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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 서부와 동부는 같은 마한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다■ 새로 쓰는 영산강 유역 고대사
<144> 무안의 마한(上)
무안의 마한 유적군은 생활유적 5곳, 분묘유적 10곳으로 대부분이 분묘 유적인 영암지역과 비교할 때 생활 유적이 많이 확인되고 있다. 이들 유적은 영산 지중해 입구의 몽탄면 일대와 서해 해로의 해제 반도로 나뉘어 확인되고 있다. 사진은 무안 양장리 유적지 전경(백색선 내 사진 위는 양장리 주거지 유적, 아래는 무안 사창리 옹관묘 유적)

마한, 그러면 나주·영암을 대부분 떠 올린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함평을 생각하기도 한다. 영산강 입구의 영암 반대편에 있는 무안 역시 지정학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마한 문화가 발달하였을 개연성은 얼마든지 있다. 오늘날 무안, 목포, 신안을 아우르는 무안 반도는 영산강 유역의 경제적 기반에 낙랑에서 가야를 거쳐 대마도를 거쳐 왜로 넘어가는 항로에 있어 해상무역까지 보태져 경제적인 발전을 구가했을 가능성이 있다. 신안의 배널리 고분군이 대표적으로 알려 있지만, 무안 반도와 가까운 곳에 있는 부안의 죽막동 해양유적을 통해서도 무안 반도가 대외 교류사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전남의 마한 유적’에 무안지역 17곳의 고분, 생활 유적이 그동안 발굴 조사되었음을 알 수 있다.<표 참조> 7건을 발굴 조사한 영암보다 숫자적으로 훨씬 많다.

몽탄면 일대와 해제 반도로 나뉜 유적

무안의 마한 유적군을 보면 생활 유적 5곳, 분묘 유적 10곳으로 나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생활 유적인 미암 선황리 유적 한 곳을 빼고 대부분이 고분 유적인 영암지역과 비교할 때 생활 유적이 적잖이 확인되고 있는 점이 특히 눈에 띈다. 이들 유적의 분포 산지를 보면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영산 지중해 입구에 해당하는 몽탄면 일대와 서해 해로에 있는 해제 반도로 나뉘어 확인되고 있다.

이 가운데 양장리 유적, 마산리 신기 유적, 용정리 신촌 유적, 연리 유적 등 네 곳의 유적에서 확인된 유적·유물의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영산 지중해 연안의 몽탄면 양장리 유적은 2000년·2006년 두 차례에 걸쳐 발굴 유적·유물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이 유적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새삼 확인시켜 주었다. 이 유적은 3~5세기 마한시대의 주거지로 구릉 완사면부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 주거지 평면 형태는 영산강 유역의 대표적인 형태인 방형계로, 규모는 4~5m가 일반적이나, 일부는 거의 배나 되는 7~8m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주거지 내부에서 화덕 시설도 주거 내의 북벽이나 서벽 아래를 선호하는 정형성을 보여주었다. 신기 유적은 내부 시설은 부뚜막, 사주공, 벽주공, 배수구 등이 확인되고 있다. 부뚜막은 위치가 중앙과 북쪽에 위치해 있다.

마산리 신기 유적은 역시 양장리 유적과 같은 시기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일부 주거지 하단부가 유실되어 정확하지 않지만 대부분 방형으로 확인되고 있다. 신기 유적은 영산강 내해가 아닌 무안 반도의 서해 항로에 위치해 있어 양장리 유적과 거리가 꽤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방형계의 구조를 하고 있는 것은 두 지역이 동일한 마한 문화권임을 알려 준다.

몽탄과 해제 반도는 공통된 문화권

출토 유물도 보면 양장리 유적의 발형 토기, 장란형 토기, 호형 토기 등과 신기 유적의 발, 시루, 장란형 토기, 방추차 등이 거의 비슷하여 두 지역이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연리 유적에서 영산강 유역의 대표적인 토기인 유공광구소호, 집흔이 있는 단경호 등이 나왔다. 무안 반도가 영산 지중해와 같은 마한 문화를 공유하고 발전시켰음을 이들 유적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마산리 신기 유적과 용정리 신촌 유적은 같은 현경면 지역의 생활 유적이고 시기도 거의 비슷한 4세기의 생활 유적이다. 두 유적은 4세기 중반 서로 공존하고 방형계라는 점에서 공통적인 측면도 보이고 있으나, 무안 용정리 신촌 유적은 신기 유적과 차별성이 보인다. 이 유적은 2016년 발굴 보고서가 나왔는데, 먼저 모두 기둥이 네 군데 있는 사주식 주거지이고 주공의 평·단면 형태가 방형이라는 점이다. 이처럼 주공의 방형 형태는 흔치 않는 형태로 목재 가공 기술이 상당히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다음으로는 부뚜막 시설이 점토뿐만 아니라 석재를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 번째는 신기 유적의 대벽 건물지와 관련 있는 주공시설은 없고 한쪽 벽면에 돌출된 같은 지주식 주공이 사주식과 결합되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무안지역 서쪽 해안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는 취락의 모습이라 한다.
 
연리 유적의 옹관은 복장의 흔적

마지막으로 운남면의 연리 유적은 분묘 유적으로 일상 용기 2개를 이용하여 횡치시킨 대용옹관으로 합구식이다. 대옹은 장란형 토기, 소옹은 호형 토기를 이용하였다. 합구된 옹관의 전체 길이는 83cm이다. 이 고분의 크기는 18.7m, 높이 1.5m의 비교적 적지 않은 규모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합구된 옹관의 전체 길이가 83cm에 그쳤다는 것은 이 고분의 피장자가 1m가 안 되는 것으로 보아 아이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이의 고분을 무려 20m 가까이 커다란 봉분으로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이 있다. 고분의 규모만 놓고 보면 이 지역 세력가의 무덤이었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반면 옹관 길이가 83cm에 그쳤다는 것은 옹관에 시신을 직접 넣었을 가능성보다 복장(複葬)일 가능성을 보여준다. 곧 이미 다른 곳에서 육탈된 유골을 수습하여 옹관에 담았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글=박해현(문학박사·초당대 교양교직학부 초빙교수)

박해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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