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울던 우뢰가 소나기를 몰고 왔다. 어제 심은 씨앗들이 마를까 걱정되더니 아침 단비가 해결해 주었다. 긴 가뭄, 사람들은 내 밭에만 물을 주느라 정신없는데, 한 줄기 소나기가 산천초목들의 갈증을 풀어 주었다. 만물이 우루루 깨어나 시간을 다투어 자라나고 있다. 메말랐던 잡초들까지 한꺼번에 싹을 틔워 이제는 풀과의 전쟁이 시작이다. 언제 생겨났는지 못 보던 벌레들까지 전성기를 이루니 그 속에서 풍년을 지켜야 하는 농부의 손길은 더욱 바쁘다. 햇빛과 비, 바람은 사람에게 이로운 것들만 키울 일이지 온갖 잡초와 해충들까지 길러 내는 건 또, 무슨 심술인가. 겨우 가뭄이 해소되니 다른 근심이 태산이다. 농사를 짓는 일은 부지런만 하면 되는 신선한 직업이란 자부심이 있었다. 양심을 속이거나 다른 이와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밭이랑마다 오색 꿈을 심어놓고 흥겨운 노래 불러 주며 가꾸는 재미가 폭염 속에 땀 흘릴 수 있는 힘을 복돋아 주었다. 나이가 든 탓일까, 곡식보다 두 배는 빠르게 자라나는 잡초들을 매노라면 짜증스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애써 가꾼 작물들을 갉아먹는 벌레들은 잡아 죽이고 농약을 치고, 내가 살자고 너희들을 죽이는구나 싶어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럴 때면 세상이 온통 전쟁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만이 경쟁상대로 알았던 것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가. 우주 만물을 다 존재 가치가 있어 생겨났을 것이다. 인간만이 특별한 존재인 줄 착각하고 있을 뿐 만물이 평등하다는 성현의 말씀에 생각이 닿으면 자연 질서와 맞서야 하는 농부의 삶이 너무 고단하구나 싶어진다. 가뭄이나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로, 애써 지은 농작물이 망가져버릴 때면 현관문만 닫고 들어가면 그만인 도시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다. 그러나 농업은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세상 어떤 생명도 흙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다. 땅에서 나는 곡식과 풀이 아니면 사람은 물론 동물들도 기를 수 없다. 농업은 위대한 생명산업이란 자부심을 가져 본다. 최첨단을 걷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모든 것은 새로움을 향해 달린다. 그러나 농업만은 과거로의 유턴을 준비하고 있다. 무분별한 개발과 품종 개량으로 사라져 가는 토종 동식물들을 복원하는 작업도 이루어지고 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그 가치를 알고 지키려는 노력이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인류의 미래는 농업이라고들 말한다. 안전하고 이로운 먹거리를 만들기 위해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줄 안다. 그 지름길은 과거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하루빨리 친환경 유기농 기술이 보편화되고 수월해져서 자연 속의 생명들과 공존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여름의 산과 들은 치열하고 역동적인 생명 활동의 격전지였다. 저마다의 존재를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축제의 장이란 말이 더 어울릴까? 매미소리 잦아든 숲에는 풀벌레들의 향연이 떠들썩하다. 벌써 여름은 또 하나의 추억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