 단속유예 △정부 차원의 외국인 노동자 관리 전담기구 설치 등 보다 유연하고 현실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지방 정부 차원에서도 농가와 인력업체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협의체 구성과 단속 전 사전 고지제 도입 등의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농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농촌의 인력난은 단지 농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다”면서 “우리의 식탁에 올라오는 먹거리의 생산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는 현장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제도 개선과 실효성 있는 노동 정책 마련에 속도를 내야 할 시점이다”고 지적했다.

군 관계자는 “현재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있으며, 영암군은 전남도와 출입국관리사무소와 긴밀히 협조해 농민들의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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