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의송 / 학산면 광암마을生 전 농협중앙회 신용대표이사 전 농민신문사 사장 한 ·일농업농촌문화연구소   공동대표
현의송 / 학산면 광암마을生 전 농협중앙회 신용대표이사 전 농민신문사 사장 한 ·일농업농촌문화연구소   공동대표

일본의 동북부 야마가다(山形)현 나가이(長井)시는 동서로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나가이 분지를 중심으로 펼쳐진 인구 약 3만 명의 농촌형 도시다. 센다이(仙臺) 공항에서 서쪽으로 2시간 거리에 위치한다. 이 지역에서는 일본에서도 보기 드문 기발한 농산물의 생산과 유통 시스템이 추진되고 있다. 시민들의 부엌에서 나오는 음식물 찌꺼기와 축산분뇨, 쌀 농가에서 발생하는 왕겨 등 유기물을 퇴비화해서 농경지에 환원한다는 것이다. 농경지에서 생산된 쌀이나 채소들은 시장을 통해서 대도시에 출하하지 않고, 우선 퇴비생산에 참여한 시민이 우선적으로 소비하고 남은 농산물은 시외로 출하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음식물 찌꺼기와 퇴비라는 유기물을 축(軸)으로 한 생산과 소비의 지역순환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다. 이름하여 ‘부억과 농업을 연결한 나가이시 계획’이며 이를 ‘레인보 플랜’(무지개 계획)라고 부른다. 

처음에는 몇 사람의 아이디어 차원의 계획이었으나 현재는 나가이시의 소비자단체, 상공회의소, 행정, 농협, 시립종합병원 등도 참여한 총체적 지역사회운동으로 발전했다.
음식물 쓰레기의 퇴비화를 추진하고 있는 지역은 최근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나가이시의  ‘레인보 플랜’이 획기적인 것은 지역 내 부엌에서 나오는 음식물 찌꺼기로 퇴비를 만들고 이를 사용해서 농산물을 생산하고, 지역 내에서 우선 소비하는 방식으로 농산물의 생산과 소비를 지역 내에서 순환시킴으로서 모든 농산물이 생산되자마자 도시지역으로 실려 가는 현재의 유통 시스템을 지역 주체로 변화시켰다는 점이다.

이 운동의 계기가 된 것은 1986년 나가이시의 쌀생산 농가들이 농협과 생협의 협조를 받아 모델적인 논에서 감농약(減農藥) 쌀생산이 시작되면서부터다. 농약의 공중살포를 중지하고 제초제 1회 살포만으로 쌀 생산을 결의한 농가 13명이 ‘감농약열매회’를 조직하고, 동경의 다마(多摩)생협과 산직(産直, 생산자와 소비자의 직거래) 제휴를 했다. 그러나 생산량이 증가하고 점점 작부 면적이 증가하자 이번에는 퇴비가 부족하기 시작했다. 지역 내에서 퇴비를 자급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하고 논의를 거듭한 끝에 ‘감농약열매회’의 생산 농가들이 내린 결론은 음식물 찌꺼기의 퇴비화였다. 농가들은 음식물 찌꺼기의 퇴비화 방안을 작성해서 ‘지역활성화디자인회의’에 제안했다. ‘지역활성화디자인회의’는 1988년 지역 활성화 구상을 시민 스스로 자발적으로 논의해서 행정에 제안하기 위해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는 청년 100명으로 구성했다. 농업, 공업, 여성과 도시 등 각각의 분과회를 두고 논의를 계속해온 조직이다.

여기서 ‘감농약열매회’의 회원들은 음식물 찌꺼기의 퇴비화와 그 퇴비로 생산한 농산물의 지역 내 순환(循環) 시스템 구상을 제안해서 큰 호응을 얻었다. 

