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의 송 / 학산면 광암마을生 / 전 농협중앙회 신용대표이사 / 전 농민신문사 사장 / 한·일농업농촌문화연구소 공동대표
현 의 송 / 학산면 광암마을生 / 전 농협중앙회 신용대표이사 / 전 농민신문사 사장 / 한·일농업농촌문화연구소 공동대표

전남출신 농협동인 박영대 시인이 쓴 시 한 편을 읽었다. 내가 살아온 삶을 두고 쓴 시 같은 생각이 들어 몇 번을 읽고 또 읽어 밤이면 이 시를 암송하면서 잠이 들곤 했다. 그 시의 내용은 이렇다. <까랑불> 이 작은 빛으로/세상의 어둠을 다 밝힐 수는 없지만/길 안내는 할 수 있다는 생각에/내 생이 참 고맙다. 

이 네 줄의 짧은 시가 계기가 되어 나는 단양 ‘아리산방’을 찾아 박영대 시인을 만나기 위해 7월 6일 아침 일찍 서울을 출발했다. 아리산방은 박영대 동인이 퇴직 후에 마련한 책 읽고 글을 쓰는 단양 산촌의 보금자리 문학 집필실이다.

단양에 가는 길에 오래전부터 나의 머릿속에 늘 가보고 싶었던 제천 의림지를 들리기로 했다. 

의림지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고대 치수시설로 신라 진흥왕 때 축조한 순수 농업용 저수지다.

나는 농업유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농경문화의 유산인 농업용 저수지가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중 하나로 제천의 의림지가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의림지는 둘레가 1.8㎞이고 수심이 8m에 이른다. 이를 소재로 하고 자료 사진을 기초로 유화 작품으로 표현한 적도 있어 현존하는 최고의 농업 유산이어서 직접 가보고 싶었다. 서울을 출발하여 영동고속도로를 통해 제천 의림지에 10시 30분 도착했다. 의림지 입구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제천농협 김학수 조합장이 나와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의림지를 둘러보니 작품을 그리면서 상상했던 의림지의 옛 모습은 간 곳 없고 그냥 보통의 소규모 저수지와 어린이 놀이 기구 등 유흥시설로 가득 찬 유원지 같은 생각이 들었다. 주변을 돌아보면서 장구한 세월 동안 백성의 먹거리 제공을 위해 역할을 했던 선조들의 기발한 관개시설의 모습은 퇴색되어 보이지 않고 수백 년 된 노송과 폭포로 치장된 단지 유원지처럼 느껴진다. 너무나 많은 인공적인 시설로 인해 오히려 역사적 본질은 훼손되고 놀이터로 다듬어 놓은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제방 둑이 심(心)자형으로 축조되었고 한반도의 농경문화 유적으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졌으나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문화유산이 후손의 근시안적 안목으로 선조들의 의미 있는 문화유산을 훼손하고 있는 셈이다. 제방 주변에 수백 년 된 아름드리 소나무가 장관을 이루고 있지만 놀이터로 변해 소나무가 힘든 모습으로 견디고 있는 것이 못내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이 저수지에는 한겨울 얼음 속에 사는 빙어가 유명하고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다고 전해지고 있고 수생식물이 풍부하여 겨울 철새들의 도래지로도 유명하다.

의림지 탐방을 끝내고 단양으로 향했다. 도착한 식당은 장다리식당이다. 유명한 맛집인지 자동차와 손님이 많이 보인다. 130년 전통의 마늘약선 전문점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특히 마늘 요리가 열 가지가 넘게 차려지고 단양 마늘 떡갈비에 소백산 막걸리 한 잔을 걸치는 점심 식사는 일품이었다. 

