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재 홍   서호면 몽해리 아천출신연합뉴스 뉴스통신진흥회 이사                                                           전 경기대 교수(정치학 박사) 전 KBS제주방송 총국장
윤 재 홍  서호면 몽해리 아천출신연합뉴스 뉴스통신진흥회 이사  전 경기대 교수(정치학 박사) 전 KBS제주방송 총국장

고려인은 구소련 붕괴 이후 독립국가연합의 국가들에 거주하는 한민족이다. 이들이 사는 국가는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등 여러 곳이 있다. 약 50만 명의 고려인들은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거주하고 있다. 소련의 붕괴 이후 구소련지역에 동화되어 그대로 살아가고 있다. 지난 8월 26일 봉오동, 청산리 전투를 이끈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1868~1943)의 유해가 카자흐스탄에서 우리나라로 돌아왔다. 우리 조상들의 가슴 아픈 슬픈 역사가 마음을 다시 아프게 해주었다.

소련당국이 중일전쟁을 막기 위해서 1937년 러시아 동쪽 연해주의 고려인들과 가까운 일본에 간첩활동을 막기 위해 고려인 17만 명을 강제로 중앙아시아로 이주시켰다. 유리창을 널빤지로 막은 ‘검은상자’라는 열차 안에서 거의 1달 동안 6000km를 이동했다. 강제이주 당시 숙청당한 사람과 열차 안에서 굶주림과 추위, 질병 등으로 모두 2만여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나라없는 약소민족의 비애였다. 이 만행을 저지른 책임자는 당시 소련의 최고 권력자 ‘이오시프 스탈린’이었다.

스탈린은 그 후 북한이 남침할 계획을 승인·지원해 한반도에 6.25 한국전쟁을 일으켰던 인물이다. 고려인들은 1956년 스탈린이 죽은 후 비로소 거주 이전의 자유를 얻었다. 1989년 소련공산당중앙위원회는 ‘스탈린의 강제이주는 불법적 범죄행위’로 결론을 내렸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된 후 중앙아시아로 간 고려인은 우즈베키스탄 7만여 명, 카자흐스탄 9만여 명 등 다른 지역으로 분산되었다. 생전 처음 겪는 허허벌판에서 고려인들은 땅굴을 파거나 움막에 살기도 했다. 이들은 꾸준한 노력으로 한반도 18배인 중앙아시아에서 땀을 흘려 목화를 재배하고 벼농사를 지어 생산량을 크게 높여 경제적 안정을 찾았다. 아울러 교육열, 전통문화를 지키려는 노력도 하면서 자리를 잡았다.

필자는 1994년 5월 우리나라와 수교한지 3년이 지난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 두 나라를 10일간 취재했다. 김영삼 대통령 취임 1주년을 기념해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순방을 앞두고 50분 특별기획 보도특집 ‘서울-모스크바-타슈켄트’를 제작하기 위해서였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는 사회주의 종주국이었던 소련연방이 붕괴되고 새 러시아가 등장해 달라진 모습에 중점을 두고 취재했다.

당시 러시아는 민주화와 시장경제체제 정착을 위한 변혁과 내부갈등이 계속되었다. 러시아는 서구 유럽 국가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매우 자유롭게 달라졌다. 특히 러시아인들이 한국상품을 좋아하고 한국을 매우 우호적으로 여겼다. 모스크바에 진출한 한국의 전자제품 상가 간판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TV, 냉장고, 에어컨, 전기밥솥 등이 인기가 좋았다.

모스크바에 고려인은 약 5천여 명이 살고 있다. 그러나 고려인들과 우리는 대화가 되지 않았다. 한국말을 전혀 몰랐고 통역을 통해야 소통이 됐다. 고려인들은 한국의 눈부신 경제발전에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특히 고려인들은 한국어 교육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과감한 지원을 요청했다. 한국과 러시아 경제협력강화에도 관심이 컸다. 모스크바 한국어방송국에서 북한에서 파견한 김일성 뱃지를 단 남자 아나운서를 만나 인사를 나눴다. 북한 아나운서들은 러시아정부로부터 200달러의 봉급을 받는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북한의 핵 문제의 잘못을 지적하자 북한 아나운서들의 엉뚱한 주장으로 취재진과 언쟁을 벌여 한때 분위기가 긴장됐으나 이 부분을 녹취해 KBS 9시 뉴스에 보도해 보람을 느꼈다.

우즈베키스탄은 한반도 2배의 크기로 인구는 2천만 명이다. 수도 타슈켄트는 5월인데도 낮기운이 35도까지 솟았다. 이곳의 고려인은 17만 명으로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많았다. 이곳은 평균 한 달 봉급이 10달러였다. 우리나라 대우자동차 생산공장이 우즈베키스탄에 가동하고 있어 고려인들은 더욱 조국에 대한 발전모습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한국전자상품상가에서 고려인 대학교수는 한국의 발전에 감동했다. 이곳에서 TV나 냉장고 한 대를 사려면 1년치 교수 봉급을 모아야 한다며 한국을 부러워했다. 한국을 그리워하며, 한국의 발전은 끝없이 계속되어 우리 고려인들도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힘이 되어줄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중앙아시아에 나라 없는 설움과 고통을 이겨가며 흩어져 살고 있는 우리 동포 고려인들은 비록 한국에 다시는 살 수는 없지만 한국에 뿌리를 둔 긍지와 자부심으로 열심히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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