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복 현         학산면 매월리生​​​​​​ 국회 민원지원센터장​ ​​​​​​국회 정보위원회 입법심의관​ ​​국회사무처 감사관
김 복 현         학산면 매월리生​​​​​​ 국회 민원지원센터장​ ​​​​​​국회 정보위원회 입법심의관​ ​​국회사무처 감사관

국회는 싸우는 곳이다. 그러나 그 싸움은 권력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의 행복과 국가의 미래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 싸움이 고성과 정쟁으로만 흐를 때 국민은 등을 돌린다. 건전한 토론과 책임 있는 충돌이 있을 때 국회는 민주주의의 가장 빛나는 공간이 된다.

필자가 국회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것은 1992년이었다. 당시 대한민국 국회는 헌법상 삼권분립 체제를 갖춘 민주주의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실제 운영은 형식적인 면이 강했다. 국회의장단과 상임위원장은 투표를 통한 선출이었으나 사실상 당내 지명으로 결정되었다. 표결은 요식행위에 가까웠다. 법률안 통계를 보면, 14대 국회(1992~1996)의 정부 제출 법률안은 581건으로 국회의원 발의 법률안 321건보다 약 2배에 달한다. 또한 국회를 통과한 법률안의 비율도 정부 제출 법률안이 약 90%인데 반해 의원입법은 약 40%에 머물렀다. 이로 인하여 한때 ‘입법부’라기 보다는 ‘통법부’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16대 국회(2000~2004) 이후 국회는 조용한 변화를 시작했다. 필자가 현장에서 경험한 대표적인 사례가 국회의장과 상임위원장 선출 방식의 변화다. 과거의 지명 중심 구조는 점차 교섭단체 간 경선을 거쳐 국회 본회의에서 자유투표로 바뀌었다. 점차 국회의 자율성과 정당성이 회복되어 갔다.

이러한 흐름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한 것이 2012년 제정된 국회선진화법이다. 이 법은 물리적 충돌과 날치기 처리를 방지하고, 국회의 기능을 제도적으로 정비하는 데 기여했다. 회의 방해 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도 포함되면서, 국회 운영의 절차를 제도적으로 보완했다.

국회의 입법 환경도 크게 달라졌다. 법률안 제출 현황을 살펴보면, 21대 국회(2020~2024)의 의원발의 법률안은 2만5천21건으로 정부 제출 법률안 831건보다 약 30배에 달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핵심 조직이 국회사무처 법제실이다. 법제실은 국회의원이 법률안의 입안을 의뢰하면, 법률안의 체계와 형식, 내용이 적법하게 작성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또한, 국회에는 지원조직인 국회사무처와 국회도서관 외에 2003년 국회예산정책처, 2007년 국회입법조사처가 신설되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국가의 예산·결산, 기금 및 재정운용과 관련된 사항에 대해 연구·분석·평가를 수행하며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지원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입법 및 정책과 관련된 사항을 조사·연구하고, 국회의원과 국회 상임위원회에 과학적·전문적으로 분석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국회의 변화는 한 장면으로도 남아 있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국회가 군인과 경찰에 의해 봉쇄되자, 우원식 국회의장과 야당 지도부는 본회의장에 진입하기 위해 국회 담장을 넘었다. 이 장면은 실시간 중계되며 전국적인 화제가 되었다. '국회 월담선생'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이후 그 담장은 민주주의 절차를 지키기 위해 담을 넘은 공간으로 기록되었고, 시민들이 기념사진을 남기는 헌정사적 장소가 되었다.

물론, 국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여전히 많다. 입법의 양은 늘어났고 상임위원회와 소위원회 개최횟수가 늘어났지만 국회 직원 수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또한 국회 지원조직의 정치적 독립성과 전문성 보장 등도 함께 고려되어야 할 중요한 과제다.

내년이면 국회를 떠나는 필자에게 조그만 바램이 있다. 30여 년 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국회는 분명 변했고, 진화해왔다. 그러나 아직 국민들의 눈높이에는 많이 부족하다. 앞으로의 국회는 국민의 삶과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조용한 변화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계속되어야 한다. 그 변화를 바탕으로 국회가 국민의 신뢰를 받고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 역할을 충실히 하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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