박영대 시인의 안내로 단양의 경치를 돌아보는데 단양팔경에 얽힌 유래와 그림 같은 독특한 단양 바위의 절부경은 방금 붓으로 그려낸 동양화 한 폭이다. 마침 두 분의 여류시인이 함께 하면서 경치에 어울리는 시를 읊는 허연정·박정임 두 분과 함께 단양팔경을 둘러보는 재미는 더할 나위 없이 흥겹고 의미 있는 시심에 빠져드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예부터 단양의 경치를 활인산수(活人山水)라고 하였다. 즉 사람을 살리는 산수경치라는 말이다. 단양의 경치는 금강산이나 설악산처럼 저 멀리 떨어져 바라다보기만 하는 경치가 아니라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고 발걸음을 옮기면 바로 내딛을 수 있는 가까운 곳에 풍광이 있어 인간과 늘 가까이 있어 활인산수라고 불러왔다. 태백의 검룡소에서 발원하여 정선·영월을 거쳐 흐르는 남한강은 단양에 이르러 단양팔경의 명소를 곳곳에 남긴다. 단양 남쪽으로 소백산맥에서 내려오는 강줄기를 따라 약 4㎞ 거리에 있는 하선암(下仙巖 )과 10㎞ 거리에 있는 중선암(中仙巖), 12㎞ 거리에 있는 상선암(上仙巖)이 있는 선암계곡이 흘러 신선바위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아리산방도 여기에 자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사인암(舍人巖)까지 한 폭의 그림 같은 아름다운 경치를 이룬다.                                    
특히 사인암은 깎아지른 듯 기묘한 암벽이 꽃 병풍처럼 치솟아 있고 아래는 맑은 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아름다운 절벽의 웅장함을 사진으로 담기에는 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쉽게 생각하고 있던 차에 박 시인이 보자기에서 드론을 꺼내 절벽과 강의 상공에 드론을 띄워 사진을 촬영했다. 사인암은 수직·수평의 절리 면이 마치 수많은 책을 쌓아 놓은 모습을 하고 있어 유래한 지명이라고 한다. 사인암에는 글씨와 수많은 암각 자가 남아 있어 우리나라의 살아있는 서예 전시관이라 하여도 손색이 없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오후 느즈막에 아리산방에 돌아와 숯불을 피우고 고기를 굽고 텃밭의 상추와 풋고추 고들빼기를 뜯어와 저녁식사 준비를 했다. 원탁의 식탁에 둘러앉아 포도주를 기울이면서 산중 만찬을 시작한다. 여류시인의 진행으로 돌아가면서 낭송가가 가르쳐준 대로 즉석에서 시 한 수씩 낭송해 흥을 돋군다. 이제까지 시를 짓고 그냥 읽어본다는 생각만 했는데 ‘시 낭송’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시 낭송가가 되기 위해서는 시를 일천 번을 암송하여 몸에 익히고 감정을 이입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밤새 귀한 포도주와 토속 안주를 놓고 여류 시 낭송가 두 분, 그리고 박 시인과 서울에서 내려온 시와는 문외한인 우리 세 사람은 포도주를 마시며 시 낭송을 배우고 맛보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한호선 전 농협회장은 타고난 굵고 낮은 목소리로 자신의 삶이 이입된 까랑불을 낭송하면서 진지하고 엄숙함이 눈가를 적시는 듯 80평생 지나온 굴곡의 회상에 몰입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나는 광암마을의 추억을 담은 시 ‘유토피아 내 고향 광암마을’을 큰 소리와 고향에 대한 그리운 감정을 넣어 낭송했다. 주위의 분들 모두는 그 옛날 각자의 고향을 연상하며 시상에 잠기는듯 했다. 아리산방을 둘러싸고 있는 원시림 숲속에서 들려오는 깊은 밤 소쩍새 울음소리는 도시를 떠나온 서울 노객들에게 흥건한 취흥을 돋운다. 돌아가면서 들려주는 건배사는 한여름 밤의 분위기를 취흥으로 몰아넣는다. 청바지(청춘은 바로 지금부터), 진달래(진하고 달콤한 내일을 위하여), 변사또(변함없이 사랑하고 또 만나요) 등 여류시인들의 재치와 유머 그리고 낭랑한 시 낭송으로 오랜만에 시심에 폭 빠져드는 우리 여행객 모두의 아름다운 여름밤이었다. 

미술을 하는 나와 시를 짓고 낭송하는 사람과의 하룻밤의 만남이다. 그림과 시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생각해 본다. 

중국 북송 때 화가 곽희(郭熙)는 “그림은 소리없는 시(畵是無聲詩)”요, “시는 형태가 없는 그림”이다(詩是無形畵). 같은 시기 시인 소식(蘇軾)은 “시 속에 그림 있고(詩中有畵)”“그림 속에 시가 있다(畵中有詩)”고 했다. 이는 문인화의 바탕이 된 이론이며 후에 소식은 남종화의 시조로 이어졌다. 겸재 정선은 그의 절친이자 당대 최고의 시인 이병연과 시화상간(詩畵相看)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화가는 시적 감상을 키우고 시인은 이미지의 문법을 익히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중국의 회화이론은 그림과 글씨가 근원이 같다는 서화일치론(書畫一致論)에서 출발한다. 서예를 평가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평가하고 그림의 예술적 가치가 높다고 인정하게 된다. 여기에 서화동원론(書畫同原論)을 주장한 분은 조맹부다. 그림이 단지 붓놀림의 문제가 아니라 그림에서 시를 연상시킬 만큼 문학적 소양과 학식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화가 초년생인 나는 무언의 그림으로 표현하면서 지금까지 즐기고 있다. 즐기기 위해 나는 가급적 스토리가 있는 그림을 항상 생각해 왔다. 그러나 시 낭송은 몸의 동작과 말의 억양과 표정으로 한층 울림을 주는 면이 있다. 시 낭송은 시와 연극이 결합되어 더욱 시의 형상화가 되어 심금을 울린다고나 할까.

이제 나는 어떤 주제나 메시지가 있는 그림마다 시를 부여하여 그림과 시와 낭송을 함께하는 새로운 버전을 생각해 본다. 시화본인률(詩畵本一律). 시와 그림이 한 율격 속에서 어울린 여름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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