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순 흥       사회학자 (사)한국사회조사연구소 소장
김 순 흥       사회학자 (사)한국사회조사연구소 소장

현명하신 재판장님께
박OO 작가의 선고 공판을 앞두고 탄원을 합니다. 저는 박OO라는 작가의 개인 신변에 관해 탄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예술과 민주주의 발전에 관한 탄원을 하려고 합니다.

저는 수십년 동안 우리 한국사회의 문제를 다뤄온 사회학자입니다. 우리의 문제를 파고들어 가다 보면 언제나 맞닥뜨리는 것이 역사 정의가 바로 서지 못한 부분이었습니다.

언론의 자유, 예술 표현의 자유, 사법의 공정성 등은 민주주의의 보루입니다. 이러한 축들이 제대로 돌아갈 때 비로소 역사 정의가 바로 서고, 민주주의가 지켜지고, 더 나아가 앞으로 발전해 나갑니다.

그중에 언론이라는 축은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강한 힘을 가졌습니다. 언론은 사실(fact)을 제대로 다룰 때 주어진 사회적 역할을 다 하지만, 사실을 왜곡하거나 특정 세력의 이익의 앞잡이가 될 때는 사회를 망치는 걸림돌이 됩니다. 언론의 자유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언론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할 때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지 무소불위의 힘으로 사회를 망쳐나갈 때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 언론은 엄청난 힘은 남아있는데 그 역할은 없어진 지 오래입니다.

한편, 예술은 표현의 자유를 전제로 합니다. 특히, 사회의 잘못된 부분들을 촌철살인의 날카로운 풍자로 짚어나가는 풍자예술은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박OO 작가의 ‘기레기전’은 그동안 부끄러웠던 한국 언론을 날카롭게 비판한 풍자예술입니다. 막강한 힘에 눌려 어느 누구도 감히 건드리지 못하던 부분을 과감하게 비판한 작품입니다. 윤봉길 의사의 폭탄이 우리 역사를 지켜온 것처럼, 박OO 작가의 기레기 풍자는 가히 폭탄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금, 우리 사회는 ‘비상계엄’으로 시작된 탄핵정국으로 온통 뒤숭숭합니다. 10대, 20대, 30대 젊은 여성들이 아이돌의 응원봉을 들고 나와 세태를 비판하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에 우리 국민도 놀라고 세계가 놀라고 있습니다.

 예술의 힘과 응원봉 K-democracy
저는 사회학자로서, 예술의 힘이 젊은이들을 움직였다고 분석합니다. 천만 관중을 넘겼던 ‘서울의 봄’을 통해 젊은 세대가 ‘비상계엄’이라는 것을 보았고, ‘쿠데타’라는 것이 얼마나 민주주의를 망치는 무서운 것인지를 배웠습니다. 또한, 노벨상을 탄 한강 작가의 작품 ‘소년이 온다’에서 아픈 역사를 공감했습니다. ‘서울의 봄’이라는 영화, ‘소년이 온다’라는 소설, 모두 예술작품입니다. 40년도 훨씬 지난 이야기를 젊은 세대들이 예술작품을 통해 배우고 공감하면서, 이 추운 엄동설한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한가운데 주인공으로 나서는 용기를 가졌습니다. 

그동안 세계를 주름잡아오던 한류문화(K-culture)에 한국의 민주주의(K-democracy)를 더 보태는 데 예술의 힘이 컸다고 사회학자로서 감히 말합니다. 

사법 또한 중요한 보루입니다. 사법이 중심을 잡으면 사회의 혼란은 가라앉고 사회는 앞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 재판은,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두고두고 역사에 남을 것입니다.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여 문화의 발전을 저해하고, 민주주의를 퇴보시킨 걸림돌>이 될 수도 있고,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여, 문화창달을 이루고,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이 나라의 미래에 무한한 가능성을 보장한 원동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현명하신 재판장님의 판단에 우리 민족의 미래가 달려있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엄동설한에 눈비를 맞으면서도 길에 나와 외치던 민주주의의 미래가 달려있습니다. 한류문화(K-culture)와 한국의 민주주의(K-democracy)에 이어서 한류 재판(K-judgment)으로도 세계를 놀라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언론이 권력과 돈의 눈치를 보면서 입을 닫을 때 그 사회는 미래가 없다>, <예술가가 표현의 자유를 잃을 때 그 사회는 미래가 없다>, <법원이 판단력을 잃을 때 그 사회는 미래가 없다>, <시민이 불의에 눈을 감을 때 그 사회는 미래가 없다> 우리 모두는 재판장님의 현명한 판결에 크게 손뼉을 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영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