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 쓰는 영산강 유역 고대사
(172) 마한 르네상스, ‘세계유산’ 도전 시작하다

지난 5월 7일 전동평 군수와 유인학 마한역사문화연구회장 등은 김현모 문화재청장과 만나 한 시간 동안 마한문화의 세계유산 등재에 관해 깊이 있게 논의했다.
지난 5월 7일 전동평 군수와 유인학 마한역사문화연구회장 등은 김현모 문화재청장과 만나 한 시간 동안 마한문화의 세계유산 등재에 관해 깊이 있게 논의했다.

필자가 세계유산에 관심을 처음 가졌던 계기는 2003년 가을, 국제교류재단 초청으로 일본을 방문하였을 때 찾은 일본 3경(景)의 하나로 유명한 ‘미야지마’(宮島)의 이츠쿠시마(嚴島) 신사(神社) 오오토리를 보면서였다. 원래 미야지마는 인간의 거주를 허락하지 않은 신성한 섬이어서 바다와 섬의 경계 지점인 갯벌 위에 신사를 세웠다고 한다. 푸른 바다 가운데 떠 있는 신사 앞의 거대한 주홍색 오오토리가 신비감 있게 다가왔다. 오오토리는 헤이안 시대부터 8대에 걸쳐 지어졌고 지금의 것은 메이지 8년(1875년)에 완성되었다. 오오토리를 신사 본당과 200여 m 떨어진 바다 위에 배치함으로써 신사 건물은 멀리서는 작게 보이면서 산 전체와 함께 눈에 들어왔다. 평일임에도 관광객이 거리에 넘치고 전통 료칸에서 기모노를 입고 숙박하였던 기억이 선명하다. 세계유산 등재는 그 지역의 문화를 세계인들에게 널리 알리는 기회일 뿐 아니라 지역경제 발전의 토대가 된다. 

필자는 지난 호에 영산강 유역의 마한문화는 세계유산에 등재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가야 문화권에서는 △고령 지산동 고분군(사적 제79호) △김해 대성동 고분군(사적 제341호) △함안 말이산 고분군(사적 제515호) △합천 옥전 고분군(사적 제326호) △고성 송학동 고분군(사적 제119호)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사적 제514호)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사적 제542호) 등 7개 고분군을 세계유산에 등재하려고 10여 년 가까이 준비하여 지난해 가을 국내 심사에 통과하고, 올해 초에 유네스코 본부에 접수하여 2022년 본 심사를 기다리는 중이다. 

‘세계유산추진단’ 시급히 구성해야

우리 지역에서는 최근에 막연히 마한문화의 세계유산 등재를 이야기할 뿐 구체적인 움직임은 아직 없다. 2020년 11월 영산강 유역 마한유산의 세계유산 등재 세미나를 개최한 바 있는 영암군과 마한역사문화연구회(회장 유인학)는 지난 5월 7일 김현모 문화재청장을 서울 경복궁 내 고궁박물관 문화재청 사무실에서 만나 1시간 동안 마한문화의 세계유산 등재 문제를 깊이 있게 논의하였다. 이 자리에는 전동평 군수, 노영미 군의회 부의장, 임용수 전라남도의원(함평), 한갑수 전 농림부장관(나주), 유경현 헌정회장(순천) 등이 참석하였다. 

면담에 배석한 문화재청 여성희 세계유산과장은 가야유산의 세계유산 신청 준비과정 및 마한문화의 세계유산 등재 방안을 설명하였다. 전동평 군수는 가야는 등재 준비에 10년 걸렸지만, 영암·나주·함평 등지에서는 이미 마한문화의 특질을 입증하는 유물 및 관련 연구가 충분히 이루어졌기 때문에 속도감 있게 준비하면 1년 안에 등재 준비할 수 있다고 강한 자신감을 보여 참석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이 자리에 배석한 필자는 전라남도에서 지난 1월 개설한 ‘마한역사문화기록보관소’(일명 마한 아카이브)의 용역작업을 한 경험을 얘기하며 마한 관련 학술논문만 1천000여 편이 넘는다고 설명하며 충분히 등재 준비를 할 수 있다는 추가 설명을 하였다. 실제 ‘마한 아카이브’는 ‘가야고분 아카이브’는 물론, 백제 아카이브와 비교해도 훨씬 방대하다.

이날 면담에서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서는 ‘세계유산추진단’ 구성이 시급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동시에 마한유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서는 기초작업이 많이 이루어져야 하므로, 마한유산의 국가사적 지정 확대가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참석자들의 건의에 문화재청도 공감하고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약속하였다. 또한 마한문화의 가장 탁월한 가치의 하나에 해당하는 해양신앙의 기초가 되는 해신제 복원 및 영암 시종에 ‘해신 전시관’ 건립 등을 건의하여 긍정적인 답변을 얻었다.

