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 벚꽃 백 리 길[183]
■ 구림마을(92)
현유후(玄裕後, 1598~1665)
현유후는 현건(玄健, 1572~1656)의 아들로 인조 2년(1624)에 사마시(司馬試) 증광시(增廣試)에 삼등(三等)으로 합격했다. 현건은 군자주부(軍資主簿) 감역공(監役公)을 지냈으며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교분이 있어 이순신 장군이 현건에게 보낸 서찰 일부가 전해지고 있다. 1793년에 편찬된 ‘영암읍지’에는 회사정을 조행립, 현건, 박성오가 향약을 베풀고 신의를 강의하는 곳이라 소개하고 있다. 부친인 현건의 숨결이 가득한 회사정에 현유후가 상량문을 써서 남겼으니 이는 부자(父子)가 함께 구림마을 공동체의 발전에 이바지했음을 말해주는 뚜렷한 흔적이다.
한편 현유후가 사마시 증광시에 합격했다고 ‘사마방목’(司馬榜目)에 기록되어 있는데 사마시·증광시가 무엇을 뜻하는지 조선의 과거 제도에 대해 잠깐 살펴보기로 한다.
조선 시대의 과거 제도
조선 시대의 과거 제도는 크게 문과, 무과, 잡과로 나눠진다. 문과(文科)는 소과와 대과로 나눠지는데 문과 지망자는 소과(小科)인 생원·진사 시험을 거쳐서 성균관에 입학한 다음 다시 대과(大科)인 문과에 합격해야 요직으로 나갈 수 있었다. 소과를 사마시(司馬試)라고 불렀으며 생원⋅진사를 뽑는 시험이라고 하여 생진시(生進試)라고도 칭하였다. 생원과 진사가 되면 바로 하급관원이 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문과(대과)에 다시 응시하거나 성균관에 진학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증광시는 비정기시험
현유후가 합격한 사마시(소과)는 1차 시험인 초시(初試)에서 7배 수를 뽑았는데, 이는 각 도의 인구비율로 강제 배분되었다. 그러나 2차 시험인 복시에서는 도별 안배를 없애고 성적순으로 뽑았다. 합격자에게는 흰 종이에 쓴 합격증을 주었는데 이를 백패(白牌)라고 한다. 대과는 성균관 유생 및 소과를 거친 생원이나 진사 등이 응시하였다.
과거시험은 정기로 3년마다 실시하는 식년시(式年試)가 기본인데, 이외에도 비정기시험인 증광시(增廣試), 임금이 성균관에서 문묘를 배알하고 치르는 알성시(謁聖試), 그리고 국가의 경사가 있을 때 시행하는 경과(慶科) 등이 있었다.
다음은 지난 호에 이어 현유후가 쓴 상량문 나머지 내용이다.
현유후가 쓴 회사정 상량문
도끼질하고 톱질함에 공적은 고개 돌리는 사이에 완성될 것을 기대하고, 이에 경영을 하여감에 혹 노는 손을 빌리기도 하였네. 오정(五丁, 다섯 명의 힘센 사람)을 몰아 지봉(鳷峯)의 돌 캐내니 열 개의 주초석이 흡사 반석처럼 튼튼하고, 천 명 일꾼을 고취하여 금산(金山)의 재목 운반하니 사방의 마룻대 무지개처럼 들려졌네. 우뚝한 일곱 도리가 높이 걸리니 조각한 난간에서 쳐다보이고, 널따란 여섯 칸 집이 특별히 열리니 모두 공수하고 내려다보네.
장강(長江) 물가에 임해 있는 등왕각도 이보다 더 호사스럽지 않으며, 동정호에 있는 악양루도 어찌 이보다 더 사치스러우랴.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 아니니, 하루도 되지 않아 이루어졌네.
