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레박 샘물 길어 오실 때, 어머니
물동이 가득 안 채우시고
빈 바가지 물에 띄워
또가리 받쳐 이고 오셨네
걸음걸음마다 물 철렁이면
바가지가 흔들리며
넘치지 말라고 다독거렸네
다 채우지 않고
삶에 수평선을 띄워 두는
어머니, 어머니의 슬기여
-전석홍 「수평선」 전문
샘터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린 어머니가, 물동이를 다 채우지 않고 빈 바가가지를 둥둥 띄워, 또가리 받쳐 이고 오시는 것을 보며 자랐다. 물동이를 인 걸음걸음마다 물이 출렁거리면, 떠 있는 빈 바가지가 물이 넘치지 말라고 다독거리며 수평선을 잡아준다. 얼마나 슬기로운가? 여기에서 가르침을 얻는다.
저마다 내 그릇을 가득 채우려 아귀다툼을 하는 것을 흔히 본다. 내 그릇만을 넘치게 채우려는 과욕에서 갈등과 분쟁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공동체사회에서 살고 있다. 함께 어울리며 서로 배려하고 모자람을 보완해 가면서 살아가야 한다. 서로의 것을 존중하면서 공평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갈 때 평화로움 삶의 환경이 마련되는 것이다.
나는 최인호의 『상도(商道)』를 감명 깊게 읽었다. ‘계영배(戒盈杯)’가 특히 뇌리에 깊이 박혀 있다. 넘치면 흘러버리고 내 것이 되지 않는다는 교훈을 일깨워 준다. 여기에는 남을 배려하는 철학이 들어 있다. 즉, 공동체 정신이 배어 있는 것이다. ‘계영배’의 뜻을 새겨, 내 그릇을 넘치지 않게 하려는 자세를 가질 때 누리는 평온한 곳이 될 것이다.
우리는 공동체라는 거대한 그릇 안에서 서로 관계를 맺으며 활동하고 있다. 서로의 사이에는 수평선이 띄워져야 화평이 따른다. 이는 물리적인 평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서로 수평하다는 느낌을 가질 때 불평, 불만, 갈등이 솟구쳐 오르지 않는다. 한편으로 기울어졌다는 느낌이 다가올 때 불화와 분쟁의 씨앗이 움트는 것이다.
수평선이 유지되는 공동체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비운 조정자가 있어야 한다. 공동체사회는 늘 요동을 친다. 이고 가는 물동이 물과 같이 기우뚱거린다. 이를 다독이며 수평을 잡아주는 빈 바가지 역할을 해 주어야 한다.
수평선이 띄워진 공동체사회가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리라. 모두가 삶에 수평선 하나씩 띄워 두고 일상에 임할 때 화평한 터전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