나가이시는 쌀을 중심으로 채소와 축산의 복합경영이 이루어지고 있는 생산지인데도, 지역에서 생산된 채소의 70%는 시외로 출하된다. 시내에서 소비하는 채소, 과일 중에서 지역 내 생산품의 점유비가 20% 미만이다. 모처럼 지역에서 생산한 신선한 채소를 몽땅 대도시로 갖고 가는 것은 소비자로서도 생산지역에서 사는 매리트가 없다. 지역내 생산, 지역내 소비를 우선하는 생산유통시스템은 ‘지역 내에서 재배한 안전하고 신선한 농산물을 먹고 싶다’는 지역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킨 것이다. 

지금까지 ‘소비자는 농산물을 사는 손님’ ‘농업인은 생산자이면서 파는 사람’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소비자는 퇴비생산자이면서 농산물의 소비자’이며, ‘농업인은 퇴비의 소비자이면서 농산물의 생산자’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즉 생산자와 소비자가 같은 무대 위에서 순환형의 관계성을 구축했다는 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1992년 ‘레인보 플랜’의 추진위원회가 설립되었다. 행정을 사무국으로 하고 농협직원, 소비생활자의회, 상공회의소청년부회, 주부, 나가이 시립종합병원의 의사 등 지역 대부분 조직에서 회원이 선출되었다.    

-지역내 생산, 지역내 소비-

추진위원회에서는 유기물의 재자원화, 우량퇴비의 생산, 땅심 높이기와 유기농산물의 생산, 지산지소(地産地消, 지역에서 생산하고 지역 내에서 소비한다는 뜻)에 의한 농산물의 유통, 농업후계자 육성이라는 다섯 가지를 기본목표로 내걸었다. 우선 시 행정의 사업으로 퇴비공장 건설과 음식물 찌꺼기 수집시스템 확립, 그리고 유기농산물의 재배기준과 기술지도 체제 확립, 유기농산물 인증제도의 제정 등이 필요했다. 

나가이 시내에서 배출되는 음식물 찌꺼기는 년간 약 2천400톤이다. 이것을 퇴비화하면 약 807톤의 퇴비가 생산된다. 10a당 2톤을 투입한다고 가정하면, 이 퇴비를 사용하는 경지면적은 40ha에 이른다. 시내 전체의 농경지가 3000ha이므로 레인보 플랜 참가자는 결코 많은 숫자는 아니다. 레인보라는 명칭은 각각의 색이 혼합되지 않고 7가지 색이 모여서 무지개를 만든다는 뜻을 상징한다. 즉 추진위원회는 참가회원 모두가 상호 협조해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희망의 가교를 만들어 간다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1993년부터는 유기농산물 희망 생산자를 모집해서 ‘유기농산물연구사업’을 시작했다. 무, 고구마, 오이, 수박, 시금치, 가지, 파 등의 감농약 재배를 시작했다. 재배기준은 농업개량보급센터가 중심이 되어 실험결과를 보아가면서 품목별로 재배지침을 만들었다. 참가한 생산자는 첫해에는 10명이었으나 매년 늘어 지금은 100여 농가에 이른다. 실험 생산된 채소는 지역 내의 슈퍼의 협조를 받아 판매되고 있다. 신문방송 등에 자주 소개되어 불티나게 팔렸다. 고품질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양질의 퇴비를 생산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모두가 인식하게 되었다. 결국 소비자도 스스로 양질의 음식물 찌꺼기를 수집하지 않으면 소비하는 채소도 쌀도 안심하고 먹을 수 없게 된다는 생산과 소비의 인과 관계를 이해하게 되었다. 양질의 퇴비를 만들기 위한 양질의 음식물 찌꺼기의 수집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한 주부들은 각 지구별로 회의를 거듭하면서 개선해 나갔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철제 포크나 나무 요지 등 이물질의 혼입 사례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2005년에는 새롭게 ‘무지개역(驛)’이라는 농산물 직매장과 레인보 농장을 설치했다. 무지개역은 레인보 플랜으로 생산된 농산물을 직매하는 곳이다. 레인보 농장은 현재 52a에서 전업 농업인의 지도를 받아 36명의 소비자들이 참여해서 유기농산물을 직접 생산하는 농장이다. 

