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 쓰는 영산강 유역 고대사
(153) 보성강 유역의 마한(上)

“잠들었던 고대 해상왕국 마한을 깨우다” 2020 영산강유역 마한 문화포럼이 지난 13∼15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정재숙 문화재청장, 김영록 전남도지사, 김한종 전남도의회 의장이 금동관과 금동신발을 마한의 거대한 옹관에 넣은 뒤 합구하고 있다.

전남의 뿌리, 마한사 바로 세워야

지난 11월 13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영산강 유역 마한문화권 마스터 플랜 수립을 위한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국제학술대회 행사 이전에 ‘잠들었던 고대 해상왕국 마한을 깨우다’라는 주제의 비전 선포식이 열렸다. 비전 선포식에는 김영록 전라남도지사, 정재숙 문화재청장, 전동평 영암군수를 비롯 마한문화권발전협의회 11개 시장·군수, 유인학 마한역사문화연구회장 등 여러 내빈들이 함께 했다. 서울 마당 대형전광판으로 생중계된 비전 선포식에선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기증한 대형옹관 재현품을 활용해 잠들었던 고대 해상왕국 마한을 깨우고 도민의 염원을 담아 옹관을 봉인하는 독특한 퍼포먼스를 펼쳤다. 봉인된 옹관은 전남도청에 전시에 상시 공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번 행사는 11월 13일부터 15일까지 3일간 서울 마당 야외에서 마한왕국의 대표적 유물인 신촌리 9호분 출토 금동관을 비롯하여 복암리 정촌고분에서 출토된 금동신발 등이 전시됐다. 이밖에도 지난해 금동관편이 밝혀져 화제가 된 영암 내동리 쌍무덤 등 마한유적의 발굴현장 등 마한 홍보영상이 서울 마당 대형전광판과 영상홍보관에서 상영되는 등 국민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대학생·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전남의 마한’을 주제로 학술 및 웹툰 경진대회도 열었다. 미래세대의 젊은 청년들이 마한을 보다 학문적으로 논리적으로 접근하는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행사는 지난 5월 통과된 이른바 ‘마한 특별법’을 계기로 마한사를 전남 발전의 새로운 동력으로 삼으려는 의도에서 추진되었다. 전라남도는 마한 역사권 정비계획을 수립하여 영암내동리 쌍무덤 등 10개소를 향후 3년간 국가사적으로 승격시킬 계획이다. 이번 행사는 ‘잠들었던 고대 해상왕국 마한을 깨우다’라는 주제 그대로 잊혀졌던 마한사를 새롭게 재인식하는 계기와 더불어 국민들에게 마한사에 관심을 가지도록 하는 데 의의가 있다.

다만, 행사 및 세미나를 전라남도 마한자문회의 자문위원 자격으로 참석한 필자는, 행사의 부제로 ‘전남의 뿌리, 마한’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점이 아쉽게 다가왔다. 마한은 필자가 누누이 강조했지만 한국 고대사의 원형 임에 분명하다. 마한에서 변한·진한이 나왔고, 유이민 세력인 백제는 마한의 땅을 얻어 나라를 세웠다. 마한사람이 변한·진한의 왕을 하였다. 마한이 한국 고대사의 뿌리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그 마한의 중심지이자 문화의 발상지가 영산 지중해 일대다.

따라서 ‘한국 고대사의 뿌리 마한’을 전면에 내걸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필자가 언급한 바 있지만, 마한 관련 연구기관이 전남·북에 20개소나 된다. 최근 20년 동안 마한 관련 발굴보고서, 논문 등이 1000편이 훨씬 넘는다. 2019년 전남문화재연구소가 펴낸 ‘전남의 마한유적’에 의하면 발굴조사 지역이 231개소나 된다. 바야흐로 마한시대가 도래한 셈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4세기 후반 백제 근초고왕 때 마한 전 지역이 백제의 수중에 들어갔다는 주장이 교과서에 변함없이 그대로 남아 있는 현실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가야문화는 세계유산 등재 준비가 거의 끝났다고 하는데, 우리는 이제서야 준비 단계에 있는 등 20년 동안 마한사 연구는 사실상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최근 부쩍 듦은 어쩔 수 없다.

여하튼, 전남의 뿌리인 마한사를 새롭게 정리하여 우리 지역의 정체성을 삼고, 나아가 지역 발전의 새로운 동력으로 전라남도는 삼으려 하고 있다. 시종 일대는 마한의 심장이고. 고대 영산 지중해 중심의 마한문화가 꽃피운 곳이다. 이곳 마한 역사문화공원을 중심으로 시종 일대에 집중되어 있는 대형고분 등을 정비하여 이웃 반남·복암리 고분과 연계한 영산 지중해 마한문화 벨트를 구축하여 마한의 체험 길을 만들어 지역관광 상품으로 만들려는 지자체와 발상의 전환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문화는 바로 투자 이익이 눈에 얼른 띠지 않는 산업이다. 더구나 그동안 사라진 마한사에 관심을 갖는 데 대해 대다수 군민들은 쉽게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영암, 나아가 전남미래 발전의 중요한 동력임을 인지하고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야 한다. 그래야만 지자체는 추진 동력을 얻게 된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보성강 유역 지석묘 밀집도 가장 높아     

영산 지중해와 함께 마한 영역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지역이 보성강 유역이다. 보성강 유역은 전남지역에서 구석기 문화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나오고 있는 지역이다. 나아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 묘제인 지석묘의 밀집도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보성강 유역은 일찍부터 선진문화를 일구었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적인 발전을 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높은 산악지대를 흐르는 보성강은 장년기의 당당한 모습으로 수량이 풍부하고 유속이 빨라 노년기의 느릿한 흐름을 가지고 있는 다른 지역 강들과 비교된다. 이 때문에 보성강 유역은 작은 분지나 지류의 침식 활동으로 형성된 소규모 침식평야들이 대부분으로, 영산강처럼 넓은 평야 지대가 없어 작은 규모의 읍락이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마한 소국들이 산곡(山谷)에 흩어져 있었다는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기록은 보성강 유역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한다.

보성강 유역의 지석묘 분포를 통해 작은 규모의 집단이 여러 곳에 흩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소규모 정치 세력들이 독자성을 가지고 있어 통합력이 미흡할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좁은 산악 지대를 굽이쳐 흐르는 보성강, 섬진강 유역에는 영산강 유역이나 해남 반도처럼 넓은 평야 지대가 없어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진다. 외부와도 단절되어 있어 새로운 문화를 접할 기회도 충분하지 않았을 것이고, 설사 새로운 문화가 유입되었다 하더라도 강한 토착성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보성강 유역 마한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유적지는 모두 9개소가 발굴 조사되었다. 이를 통해 보성강 유역의 마한의 실태에 한걸음 접근하는 것이 가능해졌다.<표>

이미 필자는 보성강 유역의 마한을 살핀 바 있다. 이번에는 도표에 나와 있는 유적·유물을 토대로 보성강 유역의 마한역사에 한 걸음 더 들어가 보기로 한다.<계속>

글=박해현(문학박사·초당대 교양교직학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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