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차에 의지한 할머니가 앞서 걷는 할아버지를 좇아 동구 밖으로 나선다. 정해진 행선지도 없이 걷다가 석양이 물들인 붉은 노을을 바라보고 서 있다. 불꽃처럼 살다가 노을이 되어 멀리 떠난 막내딸을 찾고 있을까?
올 때는 차례대로 왔지만 갈 때는 차례가 없다는 말이 그냥 있는 줄 알았다. 머슴살이부터 남의 집 품팔이로 기른 딸이었다. 중학교부터 근처에 자취방을 얻어 놓고 온 정성을 들여 가르친 그 딸이 어렵다는 세무 공무원이 되어 서울에서 근무할 때는 대통령도 부럽지 않았다. 저희집 살림 장만하면 어머니께도 같은 걸 사드리는 알뜰한 효녀였다. 무엇보다 고마운 건 당신네 집에도 서울에 세무 공무원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엄마 아빠를 꼭 닮은 어린 남매를 두고 막내딸이 먼 길 간 사실도 모르는 90 넘은 할아버지를 보살피며 돌아갈까 무섭다는 할머니 마음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몸도 마음도 온전하지 못한 할아버지가 그나마 할머니의 의지처일까? 어디로 가려는지 모르는 할아버지가 그나마 할머니의 의지처일까?. 어디로 가려는지 모르는 할아버지를 뒤따르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혼자였다면 벌써 무너졌을 것이다. 자식들 기를 때는 시원할 때 일하려고 이슬에 흠뻑 젖으며 힘든 줄 모르던 든든한 가장이었다. 6남매 중 유일하게 대학 공부시킨 귀한 자식도 떠났는데 흩어지려는 기억의 늪을 헤매는 할아버지마저 떠날까 봐 붙잡으려 애쓰는 모양이 안타깝다.
삶이란 무엇일까, 90 평생을 살았어도 남는 건 허무와 생명에 대한 집착인 것 같아 서글프다. 언제부터 시작된 인연이기에 수많은 날들 함께 살아내고도 그 손을 저리 굳게 잡고 있을까. 차마 놓을 수 없는 생명의 끈이 할아버지일까? 할아버지가 돌어가시면 할머니는 삶의 이유를 잃어버려 뒤따라가실 것 같다.
‘귀천’이란 시어처럼 사람은 죽으면 하늘로 돌아갈까? 아름다운 추억보다 슬픈 기억이 더 많은 사람은 그 곳에 가도 행복하지 못할까?
구비 마다 고달팠던 인생, 끝나는 날로 이생의 기억들은 모두 지워져 버리고 그 곳에선 즐거운 일만 있었으면 좋겠다. 근심 없는, 기쁨만 펼쳐지기를 빌어본다.
그 손 꼭 잡고 영원한 길동무 되어 훨훨 날아다니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