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영 완
·미암면 채지리
·진주강씨 영암종회 부회장

5월이 오면 우리군 여러면에서 경노잔치를 하고 있다. 경노의 근본적인 것은 내부모를, 이웃어른을 공경함에 있다고 본다. 옛말에 효도하는 사람중에 어른을 공경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수는 있지만 어른을 공경하는 사람 중에 효도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노인을 공경하고 우대하는 미덕이 자리잡은 사회일수록 사회 구성원간에 화합을 이루고 사회질서도 원만히 유지될 것이다.

임금의 교화를 만백성에게 확산시키는 일을 통치의 근간으로 보았던 조선의 국왕은 이에 따라 노인의 공경을 정치의 첫걸음으로 삼았다. (禮記) 제의편을 보면 천자가 천하를 순시할 때에는 제일 먼저 100세 된 노인을 만나본다고 하였는데, 이 역시 훌륭한 정치는 노인을 공경하는데서 시작되는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조치였다.

조선시대에 노인에게 주는 관직인 노인직을 둔 것도 노인을 우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였다. 당시 노인이 80세를 넘기면 비록 천인일지라도 품계를 하나씩 주었고 사대부 집안의 부녀자가 90세를 넘기면 작위를 주었다. 또한 노인이 백세를 넘기면 종1품 숭정대부라는 높은 품계를 주고 식량을 지급함으로써 그의 장수를 축하했다.

조선시대는 양반과 평민사이에 차별이 많은 신분제 사회였지만 나이가 많아질수록 그러한 차별이 점차 약해졌던 것이다. 국왕이 매년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양로연도 노인을 우대하는 제도였다. 매년 9월이 오면 임금은 서울에 사는 80세 이상의 노인을 궁중에 초청하여 잔치를 열었고, 지방에서는 수령들이 이를 주관하였다. 궁중의 양로연에는 평민 이하의 노인도 참석하였는데 국왕은 참석자들에게 꽃과 음식 다섯잔의 술을 제공하였다.

이때 왕비는 여자 노인을 위해 별도의 양로연을 열었는데 참석자들은 먹다가 남은 음식을 보자기에 싸서 집으로 가져갈 수가 있었다. 그러나 잔치에 참석한 관리와 일반인이 동등한 대우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앉은자리에 차이가 있었고 참석자의 복장도 관복과 평상복으로 구분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제공되는 술이 다섯잔인 것은 국왕에게 올리는 아홉잔, 세자에게 올리는 일곱잔 보단 격식을 낮춘 것이었다. 그래서 ``술잔도 벼슬에 따라``란 말이 생긴 것 같다. 조선시대 관리는 70세가 되면 벼슬길에서 물러났고 고위직을 역임한 관리는 기노소에 들어가 국가 원로로 대접을 받을 수가 있었다. 다만 평민은 80세를 넘어야 노인 대접을 받을수가 있었다. 양반이 아니라 해도 80세 이상의 노인이라면 국가로부터 우대받을 자격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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