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 쓰는 영산강 유역 고대사
[275] 세계유산의 최근 등재 경향(下)
엊그제 필자가 만난 지석묘 연구의 권위자인 목포대 이영문 교수의 말이 가슴을 울린다. 마한 유산은 함부로 발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유산이 지닌 신비감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공감이 가는 이야기이다. 지난 6일에는 이배용 국가교육위원장과 통화했다. 마한 유산은 세계유산 등재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영암, 나주, 무안, 함평 등의 마한 유산이 상호 밀접한 관련이 있어 연속유산의 성격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잠정목록 작성을 서둘러야 함을 다시 강조한다. 이 위원장님의 얘기가 옳다고 하는 것이 지난 11월 8일 세미나에서 확인되었다. 오늘은 잠정목록 등재를 중심으로 세계유산 등재 절차와 방법에 대한 신희권 교수의 설명을 소개한다.
잠정목록 선정 서둘러야
세계유산에 등재하기 위해서는 우선 대상 유산에 대한 조사·연구를 실시하고 보존·관리 계획을 수립하여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세계유산 등재 추진 대상을 선정하게 되는데, 우선 잠정목록을 선정한 후 그 중에서 선택하여 세계유산으로 등재 신청을 하게 된다. 잠정목록(Tentative List)이란, 세계유산 등재 신청을 위하여 유네스코에 제출하는 후보 명단이다. 즉, 당장은 세계유산으로 등재 신청하기에 부족하지만 향후 5~10년 내에 세계유산으로 등재 신청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유산의 목록을 말한다.
당사국은 세계적으로 뛰어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문화유산 또는 자연유산과 다음 해에 지명할 의도가 있는 유산들을 잠정목록에 포함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으므로, 유산이 당사국의 잠정목록에 포함되어 있지 않으면 세계유산 등재 신청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지침은 세계유산으로 신청하고자 하는 해당 유산을 1년 전에는 잠정목록에 등재할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당사국들은 지역 담당자, 지역 정부, 지역 단체 등 다양한 관계자들이 참여한 가운데에 잠정목록을 작성해야 한다. 잠정목록은 표준 양식에 따라 작성하는데, 거기에는 유산의 이름, 소재지를 비롯한 개요와 함께 그 유산이 가진 진정성과 완전성을 포함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입증하는 요소들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잠정목록 선정은 문화재청이 하는 데 그 절차는 다음과 같다. ① 유산 연구 및 보존 관리 계획 수립 ② 잠정목록 등재 신청서 작성 ③ 시·도지사가 문화재청에 잠정목록 등재 신청 ④ 세계유산 전문가 심사 ⑤ 잠정목록 등재 확정(문화재위원회) ⑥ 문화재청, 유네스코세계유산위원회에 잠정목록 등재 신청서 제출
등재 신청 폭증..기준 강화
다음은 세계유산 등재 방법이다. 보통 한 나라에서만 개별적으로 등재 신청하는 단독 등재의 경우가 가장 많은데, 이 밖에도 공동 등재나 추가 등재 등의 방법도 존재한다. 공동 등재란 국경을 초월하여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유산[월경(越境) 유산]에 대해 한 나라만 단독으로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하는 것이 아니라 두 나라 이상이 공동으로 세계유산 등재 신청을 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같은 역사-문화 집단이나 지역적으로 동일한 유형에 속해 있거나, 같은 생물지리권이나 동일한 유형의 생태계에 들어 있는 경우, 그리고 개별 유산이 연결되어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니는 경우 등이 공동 등재 요건에 해당된다. 유네스코에서는 이처럼 연관성 있는 유산이 둘 이상의 나라에 걸쳐 있는 경우에 해당국들이 공동으로 등재 신청서를 내도록 권장하고 있다.
