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 쓰는 영산강 유역 고대사
[276] 마한 유산의 세계유산 등재 준비(상)

세계유산에 등재되기 위한 성공 여부는 유산을 얼마나 다양하게 그리고 심도 있게 연구한 결과가 있느냐가 중요하다. 사진은 지난 12일 영암낭주고에서 열린 특강 모습.
세계유산에 등재되기 위한 성공 여부는 유산을 얼마나 다양하게 그리고 심도 있게 연구한 결과가 있느냐가 중요하다. 사진은 지난 12일 영암낭주고에서 열린 특강 모습.

강의실서 만난 낭주고 학생들

지난 12일(화) 미암 낭주고등학교에서 ‘동아시아 고대 해양문명의 허브, 영암’을 주제로 2시간 특강을 하였다. 낭주고등학교는 고려시대 영암의 행정구역 명칭인 낭주를 교명으로 쓰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지역의 정체성이 유난히 교명에 나타나 있다. 게다가 낭주고등학교가 위치한 독천은 영산 내해의 입구에 해당하는 곳으로, 일찍부터 대륙과 해양문화가 교차하여 새로운 문화창조가 이루어진 곳이었다. 현재 숭실대학교 박물관에 소장 중인 교과서에 실렸던 (전) 영암출토 거푸집 유물이 이곳에서 나왔다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나불도에서 형성된 마한문화가 독천을 거쳐 영산 내해를 거슬러 시종에서 꽃피웠다는 필자의 주장이 사실임은 유적·유물이 설명하고 있다.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가 나불도가 들어설 수밖에 없었던 장소성, 역사성, 상징성 등을 설명하니 학생들 눈빛이 빛난다. ‘마한의 심장, 영암’ 구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필자는 외부 강의를 비교적 많이 하고 있다. 특히 중·고등학교 강의가 많다. 학생들을 접하는 순간 학교의 학풍이 잘 유지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곧잘 보인다. 말하자면, 관리자인 교장이 얼마나 교사들과 혼연일체를 형성하고 있고, 이것이 교육현장과 유리되지 않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작동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낭주고등학교(교장 김춘곤)는 필자가 말한 그러한 교육이 잘 이루어져 있음이 확인되었다. 사실, 수능성적이 발표된 고3 학생들은 이러한 특강 시간에 거의 졸거나 핸드폰을 가지고 노는 등 집중력이 떨어진다. 그럼에도 낭주고등학교 학생들은 2시간 이어지는 마한 특강을 한 명도 흐트러짐 없이 강사와 눈을 맞추며 듣고 있었다. 역시 마한왕국의 후예, 동아시아 고대 해양문명의 허브 기능을 한 독천이 지닌 지역성, 역사성이 학생들에게 오롯이 살아 있는 교육으로 이어져 왔음이 보였다. 3학년 36명, 2학년 39명, 1학년 44명으로 점차 재학생 수가 증가하고 있는 학교였다. 영암의 밝은 미래를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세계유산의 본질과 등재기준

지난 11월 8일 열렸던 마한유산의 세계유산 등재 학술포럼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나라 최고의 세계유산 등재 경험을 지닌 전문가들이 초청되어 발표하였다. 그들 전문가는 물론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여 3시간 넘게 진행된 발표 및 토론 시간이 시간가는 줄 몰랐다. 이날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문화재청 임경희 연구관의 주제 발표였다. 임 연구관은 서원의 세계유산 등재 등 실무경험이 풍부하다. 특히 서원 등재의 실무를 맡았을 때는 이배용 국가교육원장과 함께 하였다고 한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임 연구관은 이 고장에 왔더니 “발굴”, “발굴” 하는 데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세계유산은 현재까지의 그 해당 지역에 형성되어 있는 문화의 OUV(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확인하는 것이지 매장문화를 발굴하여 등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지역에서는 발굴을 통해 가야와 같은 국가사적 40개를 만들어야 한다고 금과옥조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바로 지적하였다. 다음은 그의 주장 요지다. 

