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병 연    사회복지학 박사​​·  조선대 초빙교수​​​​​​· 한국청소년인권센터 이사장​​​​​​​
강 병 연  
· 사회복지학 박사​​
·  조선대 초빙교수​​​​​​
· 한국청소년인권센터 이사장​​​​​​​

배날리 포구와 부춘정

나 어릴 적 이맘때면, 마당에 멍석을 깔고 밤이면 유난히 극성을 부리는 모기를 퇴치하기 위하여 피워놓은 모깃불 옆에서 도란도란 세상 사는 이야기와 함께 하늘의 별을 보는 여가를 보냈던 그 시절이 생각난다. 논 메기를 끝으로 모든 농사일을 마무리하고 가을의 수확기를 기다리면서 영산강 바닷물이 드나드는 덕진 강변의 썰물 시기를 기다려 낮에는 재첩을 잡고 밤이면 발동기에서 쓰다남은 폐유로 횃불을 만들어 어른들과 함께 운저리와 숭어 새끼를 맨손으로 잡던 그 시절이 그립다. 

필자는 월출산이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나지막한 평야 지대의 영암읍 망호리 2구 배날리 마을 진주강씨 집성촌에서 종가집 장손으로 태어났다. 조부모님께서 부춘정(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84호)에서 한학을 가르치시면서 후학 양성과 집안의 융성함을 위하여 힘써주신 가문의 후덕으로 성장하면서 노년에 접어들고 있다. 부춘정 건너편에 뱃마테가 있었는데 일제 강점기까지 이 갯고랑으로 목포를 왕래하는 영암호가 다녔다. 그 당시 해창을 거쳐 왔던 영암호는 각종 공산품을 싣고 와서 농산물과 점터에서 구운 옹기를 실어날랐다고 한다. 갯고랑이 망호리 배날리 포구와 부춘정 앞을 돌아, 부춘봉을 휘감고 도는 부춘정 바로 앞 바위 웅덩이는 이웃 마을에서도 멱을 감으로 오는 곳으로도 이름이 났던 곳이다. 부춘정 건너 덕진천은 해마다 여름철이면 모래찜을 하러 구름처럼 인파가 몰렸던 곳이다. 하지만 영산강 유역 전역을 전천후 농토로 바꾸기 위한 대역사가 추진되면서 1981년 영산강 하굿둑이 생겼다. 영산강 하굿둑이 건설된 이후 농경지 확대와 풍부한 농업용수 확보, 하천 범람의 피해가 줄어들고, 영산강 하굿둑 위에 개설된 도로를 통해 목포시와 영암군의 교통이 매우 편리하게 되었다. 그러나 영산강 수질은 차츰 악화되고 영산호의 수위는 토사가 쌓여 점점 강의 폭이 줄어들고 하구에 펼쳐져 있던 갯벌이 감소하여 생태계가 파괴되는 피해도 발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강변에 휘날리는 갈대밭은 물론 여름날에 반찬과 간식으로 먹었던 숭어, 모챙이, 해파리, 재첩 등 지천에 넘쳐났던 해산물이 사라져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처서(處暑)가 일주일이나 지났음에도 한낮의 더위는 수그러들 줄을 모른다. 예년의 날씨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다. 처서는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라고 할 정도로 여름이 가고 가을이 드는 계절의 엄연한 자연의 순리를 드러내는 때이다. 처서가 지나면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져 풀이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고 하였다. 아침저녁으로 신선한 기운을 느끼게 되는 계절이기에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라고 한다. 이 속담처럼 처서의 서늘함 때문에 파리·모기의 극성도 사라져가고, 귀뚜라미가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한다는데 요즘 날씨는 ‘폭염 주의보 안전 문자’가 하루에도 몇 번씩 전달되고 있다.

여름밤 모깃불의 추억

내가 자란 배날리는 찬바람이 나기 시작한 이맘때쯤이면 저녁 시간 썰물 때 횃불을 켜놓고 냇가의 물이 고인 흙탕물이 보이는 자리에 손을 넣으면 어른 손가락 만한 숭어 새끼나 운저리가 잡혔다. 그래서 저녁마다 소주 됫병과 호박잎에 된장을 싸들고 어른들을 따라 다니면서 즉석에서 먹는 재미도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는다. 또 모기가 유난히 많았던 여름이면 보리 타작하면서 부산물로 나온 보리겨를 마당에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 불을 지펴 연기를 내어 모기를 쫓는데, 모깃불 기술은 불이 타면서 연기가 많이 나게 하는 것이 기술이다. 빨리 타는 것을 지연시키기 위하여 물을 살짝 뿌린다든지 또한 생 나뭇가지를 올려 연기를 많이 나게 하는 것이다. 선풍기나 에어컨이 없던 시절이라 밤늦은 시간까지 마당에서 아버지께서 겨우내 만들어 놓은 멍석을 깔고 재첩을 삶아 먹거나 누워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세상 사는 이야기, 앞으로 다가올 농사일, 행복한 가정을 위한 덕담 속에 자녀와 오붓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보냈다. 하늘의 별을 보며 구전으로 내려오는 이야기도 들었다. 잔별이 쏟아질 듯한 은하수는 칠월칠석에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이야기, 북두칠성 이야기, 자기 별 찾기 등 시간은 아나로그 세대의 추억이라 할 수 있다. 초여름이 되면 방문마다 대나무 문살에 창호지를 떼어내고 모기장으로 교체하는 일과 찬바람이 불면 다시 창호지로 방문을 바르는 일이 또 하나의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하는 과정이었다. 옛날은 모기약도 없고 농약도 없던 시절이라 모기와 온갖 벌레들이 극성을 부리는 날이 연속되었다. 모기를 쫓고 바람을 내게 하는 부채도 대나무 가지와 창호지로 만들어 사용하였던 기억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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