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반 아         전 영암군 홍보대사 K-중립화 운동가 생명모성연구소 소장
김 반 아         전 영암군 홍보대사 K-중립화 운동가 생명모성연구소 소장

K-월출산 큰바위얼굴, 홍익인간 정신 품은 영암, 세계로 비상하다. 영암의 상징적인 존재인 월출산 큰바위얼굴은 아름다운 자연경관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월출산 큰바위얼굴은 자연이 만들어낸 경이로운 작품으로,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강조하는 홍익인간 정신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단순한 자연물을 넘어, 홍익인간 정신을 상징하는 의미 있는 존재로 해석될 수 있는 월출산 큰바위얼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영암을 세계에 알릴 수 있을 것입니다. 

K-왕인박사. 영암 구림마을에서 탄생한 왕인 박사는 일본에 논어와 천자문을 전파하며 백제의 선진 문화를 널리 알린 인물입니다. 이는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문화 교류를 통한 평화적인 관계 형성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모범적인 사례입니다. 왕인 박사의 행적은 서로 다른 나라 사람들이 서로 돕고 함께 발전하려는 상생과 화합의 정신을 잘 보여줍니다. 일제강점기 수탈과 억압의 아픔을 겪었던 구림마을은 왕인 박사 유적지로서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며, 과거의 아픔을 극복하고 화해와 용서를 실천하는 K-중립 정신을 바탕으로 미래 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벚꽃 축제 등을 통해 한일 양국 간의 문화 교류와 우호 증진에 힘쓰는 모습은 K-중립 정신의 실천적인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K-도선국사. 영암 출신의 도선 국사는 풍수지리의 대가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한반도의 지형과 기운을 깊이 연구하여 국토의 안정과 발전을 도모했으며,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강조하며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는 삶을 역설했습니다. 21세기 인류 사회가 당면한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도선 국사의 가르침은 놀라울 정도로 앞선 시각을 보여줍니다. 그의 가르침은 자연과 인간이 상생하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데 중요한 지침이 될 수 있습니다. 도선 국사의 이러한 가르침은 K-영암의 소중한 보물이며, 전 세계에 알려 인류 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기여해야 할 가치 있는 유산입니다.

구림마을 화해의 탑. 한국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영암 구림마을은 좌우익 갈등으로 희생된 주민들을 위한 위령제를 통해 화해와 용서를 실천하며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고 있습니다. 매년 음력 10월 25일에 열리는 위령제는 과거의 아픔을 딛고 미래로 나아가는 화합의 장이자 K-중립 정신의 핵심 가치를 보여주는 모범적인 사례입니다. 구림마을 사람들의 이러한 노력은 한국 사회의 성숙과 발전에 기여하며, K-중립 정신을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영암의병. 영암은 일제강점기에 활발한 의병 활동이 전개된 지역으로, 수많은 의병들이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키는 데 앞장섰습니다. 특히, 양달사·달수 의병 형제는 영암의 대표적인 의병으로, 그들의 용맹함과 희생정신은 후대에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암성 대첩’과 같은 역사적인 전투를 통해 외세의 침략에 맞서 자주독립을 위해 싸운 선조들의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영암의병의 숭고한 희생과 용기는 K-영암 브랜드의 정신적 토대가 되어, 국내외적으로 영암의 위상을 높이고 자랑스러운 역사를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할 것입니다.

또
유혁(1892-1966) 선생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앞장섰고, 해방 후에는 좌우를 아우르는 통일국가 건설에 힘쓴 민족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민족의 미래를 고민하며, 민주주의민족전선, 전국농민조합총연맹 등에서 활동했습니다. 남북 분단을 막기 위해 노력했고, 한국전쟁 때 북으로 강제 납북되었습니다. 그의 삶은 좌우 이념을 초월한 K-중립평화 정신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김삼규(金三奎 1908~1989) 선생은 일본 유학 중 사회주의 운동과 문학 운동에 참여했고, 해방 후 동아일보에서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자유당 정권을 비판하는 등 언론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특히, 국민방위군 사건을 폭로하여 이승만 정권의 탄압을 받아 일본으로 망명했고, 4.19 혁명 이후 귀국했지만 5.16 군사쿠데타로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일본에서 그는 중립화 통일 방안을 주장하며 조선중립화운동위원회를 설립하고 월간 코리아평론을 창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또한, 민족문제연구소를 설립하여 한일 간 지적 교류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영암은 김삼규 선생을 비롯하여 K-중립 정신 운동과 직결되는 역사적 인물들을 배출한 지역입니다. 이러한 지역의 역사와 문화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K-영암 브랜드를 구축하고, 지역 주민들의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암의 역사 속 인물들의 삶과 정신은 K-영암 브랜드의 핵심 가치를 형성하고, 지역 사회의 발전을 이끌어나가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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