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복완 / 도포면 출신/전 전남도 기획조정실장/경기도 행정2부지사/현 세한대학교 특임교수
양복완 / 도포면 출신/전 전남도 기획조정실장/경기도 행정2부지사/현 세한대학교 특임교수

저는 지난 1995년 여름부터 1996년까지 약 18개월 동안 박일재 군수님을 모시고 부군수로서 일하였습니다. 40년 가까이 공무원을 하면서 많은 분과 함께 일하였고, 많은 분을 기억하지만, 누가 저에게 “특히 기억에 남는 분은 누구입니까?”라고 물으면 저는 주저 없이 박일재 군수님을 뽑을 것입니다. 항상 청렴하고 소탈하셨으며 공과 사를 철저하게 구분하시고, 이익과 손해보다는 옳고 그름을 따지신 분이십니다. 또한 제1기 민선 자치단체장(1995~1998)으로서 ‘주인의식’이라는 지방자치의 핵심 가치가 군정 구석구석에 녹아들 수 있도록 노력하신 지방자치의 선도자이셨습니다. 

1995년에 시행된 최초의 지방자치단체장 제도는 기존의 임명직이 아니라 군민의 투표를 통해 선출하는 것이기에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생소한 시스템이었습니다. 군민이나 공직자 모두 새롭게 펼쳐지는 민선 자치가 안개 속처럼 막막하기만 할 때입니다. 그때 박군수님은 매우 의미심장한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지방자치는 군청만 하는 것이 아니다. 주민도 함께 지방자치를 하여야 한다.”

당시 단체장 중 주민을 향하여 ‘자치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주민이 부담도 하고 희생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은 군수님이 거의 유일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선거를 통하여 선출된 많은 단체장은 “지방선거를 통하여 민주주의가 완성되었다.”라는 ‘지방자치단체장 직접 선출’이라는 정치적 의미에 집중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민은 요구하고, 행정은 수용한다.”라는 구조를 지방자치의 당연하고 또 바람직한 모습처럼 인식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방자치의 궁극적인 가치는 지역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지역 주민이 주인이 되어 한정된 자원의 배분을 주도함으로써 주민들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자원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입니다. 주민은 군청의 선처를 호소하는 존재가 아니라 주인으로서 군정을 주도하는 입장에서 소수 몇 사람의 사익이 아니라 군 전체의 공익을 위한 것을 요구하여야 합니다. 군수님은 이런 취지로 말씀하셨고, 또한 이런 말씀이 주민들에게 별로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군수님은 수시로 ‘주민의 주인의식’을 강조하셨습니다. “주민 여러분! 군청에다 또는 군수 만나서 마을 진입도로 건설해주라, 하수도 청소해주라, 관정 파주라 등등 이런 사업 요구하는 것이 지방자치는 아닙니다. 군청의 예산이나 장비, 공무원들 모두 여러분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인입니다. 군의 자원을 가지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군 전체의 발전에 유익한지 고민하여 주십시오.”

민선 지방자치 시대를 시작하고 벌써 30년이 되어 가지만, 지금도 현장의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럴 때마다 당시 군수님의 그 인기 없는 말씀이 더 넓고 깊게 뿌리를 내렸더라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군수님은 재임 중 ‘쉬운 공문 작성’을 반복하여 강조하셨는데, 이 역시 주민이 주인이라는 지방자치 철학의 연장선에서 추진한 것이었습니다. 군민이 군정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군정에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는데, 군청에서 사용하는 용어가 너무 어렵고 작성하는 공문서도 지나치게 복잡하여 군민이 군청 일을 이해하기 너무 어렵게 한다고 지적하셨습니다. 그래서 반복적으로 군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문서를 요구하셨는데 상당수 직원은 군수께서 너무 사소한 것을 지적하신다고 속앓이를 하였습니다. 사소한 일이라도 군민과 군청 사이의 의사소통을 저해하는 것이 있으면 당연히 개선해야 한다는 의지를 보여 주신 것입니다. 또한 군수님은 군청 직원이 자연인으로서의 군수 개인보다 군청이라는 조직과 군민에게 최선을 다하는 문화를 형성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대개의 단체장이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쓰는 ‘배수내 승진’(倍數內 昇進:승진 인원의 배수를 후보로 추천하여 인사위원회가 그 범위 안에서 승진자를 결정)을 잠재우고 ‘승진후보자명부 상의 순위’를 기준으로 인사를 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런 원칙은 군수님의 친동생이 포함된 승진 인사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당시 군수님의 동생은 승진이 가능한 소위 ‘배수 범위 내’에 들었고, 나이, 경력 등을 고려하면 ‘배수내 승진’도 가능하였으나, 군수님은 “명부상 가장 우선 순위자를 승진시켜야 좋다고 봅니다. 좋은 근무평가를 받은 사람이 뒤처지면, 공무원이 군민보다는 군수에게 충성하게 될까 걱정이 됩니다.”라며 “동생의 승진을 배제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이 인사와 관련하여서는 ‘유교적 가족애’와 ‘합리적 중립성’이라고 하는 두 가지의 상반하는 가치가 공존하는 지역에서 고민도 깊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솔선해서 ‘가족애’라는 사적 가치보다는 조직 화합과 신뢰를 우선한 공익적 가치를 선택하셨습니다. 이 선택에는 미래 지향적이고 발전 가능성이 있는 군정의 방향을 제시하려는 군수님의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고 봅니다. 

끝으로 기억나는 사항 하나를 더 들고 싶다. 군수님은 군청에서 발주하는 공사가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지도록 하셨다. 계약에 관한 법령과 규정을 철저하게 지키시는 것은 당연하셨고, 군청이 재량으로 업체를 선정할 수 있는 일정 규모 이하의 소규모 공사도 지역 업체들이 모두 순서대로 고루 수주하도록 하셨다. 물론 영암군 관내 업체에 한정하여 기회를 줌으로써 군청에서 발주하는 공사가 지역경제의 활성화에 도움이 되도록 하셨다. 

고 박일재 군수님을 생각하면 파안대소하는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아무런 근심도 없고 조금의 의심도 없는 군수님의 환한 웃음이야말로 천여 명의 공직자가 한마음으로 일할 수 있었던 든든한 밑받침이었습니다. 삼십여 년이 흐른 지금도 군수님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귓전에 맴돕니다. 제 30년 공직생활에서 박 군수님과의 만남은 소중한 추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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