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동 호           서호면 엄길리 生 전 전라남도 건설교통국장 공학박사  도로 및 공항기술사
전 동 호           서호면 엄길리 生 전 전라남도 건설교통국장 공학박사  도로 및 공항기술사

가을이 익어간다. 시간의 변화만이 아니라 바람소리가 달라졌다. 한낮 땡볕도 들녘을 출렁이는 금빛 햇살로 바뀌었다. 가을은 이렇게 덥거나 춥지 않고 배고픔 없는 풍요의 맛을 더하는 때이지만 예전 같지는 않다. 대풍을 눈앞에 둔 기쁨도 잠시, 쌀값과 판로를 걱정하는 콤바인의 함성이 높아간다. 농사는 생명인데, 그 뿌리가 흔들리면 결국 피해는 우리 국민인데, 어찌할 수 없는 생각뿐이라니 답답하다.

국가정책은 공직자의 몫이다.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우리 헌법은 또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임명직이든 선출직이든 민의를 잘 살피면서 행복을 더해야 한다는 뜻이다. 소통하지 못하면 불신만 쌓이고 허송세월을 할 수도 있게 된다. 옳고 그름을 떠나 국민의 눈높이를 벗어나선 곤란하다. 너무 과하면 넘치고 결국 터지게 된다. 

추석 다음 주말 호우가 그랬다. 온종일 오락가락 시험하더니, 석양 무렵에 기어이 둑을 넘고 논밭을 할퀴며 저지대 방안까지 차들었다. 영산호 갑문이 만조로 막히며 역류한 것이다. 들판엔 벼멸구가 확산됐다. 한 농군의 SNS가 울렸다. “영암군은 80ha×15=1200마지기에 500㎖ 살충제 10병을 주었다. 해남군은 전량을 주었다는데, 1ha에 3병은 필요한데...해남으로 이사 가고 싶다” 

같은 하늘 아래서 대화가 없어 보인다. 농정은 무엇보다 우선해야 하지만, 그동안 충분치 않았을 수도 있다. 주어진 예산과 선거법에 억눌린 재판도 영향을 끼쳤을지 모른다. 이젠 다 해결됐으니, 차츰 해결할 일만 남았다. 수해 치유를 빠르게 하면서, 취약시설도 돌봐야 한다. 특히 콘크리트 농로 하부 유실 보수는 시급하다. ‘싱크홀’처럼 꺼지면 차량 추락 등 2차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영암은 천혜의 조건을 다 갖추고 있다. 넓은 들판, 곳곳의 문화재, 역사인물, 국립공원 월출산, 대불ㆍ삼호산단과 3함대 등 신북에서 삼호까지 40㎞ 넘게 이어진다. 국도 13호선 벚나무는 영암읍에서 지방도 819호선, 독천에서 국도 2호선과 합류하며 영산호 강변길까지 닫는다. 매년 봄이면 왕인축제를 꽃피우며, 도갑사 가는 길의 화우로, 밤하늘에 꽃등으로, 잊지 못할 추억이 되게 한다.

그 출발은 1980년대 영암군의 생각이었다. 영산호가 조성되자, 진해벚꽃축제처럼 해보자는 거였다. 가로수로는 상상도 못할 시절에 현실이 되게 했지만, 이웃 상징이란 소리도 들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제주 왕벚나무가 원류였다. 그렇다면 그리 뭐랄 일도 아니다. 이젠 매달 ‘월출’하는 만월을 따라 ‘풀문 워킹’ 열두 길을 걷게 하고, 서호강과 덕진강 등 노래 찾기 둑방길까지 잇는 꿈을 더 그려본다.

내가 태어난 영암은 선대의 혼이 오랜 곳이다. 잠시 떠나 있을 때나, 들을 때마다 설레곤 한다. 하지만 영암사람이 아니란 소리를 듣기도 했다. 학업을 위해 일찍 떠났고 영암에서 살지 않았다는 이유다. 한여름 여수 봉화산에서 만난 하소연은 달랐다. “40년 넘게 살았는데도, 여기 사람이 아니라 해요” 직장을 따라 왔다가 살기 좋아 눌러앉았건만, 여전히 이방인 취급을 한다는 말씀이다.

무슨 목적이 있었다 해도, 서운할 일이다. 이제껏 함께한 세월이 있는데, 여기를 떠날 생각까지 하게 한다. 그렇지만 누가 뭐래도 고향은 변치 않는 사랑이다. 타지에서 온 이웃도 같은 정을 느끼며 오랫동안 살 수 있게, 외롭지 않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참 살기 좋은 곳’이란 입소문을 타며, 국내외 사람들이 모여들고, 이들을 지원할 일자리까지 늘면서, 지역 가치가 오르게 된다. 

이렇게 사람이 자산이지만 현실은 어렵다. 청년 활동과 아이 울음소리가 갈수록 줄고만 있다. 혼인과 출산율 향상, 국토균형개발을 위한 다양한 지원책이 나오고 있지만 시원치는 않다. 한 세대의 의식과 문화도 바뀌어야 하는데, 그만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럼 바로 될 수 있는 일부터 해보자. 깨끗하고 안전한 환경 만들기다. 행정서비스 또한 최고가 되게 한다면, 그 효과는 상상 이상일 것이다.

많은 선량들의 꿈이다. 다들 정자정야(政者正也)를 위해 나서지만, 뜻대로는 되지 않는다. 최종 선택을 받았더라도 자칫 선거법에 걸려들면 ‘고발, 조사, 기소, 재판’을 당해야 한다. 잘 이겨내면 명예를 지키면서 수십억 보궐선거 비용과 행정 낭비까지 예방할 수 있지만, 그러지 못하면 좌절되고 만다. 난해한 법은 선행을 슬프게도 한다. 남도의 현자가 영농 폐비닐을 주워 모으다가 벌금처분을 또 받았다. 

이러면 누가 나서겠는가? 법이란 처벌을 위해서도, 어렵지도, 편협하지도 않아야 하는데, 누구를 위하자는 건지 묻게 된다. 공익과 선한 행위는 우리 스스로가 지켜내야 한다. 사람을 귀히 여기는 내 고향 영암이 가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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