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 홍 /  서호면 몽해리 전 목포시 교육장 전 전남교육청 장학관 전 목포석현초 교장
이 기 홍 /  서호면 몽해리 전 목포시 교육장 전 전남교육청 장학관 전 목포석현초 교장

제46대 미 대통령 집무실이 공개됐다. 트럼프가 떠나고 바이든이 들어오기 전까지 남은 시간은 짧은 5시간, 그런데도 참모들은 그 시간을 활용하여 바이든의 색깔을 유감없이 나타냈다. 영국 여왕이 선물했다는 결단의 책상은 그대로 놔둔 채 바이든 체형으로 의자를 바꾸고, 도배를 다시 했다. 벽에 걸어둔 노예제를 찬성한 제7대 대통령 엔드루 잭슨 초상화를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과학자 출신 정치가 벤저민 프랭클린 초상화로 교체하고, 장식장 장식물로는 트럼프 훈장 대신 바이든 가족사진으로 바꿨다. 5시간 만에 달라진 바이든 대통령 집무실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나는 재직시절 맡은 업무로 인해 교육기관 기관장들의 집무실을 수도 없이 드나들었다. 그 가운데에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집무실이 있다. 강진의 모 여자고등학교 교장실이다. 수녀분이 교장이었는데 당신이 입고 있는 수녀 복장처럼 정갈했다. 간결한 적갈색 집무용 책상 하나에 단정한 적갈색 걸상 하나, 오는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소규모 소파와 탁자, 그리고 아이보리색으로 순결하게 도장된 천정과 벽이 전부였다. 장식은 어디에도 없었고 군더더기는 존재조차도 허락하지 않았다. 정기적인 종합감사를 하기 위해 방문했으나 더 이상 무슨 서류를 들춰보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할 정도였다. 감사결과는 교장실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집무실은 장성의 모 소규모학교 교장실이다. 당시 현직이었던 안병영 교육부 장관, 오영대 전남교육감과 함께 방문한 교장실의 모습은 수행한 나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비좁았고, 벽면에는 학생들의 학력 실태를 기록해 놓은 현황판이 걸려 있었다. 교장실은 학력이 뒤떨어진 부진아를 지도하는 보조교실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장관도 교육감도 그리고 수행한 나도 조그마한 걸상에 앉아 당당하게 학교경영에 대해 소신을 피력하는 학교장의 브리핑을 경청할 수밖에 없었다. 교장실 어디에도 학교장의 권위를 위해 교육예산이 쓰인 곳은 없었다. 온화한 얼굴에 신념에 찬 어조, 교육의 본질을 추구해 가는 학교장의 모습만이 그 학교 교장실 실내 장식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그런데 어떤 시군 교육장은 부임하자마자 예산을 전용하면서까지 교육장 집무실을 호화롭게 꾸민 적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그 교육장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하게 되었고, 결국은 감사를 받아 좌천성 인사를 당하기도 했다. 지역 교육청에서 근무하던 시절 한번은 모 학교장 집무실 집기를 바꾸겠다는 품의가 올라온 적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많은 예산을 들여 집기를 바꾸는 것은 옳지 않을 것 같아 반려했다. 잊어버릴 만하니 다시 똑같은 품의가 올라왔다. 여러 가지 생각이 밀려와 혼란스러웠으나 실무자와 함께 그 학교 교장실을 방문해 현장에서 아직도 반짝이는 이런 집기를 바꾸는 데 예산을 쓰는 것이 과연 옳은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참석한 관계자들은 모두가 침묵했다. 결국 학교의 다른 시설을 둘러보게 됐고 급식실 입구가 아이들의 잦은 드나듦으로 형편없이 낡았기에 그것을 보수해 주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도교육청 근무시절 어떤 인사는 장학관으로 보직하는 과장으로 부임하자마자 전임자가 쓰던 과장실 집기를 바꾸기도 했다. 더 놀라운 일은 그가 떠나자마자 그와 불편했던 다음 사람 역시 그 사람 냄새가 싫었는지 다시 들어내며 전임자의 흔적을 지우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궁궐이 호화로울수록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진다고 하지 않던가. 미국 대통령 집무실을 보면서 우리 대한민국의 기관장실은 다 안녕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사비를 들여 고치고 들어내고 바꾼다면야 누가 이를 시빗거리로 삼겠는가. 국민에게 거두어들인 돈으로 억지로 고치고, 쓸 만한데도 들어내고, 내용 연수가 한참 남았는데도 바꾸기에, 태클을 걸어보는 것이다. 

나는 가끔 우리 피 속에는 모두 독재자가 될 수 있는 인자가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단지 그런 기회를 포착하지 못해 독재자를 욕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나 역시 국민의 혈세라고 말은 많이 하면서 실제로는 그 피를 쓰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지난날의 나 자신을 돌아보면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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