레인보 농장의 이사장 다케다(竹田)씨는 “레인보 농장은 안전한 식품을 소비자와 생산자가 함께 만들어 나가는 장소이다. 식(食)과 농(農)을 지키기 위해서는 기존의 세습형 농업의 관념을 버리고 식과 농의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직역(職域)이나 지역(地域)을 초월해서 안전식품을 생산하는 형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레인보 농장은 지역주민들로 구성된 NPO(비영리법인) 법인 형태로 운영된다. 

-환경 관련 조례 제정-

레인보 플랜이 성공하기까지 환경을 중시한 행정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시의회에서는 환경보전조례, 벌체하지 않는 삼림조례, 환경기본계획 선포, 다이옥신 방지조례, 지구환경선언 등을 제정하고 ISO14001인증취득 등 환경을 배려한 지역사회 발전을 끊임없이 추구해왔다. 

나가이시의 이러한 환경활동이 높이 평가되어 다양한 상도 수상했다. 후생성의 ‘그린 리싸이클타운상’, 환경청의 ‘어매니티 추진상’, 국토청의 ‘물의 고향’인정서 등 환경관련 다양한 상을 받았다. 2006년에는 NHK와 일본농협중앙회가 주관하는 일본 농업상 중 식(食)의 가교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흙은 생명의 근본-

레인보 플랜의 실질적 리더 역할을 해온 간노(菅野, 양계업) 씨는 레인보 플랜의 이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지역순환이다. 레인보 플랜에는 두 가지 순환이 있다. 하나는 흙에서 나온 것은 흙으로 돌려준다는 순환이고, 또 하나는 소비자와 생산자의 연결고리 순환이다. 소비자는 퇴비의 생산자이고 생산농가는 퇴비의 소비자가 되어 상호 입장을 바꾸어 가면서 식생활과 농업에 참가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협동이다. 주민은 직업이 다르더라도 같은 지역의 생활자로서 서로 협력해가면서 순환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주민이 논의하고 시의 행정이 그것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주민자치와 참가를 중요시하면서 협동해서 운영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이다. 세 번째는 흙은 생명의 근본이라는 점이다. 논밭은 쓰레기를 버리는 장소가 아니고 흙과 생명을 중요시하는 순환형 사회창조의 장소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흙은 생명의 근본이라는 점을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가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이념을 분명히 하지 않는 단순한 음식물 찌꺼기 퇴비화 사업은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연장선이기 때문에 실패하기 쉽다는 설명이다.

-쓰레기 33% 감소, 전기요금 30만엔 절감-

레인보 플랜을 시작한 지 15년이 지났다. 직접적인 효과도 많지만 무엇보다 지역주민 모두의 환경에 대한 의식전환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우선 지역 내의 각급 학교에서 환경교육과 지역교육을 강화하게 되었다. 학생들은 학교와 가정에서 전등끄기 운동을 전개했다. 그 결과 학교의 년간 전기요금이 30만엔 절약되는 효과를 보았다. 전등 한등 끄는 것이 지구환경을 보호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또 음식물 쓰레기가 이전보다 33%가 감소했다는 점은 지역주민 모두가 참여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한다. 레인보 농장에서 농사일하는 고령자들에게는 삶의 보람을 느끼게 되어 건강증진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시가지 지역과 농촌지역, 그리고 소비자와 생산자가 서로 이해할 수 있도록 가까워졌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효과들이 높이 평가되어 레인보 플랜은 각급 학교의 22개 교과서에도 우수사례로 소개되고 있다. 매년 42개의 국가에서 년간 3만명의 시찰단이 방문한다. 많은 시찰단 때문에 업무에 지장을 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 설명하고 안내하는 업무를 시민 가이드를 선정 위탁했고 시찰료로 1만엔을 받는다. 

결론적으로 레인보 플랜은 진정한 주민자치의 확립을 성공시킨 지역 활성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 사업의 성공에는 특히 주부들의 역할이 중요했다는 점이다. 생명과 식생활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생활방식은 농업이 있는 지방 도시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실증해준 사례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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