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KBS 기자로 30년을 근무했다. 이 기간 중 제주에 두 번이나 발령을 받았다. 1993년 KBS제주방송총국 보도국장과 2002년 정년을 앞두고 KBS제주방송 총국장을 지냈다. 이러한 인연으로 제주도는 필자의 제2고향처럼 정년 후에도 지금까지 자주 드나들고 있다. 제주도에서 언론의 비중이 가장 큰 KBS제주방송총국은 제주의 큰 아픈 상처인 4.3사건은 해마다 뉴스와 보도특집으로 크게 보도됐다. 4.3사건의 진상과 희생자 찾기, 치유 보상 등 유족들을 대변하는 기획으로 전력을 다했다.
그런데 마침,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의 소설이 나의 관심을 모아 탐독에 이르렀다. 한강 작가는 1970년생으로 올해 55세다. 제주 4.3사건은 1948년 4월3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6년여 동안 일어난 사건이다. 이 소설은 2014년 6월 첫 2쪽을쓰기 시작했다가 중단하고 2018년 12월 다시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작가는 이 소설을 쓴 기간이 3년, 삶이 묶여진 시간은 7년이라고 말하고 있다. 작가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 사건을 4.3 관계자들과 유족들의 증언, 각종 증빙자료와 언론의 자료들을 취재해 소설을 쓴 것이다.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사건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썼다. 이 소설 책표지는 바다 너머로 눈이 내리는 풍경을 담았다. 제목은 슬픔과 희망이 엿보인다. 소설의 줄거리는 주인공 '경하'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눈이 내리는 날 묘비 앞에 서서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떠내려가는 모습을 안타깝게 본다. 끔찍한 악몽으로 생각하며 지난날 책에서 다룬 학살에 대한 꿈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친구 '인선'과 꿈에 관한 작업을 영상으로 만들려고 하지만 힘든 시기를 겪는다. '인선'은 작업실에서 일하다가 손가락이 잘려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집에서 기른 앵무새 먹이도 주지 못한다. 친구인 '경하'에게 제주도 집에 가서 새에게 먹이를 주라는 부탁을 받는다. '경하'는 폭설이 내린 제주에서 비행기에 내려 택시가 못가 버스로 '인선' 집에 겨우 도착했다. 그러나 앵무새는 굶어 죽어 새를 묻어 주고 '인선' 집에서 지내며 다시 '인선'과 둘이 만나 가족 이야기를 듣는다. 4.3사건으로 피해를 입었던 '인선'의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서로 상처를 보듬고 사랑을 나누는 모습, 그리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울려 퍼지는 사랑의 영속적인 울림이 느껴지는 내용들이 전개된다. 소설 내용은 또 총에 맞고 몽둥이에 맞고 칼에 베어 죽은 사람들은 얼마나 아팠을까? 손가락 두개가 잘린 개 이만큼 아픈데 그렇게 죽은 사람들 목숨이 끊어질 정도로 몸이 뚫리고 잘려 나간 사람들은 얼마나 아팠을까? 하며 매우 안타까워한다. 소설 내용은 이 밖에도 당시 언론에 보도된 내용들이 끔찍했다. 제주 평 갱도 진입이 공개된 다큐멘터리 스틸사진은 수직갱도 입구에서 탐사팀이 '다이나마이트'를 터트린 모습이었다. 50년 동안 입구를 밀봉했던 콘크리트가 부서지자 갱도를 타고 내려갈 공간도 없이 엄청난 사체 등 유해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입구가 처형장이었다. 입구에 사람들을 세워 놓고 총을 쏘아 그대로 갱도로 떨어지게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바닷가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줄을 세워 차례로 총을 쏘아 총살을 했다. 바닷가에서 시신을 치우면 바닥에 핏자국 등 많은 오물들을 바닷물이 깨끗이 씻어가기 때문에 바닷가를 사형장으로 사용했다. 제주4.3사건은 1948년 4월3일부터 6년여 동안 일어났다. 일본의 패망 이후 통치하는 미군정에 의한 친일세력의 경찰들이 다시 경찰로 복귀했다. 제주도민의 불만이 매우 컸다. 제주도민들은 식량부족 등 경제의 어려움을 겪었다. 1948년 5월 19일 해방 후 첫 선거를 앞두고 제주도는 정치적으로 긴장했다. 남로당이 남한 단독정부를 수립하려 하자 이를 반대하는 남조선 노동당 중심의 도민들이 희생당하는 사건이다. 1948년 10월 제주도 경비사령부는 제주도 중산간 지역 초토화 작전명령을 내렸다. 이 지역 사람들을 폭도로 간주하고 모두 잡아가고 마을을 불태웠다. 이곳 주민들은 토벌대를 피해 한라산 일대 동굴이나 숲으로 피난했다. 당시 마을은 폐허로 변했다. 당시 중산간 주민 3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던 사건이다. 작가는 사랑과 기억이 인간의 고통을 이겨내는 힘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고 한다. 제주 4.3사건의 진술이 '제주어'로 표현되어 있어서 그러한 아픔을 또렷하게 느낄 수 있어 돋보였다. 비극인 상황에서도 '작별하지 않는다'는 소설 제목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하고 남아 있는 사람들이 상처 속에서도 살아갈 희망도 엿보이고 있다. 이 소설의 인물들이 겪은 고통을 가슴에 묻고 상실을 치유해가는 과정과 사랑의 가치를 일깨워주고 있다. 눈 속에 마지막 남은 촛불의 불꽃처럼 '작별하지 않는다'는 마음 깊은 여운을 남기는 소설이다. 제주 4.3사건은 70여 년이 지났으나 아직도 희생자 확인이 덜 되어 신고를 받고 있다. 또 희생자에 대한 보상이 정부의 예산책정이 어려워 단계적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유가족들의 트라우마 치료센터도 건의하고 있으나 늦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번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의 소설이 제주 4.3사건의 아픈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를 기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