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호공 조행립이 세상을 하직하자 구림마을 주민들은 사당을 지어 그가 남긴 공덕과 업적을 기리고 추모했다. 우암 송시열이 묘갈명을 지었고, 문곡 김수항이 묘지명을 썼다. 동래 정공필이 행장(行狀)을 썼으며, 경제 박태초가 사적비문을 지었다. 조행립의 학식과 인품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고 조선의 명사들에게 감동을 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외부인이 아닌 구림마을 내부인으로서 조행립의 총애를 받았던 인물이 있었는데 그는 낭주인 최진하였다. 최진하(崔鎭河 1600~1673)는 그를 무척 존경하고 따랐다고 한다. 다음은 최진하가 쓴 제문 전문이다. 이 글을 읽어보면 구림마을 주민들이 태호 조행립의 죽음을 얼마나 슬퍼하고 안타까워했는지를 구구절절 느낄 수 있다.
제문(祭文) 구림 대동계
계묘년(1663년 현종 4년) 7월 병인삭 21일 병술(丙戌)에 동계인 유학(幼學 벼슬 아니하던 유생) 최진하(崔鎭河) 등은 삼가 맑은 술과 풍성한 제수(祭需)로 공경히 근고 절충 장군 첨지중추부사 조공(曺公)의 영전에 제사를 올립니다.
아! 우뚝하신 군자의 준걸한 풍채가 갑자기 영락하였습니까? 삼가고 공경하던 장자(長者)의 위의(威儀)가 갑자기 꺾여지고 무너졌습니까? 무지개를 채찍으로 바람을 몰아 하늘나라로 오르셨습니까? 혼백을 거두고 간직하여 땅속으로 돌아가셨습니까? 의젓하시던 풍도를 앞으로는 다시 받들 수 없으며 온화하신 안색을 다시 뵈올 수 없습니까?
아! 슬픕니다. 우리 구림마을이 멀리 외진 곳에 떨어져 있으면서 물산도 많고 사람도 많아 풍속이 번화(繁華)하지만 임금의 교화가 조금 멀어 숭상하는 풍습이 성실하지 않고 경박하여 이곳에 거주하는 장로와 식견이 있는 분들이 모두 민간의 도덕이 후한 데로 돌아가기를 생각하지만 진작(振作)시키는 방도가 어긋남을 길이 한탄하면서 오래도록 앞장서서 인솔할 인물이 없음을 흠으로 여겼었는데, 공께서 우리 마을로 오셔서 우거(寓居)하심으로부터 우리 마을의 대소인원이 공께서 자신을 단속하기를 올바름으로 하는 것을 눈으로 보고 공께서 다른 사람을 접견하기를 예의로 하는 것에 마음으로 감복하여 자신의 향기로움을 가지고 비루한 데로 나아가는 덕이 점차로 청렴하여 부끄러움을 아는 기풍을 지니게 되었으니 이것이 공께서 대동계를 창도(唱導)하게 된 까닭이기도 하며, 약속한 조목(條目)은 고인에게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여 상하가 구분이 있게 되고 장유가 차례가 있게 되었으며, 혼인을 예로서 하고 초상과 장례를 예로서 하며 환난에는 서로 구원하고, 과오나 실수는 서로 경계하여 저절로 예로서 사양하는 풍속을 이루어 사람들이 군자의 마을이라고 칭송하였으니 담소하시는 반평생 동안 우리들이 공께서 내려주시는 것을 받은 그 은혜가 어떠하다 하겠으며, 돌아가셔서 장사지내는 오늘 우리들이 공을 추모하는 그 정 또한 어떠하다 하겠습니까?
아! 공의 덕을 말한다면 재능은 당세에 높았고 행실은 고인에게도 뛰어나셨습니다. 공이 장수하시어 팔순을 넘기고 넷을 더하셨지만 정신은 소년 같으셨습니다. 공의 벼슬은 잇달아 네 고을의 수령을 지내셨으며 지위와 품계는 옥관자(玉貫子)를 두를 대상이었으니 맹자가 말씀하신 삼달존(三達尊)(작위, 고령, 덕행)을 갖추셨습니다. 그리고 그 부유함에 미쳐서는 오정(五鼎)을 나열하여 밥을 지을 정도이지만 이웃에게 두루 미치도록 하였고 그 자제를 두심은 상복을 입은 자제가 넷이고 당(堂)에는 여러 손자가 가득하였으니 화봉인(華封人)의 세 가지 축원이 갖추어졌으며 기화(奇花 진기한 꽃)가 차례로 뜰에 가득하였으니 만년의 청복이었고, 맏아들이 상을 당하여 벼슬에서 떠났으니 모경(暮景)을 영화롭게 봉양한 것이며, 처음부터 끝까지 영광과 경사가 사람들의 이목에 빛났으니 사람이 살아야 하는 이치에는 조금 유감스럽기는 하지만, 우리들이 유독 슬픔에 잠기기를 그만둘 수 없는 까닭은 공이 이제 떠나셨으니 어디에서 덕을 상고하겠으며, 공이 이제 돌아가셨으니 어디에서 가르침을 듣겠습니까?
모르기는 하겠습니다만, 그 여씨가 돌아간 뒤에 남전의 향약이 대대로 지켜지면서 실추되지 않았습니까? 그 혹시라도 계승하여 창도하는 자가 나오겠습니까? 실제로 미리 알 수 없습니다. 한 곡조 생황 소리에 상여줄을 잡은 심정을 감당하기 어렵고, 두어 마디 해가(薤歌) 소리(상여소리)에 지팡이를 짚고 싶은 회포가 모두 일어납니다. 누구인들 암연(黯然)히 정신이 상하고 왕연(汪然)히 눈물을 흘리지 않겠습니까?
아! 슬픕니다. 의젓하신 풍채를 영원히 다시 받들 수 없으며 온화하신 안색을 영원히 다시 뵈올 수 없습니다. 생각하건대, 전형(典刑)은 계신 듯한데 아득히 구름 타고 떠나시니 따르기가 어렵습니다. 술은 잔에 가득하고 고기는 제기에 가득합니다. 공의 신령은 유행(流行)하시기에 오셔서 흠향하소서. 공께서 조금도 머물지 않으시니 영원한 이별을 고합니다.
아! 슬픕니다. 흠향하시기 바랍니다.
<계속>
글/사진 김창오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