문화재청장 세계유산 등재 협조 약속 

마한유산의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하여 가장 난제는 우리 지역 내부의 무력감이 아닌가 한다. 일부 여론 주도층들이 가야가 2009년에 준비를 시작하여 10년이 걸렸다는 점을 강조한다거나, 마한유산의 세계유산 등재 움직임이 자칫 가야 유산의 세계유산 등재에 장애가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등을 하는 경우를 목도(目睹)하곤하는 데 특히 경계해야 한다. 

이번 면담에서 필자가 가장 감명을 받은 것은 마한유산의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한 전동평 군수의 확고한 신념과 자신감이었다. 가야유산 등재 준비에 10년 넘었다고 하는 담당과장 보고에 마한유산 등재 준비를 3년 안에 할 수 있다는 의견과 함께 문화재청의 반응을 보려는 필자에게 전동평 군수는 “영암·나주·함평 등은 자료가 충분히 많이 구축되어 있으므로 속도감 있게 추진하면 1년 안에 잠정목록 신청이 가능하지 않겠는가”라며 필자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영암군의 확고한 의지에 공감한 김현모 문화재청장은 마한유산의 세계유산 신청에 협조하겠다고 거듭 약속하였다. 나주출신 한갑수 전 장관은 구순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면담에 참석하여 세계유산 신청에 앞장서겠다고 하면서 추진단 구성을 재촉하였고, 순천출신 유경현 헌정회장 또한 중앙 무대에서 필요한 역할을 하겠다고 하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지난 5월 7일 문화재청장의 만남은 마한유산의 세계유산 신청과 관련된 최초의 회의인 셈이다. 말하자면, 세계유산 신청과 관련된 위대한 거보(巨步)를 영암군과 마한역사문화연구회가 주도하는 뜻깊은 자리였다. 물론 세계유산 신청은 영암군 혼자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다. 나주시, 함평군, 무안군을 비롯하여 마한유산이 관련된 시군이 혼연일체가 되어야 한다. 전라남도가 중심이 되어 민관이 포함된 ‘마한문화세계유산추진단’이 결성되어 등재 준비에 속도를 내야 한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를 주도해야 한다.
 
마한유산의 세계유산 거보(巨步)

 

일본 3경(景)의 하나로 바다 위에 있는 오오토리(大鳥居). 미야지마(宮島)의 이츠쿠시마(嚴島) 신사(神社)와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일본 3경(景)의 하나로 바다 위에 있는 오오토리(大鳥居). 미야지마(宮島)의 이츠쿠시마(嚴島) 신사(神社)와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참고로, 가야의 세계유산 신청 준비과정을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세계유산 신청서에 “가야고분군은 주변의 중앙집권적 고대국가와 병존하면서도 연맹이라는 독특한 정치체계를 유지했던 가야문명을 실증하는 독보적 증거로서, 동아시아 고대문명의 한 유형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며 가야 고분의 역사적 가치를 부각시켰다. 2009년부터 가야유산을 세계유산에 등재하려고 계획을 세운 경상남도는 2012년 김해 대성동고분군과 함안 말이산 고분군을, 경상북도는 고령 지산동 고분군을 대표 고분으로 선정하고, 2013년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올렸다. 2015년에는 경남과 경북의 공동 추진으로 문화재청의 ‘우선등재 추진대상’에 올랐다. 2017년 가야 고분군 세계유산 등재추진단(http://www.gayatumuli.kr)이 발족했다.

또 2018년에는 문화재청의 권고로 창녕·고성·합천 ·전북 남원의 가야 고분군까지 추가했다. 이렇게 준비하였지만, 가야 고분군은 최종 후보 선정에서 두 번이나 보류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2020년 9월에서야 세계유산 등재 신청대상에 오를 수 있었다.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의욕으로만 이뤄지는 일은 아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세계유산 신청과 관련하여 마한유산의 국가사적 지정 확대, 마한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학술연구 총서 발행 및 국제학술 세미나 등을 개최하여 학문적으로 마한유산이 지닌 탁월한 가치를 입증해내야 한다.

마한역사문화연구회가 영암군의 도움으로 독무덤의 국제학술세미나 및 해양신앙의 학술연구를 준비하고 있는 일은 시의적절하다. 세계유산 신청 준비와 관련된 구체적인 용역도 시급히 이루어져 그에 따른 준비를 속도감 있게 할 필요가 있다. 지역민이 신청 준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다양한 기회를 만드는 것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날 행사를 준비한 유인학 회장과 참석자들은 세계유산 신청 문제를 문화재청과 공유하며 마한유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반드시 이루어내겠다는 다짐을 거듭했다. 주말도 반납하고 면담 준비를 위해 애쓴 영암군 관계자들의 고마움을 기억하고자 한다. 독자 여러분의 뜨거운 성원을 바란다.

<계속>
  글=박해현(문학박사·초당대 교양교직학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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