한편 추가 등재 제도도 있다. 이미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유산에 그와 유사한 성격의 유산을 추가하여 확장 등재하는 경우를 말한다. 변경 내용에는 경계의 소폭 변경, 경계의 대폭 변경, 세계유산 목록 등재 근거가 된 기준의 변경, 세계유산 명칭의 변경 등이 해당된다. 필자는 마한유산의 세계유산 등재도 이 추가 등재 방법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영산강 유역 연속유산의 성격이 있는 지자체가 합의하여 구성한 추진단을 중심으로 등재 준비를 하면 좋은데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그러므로 추진 의지가 있는 지자체가 우선 등재 준비한 다음 같은 성격의 유산을 지닌 지자체도 추가 등재 신청을 하는 방법을 써야 한다.
세계유산 등재 절차는 다음과 같다.
① 유산에 대한 연구 및 보존관리 계획 수립 ②등재추진 대상 선정(문화재위원회) ③유네스코 예비심사 ④등재신청서 작성(국문, 영문) ⑤신청서 제출(세계유산센터) ⑥서류심사, 현지실사(ICOMOS) ⑦ 보완자료 제출 및 자문기구 권고안 결정 ⑧ 세계유산 등재 결정(세계유산위원회)
마지막으로 세계 유산 등재 추세와 경향을 신희권 교수는 설명하였다. 이 부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세계유산의 중요성을 각국이 인식하면서 등재 신청 숫자가 폭증하자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세계유산의 지역별, 유산 종류별 편중을 완화하는 경향이 나타났다고 한다. 매년 위원회가 검토하는 유산도 45건 이하, 해당국에서 제출하는 유산도 2건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고 한다. 마한유산 등재 준비를 서둘러야 하는 까닭이다. 2018년부터는 이 기준이 더 강화되어 국가별로 단 한건만 등재 신청하도록 하고, 전체 등재 건수도 35건으로 제한하고 있다고 한다. 등재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짐을 의미한다.
연속유산 구성 요소의 타당성
최근 세계유산 등재 경향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연속유산의 등재 비율이 높다는 점이다. 연속유산이란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다고 보는 둘 이상의 유산 요소가 포함되는 것을 말한다. 산 요소 선정에는 명백한 논리가 있어야 하며 그러한 논리는 잠정적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 그리고 해당 유산 요소를 보여주는 여러 요소와 특징물에 근거해야 한다. 즉 해당 연속유산 전체가 탁월한 가치가 있음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하고, 반대로 신청 유산의 잠정적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와 확실하고 분명한 관계가 있지 않은 유산 요소가 포함되어서는 안 된다. 마한유산의 경우에도 예외일 수 없으니 세계유산 등재 준비의 첫 번째 관건은 연속유산으로서의 구성 요소의 타당성이 될 것이다.
한편 유산의 보편적 가치를 찾기 위해서는 다른 유산과 비교 분석해야 한다.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와 관련 특징이 어떻게 조합을 이루는지를 정의하는 데서 출발해 여러 속성을 다른 유산들과 비교해야 한다. 이러한 비교 분석의 목적은 해당 유산이 특별한지를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유산이 정의된 맥락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음을 강력히 주장하는 데 있다. 달리 말하면, 비교 분석은 유산의 잠정적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이해하는 중요한 부분이며 그러한 가치를 확인하는 절차이다. 때문에 비교 분석은 어떠한 경우에도 국가적 자존심이나 지역적 우월성 등을 배제한 채 엄격하고 객관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세미나에서 발표자들은 한결같이 지역 주민, 지자체의 관심을 강조하였다. 최근에는 해당 유산의 세계유산 등재 준비 단계부터 등재 후 모니터링 및 평가 과정에 이르기까지 이해당사자로서의 지역 주민과 공동체의 역할을 점점 더 강조한다는 것이다. 마한 유산의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서도 이러한 세계적 흐름과 방향성을 주시하여 준비에 만전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신희권 교수는 결론을 지었다.<계속>
글=박해현(초당대 교수·마한역사문화연구회 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