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의 송 학산면 광암마을 전 농협중앙회 신용대표이사 전 농민신문사 사장 한·일농업농촌문화연구소 공동대표

농업이 지닌 치유의 가치 재발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질병이 창궐하고 있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버스도 지하철도 탈 수 없다. 갈 곳도 없고 오라는 곳도 없으니 날마다 손바닥만 한 텃밭에 나가 지낸다. 그러고보니 팬데믹(Pandemic·새로운 질병의 세계적 대유행) 상황에 노인들에게 가장 좋은 일거리가 바로 농사일인 것 같다. 코로나19 창궐은 지난 수십년간 생산성 향상이나 글로벌리즘에 내몰리기만 했던 농업이 본래 지니고 있었던 치유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농산촌에는 자연환경이나 지역사회 유지, 전통문화와 상부상조 정신처럼 금전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가치도 있고, 수자원 함양이나 산소 배출 그리고 토양 유지 등 금전으로 환산이 가능한 가치도 있다. 이들의 가치를 최대한 활용해 자본주의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수단이 곧 ‘농산촌자본주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즉, 농산촌자본주의는 농산촌의 금전으로 환산 불가능한 가치와 환산 가능한 가치를 모두 발굴해 도시주민과 지역주민이 함께 그 가치를 최대한 활용하도록 하자는 생활철학이다.

실제로 세계인구 증가, 식량자원의 위기, 수자원 고갈, 지구온난화와 환경오염 등은 자본주의의 근간인 시장경제 논리나 금융자본주의 원리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 때문에 자본주의의 틀에서 농산촌 생활로 건강을 유지하면서 노동과 생산활동을 함께하는 생활방식을 권장하는 농산촌자본주의가 주목받을 것임은 자명하다.

세계경제포럼(WEF)은 <2020 세계위험보고서>에서 세계를 위협하는 요인 1위로 ‘이상기후’를 꼽았다. 그리고 기후변화 대응 실패, 자연재해, 생물 다양성 손실과 생태계 절멸, 인간이 초래한 환경 피해와 재난 등이 그 뒤를 이어 환경문제가 상위권을 휩쓸었다. 세계자연기금(WWF)도 최근 <지구의 미래>라는 보고서에서 ‘지구 생태계 변화로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은 매년 최소 4천790억달러(약 575조원)의 손실이 발생, 2050년 총 손실액이 9조8천600억달러(약 1경2000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농촌을 지역순환형 경제공동체로

이처럼 21세기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환경문제이고, 이를 해결해 나가는 국가가 세계 각국을 선도하는 국가로서의 입지를 확보해나갈 것이다. 따라서 코로나19가 바로 지구환경의 역습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의학의 성인 히포크라테스는 “인간은 자연과 멀어지면 질병과 가까워 진다”고 했다. 그의 통찰은 ‘코로나19 사태도 어찌 보면 인간이 만들어낸 환경오염과 파괴에 대한 자연 측의 반격’이라는 견해와 궤를 같이한다.

코로나19는 현대의 글로벌리제이션(세계화)에 대한 경종이며, 세계 경제 발전의 질적 전환은 물론 구조변혁을 요구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건강을 지키는 지구촌으로 만들어야 한다. 기업농이나 스마트팜 보다는 농촌 자연경관과 농업의 다원적 가치를 유지하고 보전하는 협동조합 중심의 지역순환형 경제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지역순환형 사회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소규모’ ‘분산’ ‘로컬’의 설계원리가 작동하는 지방의 시대가 돼야 한다. 재생 가능한 에너지나 식량 등 많은 자원이 존재하는 농산어촌을 부활시키는 국민운동이 필요하다.

코로나19 이후에는 도시와 농촌이 함께 가는 농촌·도시 상생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전통문화를 지키고 상부상조의 정신을 살리는 농가와 농촌이 유지될 수 있도록 농업력(農業力)과 지역력(地域力)을 발휘하자. 그리하여 답답한 마스크를 쓰지 않고서도 잘사는 토머스 모어가 표현한 유토피아와 같은 농촌, 즉 농토피아(農+Topia)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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