깊숙한 집은 봄을 머금으니 전욱(顓頊)은 도리어 돌아갈 생각 잊고, 그늘진 추녀 여름을 막아 주니 축융(祝融)은 응당 몰래 점거할 이유 없으리라.
나는 듯한 처마 가을을 가벼이 여겨 욕수(蓐收, 가을을 주관하는 신, 金神)가 제창해도 겨우 층계 오를 것 생각하고, 긴 처마 눈을 업신여겨 청녀(靑女, 서리를 주관하는 여신)가 만무해도 당에 오르지 못할 것 알겠네. 추위와 더위가 바뀌는 것 무어 걱정하랴.
사대부를 함께 모이는 데 장소를 얻었도다. 이 정자에 올라 보니 눈에 드는 문벌 높은 집안들, 사람들의 소리를 따르니 자리에는 뛰어난 영웅 준걸들, 염치에 힘쓰고 예약을 강론하니 군자로구나 이러한 사람이여, 풍월을 논하고 거문고 노래 연주하니 좋은 일이로구나 이러한 사(社)여, 태사(太史)로 하여금 다시 덕성(德星)이 나타났음을 아뢰게 하고, 좋은 화공으로 하여금 영원히 그림으로 전하게 해야 하리.
옛 마을에서 예용(禮容, 예의에 맞는 거동)을 창도하니, 때는 늦봄으로, 새로운 정자에서 풍경을 끌어당김에 마음으로 지난날의 일 사모하네. 함께 기로들의 짧은 시를 찬미하고, 모두 아랑위의 상량(上樑)을 거행하노라.
아랑위! 들보를 동쪽으로 던져라. 동악의 천 봉우리 반쯤 허공에 꽂혔네.
성대함은 바로 서촉까지 다하니, 왕발, 양형, 사마상여가 영웅호걸이로구나.
아랑위! 들보를 서쪽으로 던져라. 서호의 일곡에 두 고산이 가지런하네.
풍류는 바로 임화정과 같으니, 어느 곳이 매화 처사의 길인가.
아랑위! 들보를 남쪽으로 던져라. 남산의 학 고개에 상서로우 기운 무성하네.
도사는 이미 떠났으니 누가 이을 줄 알까. 남긴 자취 오래 남아 노인들이 이야기하네.
아랑위! 들보를 북쪽으로 던져라. 천자나 되는 북쪽의 소나무 북극성에 닿겠네. 푸른 솔 흩어있고 도는 숫돌 같은데, 황화(皇華)는 몇 번이나 오갔던가.
아랑위! 들보를 위쪽으로 던져라. 상천은 찬란하게 천 길에 임하였네.
밝은 해와 달이 마음을 비추니, 문(文)이 여기 있지 않는가. 하늘이 없애지 않으리.
아랑위! 들보를 아래쪽으로 던져라. 하류의 맑은 냇물 그치지 않고 흐르네.
삼월의 춘풍에 작은 수레 마련토록 하니, 누가 우리들이 꽃 보러 가는 줄 알 것인가.
삼가 바라건대, 상량한 후에는 크고 아름다운 건물 바뀌지 않고, 완전한 아름다움 꺾이지 않게 하소서.
용마루와 지붕 가만히 보면, 산천은 드넓어 상서로운 바람 일렁이고, 계단에 앉아서 바라보면 대숲은 그늘져서 상서로운 연기 생겨나네.
곧바로 풍진을 뚫고 나와 우뚝하게 오부를 진압하시고, 속세를 굽어보아 천추에 아름다움을 오직 자랑하게 하소서.
한산의 빼어난 기운이 세대마다 진씨(陳氏) 문중의 덕을 잇고,
영천의 인물들 대대로 순씨 집안 형제들의 재주를 따르게 하소서.
길이 수계의 정을 지켜 천백 년 드리우며, 영원히 회사(會社)의 뜻 보존하여 억만년 동안 전해지이다.
성산인 현유후 차경이 지음.
<계속>
글/사진 김창오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