세계유산협약 탄생은 ‘유산의 전 인류적 보호’에 그 목적이 있다고 전제하고, 세계유산 등재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혜택은 유산 보호 주체가 전 인류로 확산된다는 점이며, 때문에 등재 과정에서 유산의 보존관리체계가 다시 한번 검토되고 확립되며, 등재 이후에도 잘 보호된다는 약속이 수립된다는 점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등재에 따른 관광의 확대라든가, 인지도의 상승 등도 잘 보존되는 유산이라는 세계유산의 본질을 넘어설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세계유산 지정은 가치가 있는 유산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미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유산의 등재 기준도 신희권 교수도 언급하였는데, 임 연구관의 설명도 신 교수와 크게 같지만 다른 설명이기에 소개한다. 탁월한 보편적 가치는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즉 ①등재기준 ②완전성과 진정성 ③체계적 보존관리이다. 세 기준 모두가 갖춰졌을 때만 OUV가 있는 것이고, 이 중 어느 하나만 빠져도 OUV는 성립하지 않는다. 많은 자료에서 마치 등재 기준을 OUV와 동일한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는 명백한 오류다. OUV는 등재기준과 함께 나머지 두 요소가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등재기준은 모두 10가지가 있는데 앞서 마한 유산은 이 가운데 “기준(ⅲ)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의 독보적 또는 특출한 증거 기준(ⅳ) 인류 역사의 중요한 단계를 예증하는 대표적 사례”의 두 유형이 해당되지 않을까 막연히 추정하고 있다. 실제 잠정목록을 작성하다 보면 이러한 기준이 유효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또 다른 기준이 나올 것인지 알 수 있다고 한다. 참고로 한국의 서원과 가야 고분군은 기준 (ⅲ)에 해당하였다.

그런데 등재 기준이 절대성을 갖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각 유산 별로 생성된 역사적 상황이 상이하고, 현재 남아 있는 형태가 다르고, 가치를 규명하는 방법론상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등재 기준을 설정할 때 중요하게 생각되어야 하는 점은 역사적 연원 및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라고 한다. 모든 유산이 가치를 갖지 못하는 유산은 없다. 다만 우리나라를 넘어서 세계인이 얼마나 잘 이해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국내외 유사 유산과의 비교연구

등재 기준을 설정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관련 유산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이다. 세계유산 등재는 기본적으로 이미 제시된 기준 및 제도에 맞춰 움직이는 하나의 ‘행정적·외교적 프로세스’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에 앞서 세계유산에 등재되기 위한 성공 여부는 유산을 얼마나 다양하게 그리고 심도 있게 연구한 결과가 있느냐가 중요하다. 

반면 많은 연구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등재기준이 쉽게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제까지는 이미 국가지정문화재를 대상으로 등재 신청이 되어 왔다. 문화재로서의 가치 및 논리적 근거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기존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다시 등재 기준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 내부의 가치를 넘어서는 세계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서술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점 우리지역 마한 유산에 시사하는 바 크다. 국가사적은 4개뿐이지만 전남도 지정문화재는 30개가 넘는다. 도 지정유산이 지닌 가치를 새롭게 하는 작업이 중요함을 임 연구관은 거듭 강조하였다.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 하는 점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입증하는 방법이다. 세계유산 등재신청서에서 OUV를 뒷받침하는 장치로 마련되어 있는 것이 바로 ‘국내외 유사 유산과의 비교연구’라는 것이다. 신청 유산은 유사 유산과의 비교를 거쳐야 한다. 이때 비교 대상이 반드시 세계유산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이 또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사실 우리 지역의 대표 유산으로 흔히 옹관을 꼽는다. 그렇다면 옹관의 가치를 다른 지역 옹관과 비교를 통해 설명하여야 한다. 이 때문에 필자는 영암군의 도움으로 두 차례나 베트남, 중국, 일본을 답사하려는 예산을 세웠으나 코로나19 때문에 하지 못하였다. 정말 아쉽게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군과 의회에서 예산을 수립하여 줄 것을 당부한다.

비교 내용에는 해당 유산과 다른 유산의 유사점을 비롯해 해당 유산이 다른 유산과 구분되는 근거를 개략적으로 언급해야 하며, 국내 및 국제적 관점에서 신청 유산의 중요성을 설명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국내의 가치만 서술하게 되면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설명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이다. 비교연구는 유사 유산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등재 기준에 맞춰 타국의 유산과 어떤 점에서 유사하고, 어떤 점에서 독창성을 갖는지, 그리고 세계적인 기준에서 어떤 보편성을 갖는지 설명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답이 보이는 데 망설이는 이유를 모르겠다.<계속>
글=박해현(초당대 교수·마한역사문화연구회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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