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순 흥 사회학자 한국사회조사연구소 소장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장 전 광주대학교 교수

“변화를 두려워하는 일본은 20년 내에 반드시 몰락한다”

세계적인 투자가로 유명한 짐 로저스가 얼마 전에 한 말이다. 사회학자의 시각에서 일찌감치 말하고 있었는데 짐 로저스가 말하니 사람들은 이제야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

비록, 타의에 의한 개국이었지만,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아시아권에서 다른 어느 나라보다 서구의 문물을 먼저 받아들여 근대화되었고, 아시아의 선진 강국으로 태평양 전쟁을 치를 정도로 세계사에 흔적도 남겼다. 그러나 거기까지.

2차대전으로 폭망한 일본은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계기로 경제적으로 되살아나기는 했지만, 전쟁에 대해 되돌아보지도 않고, 역사를 되짚어보지도 않고, 그 전 상태에서 머물렀다. 150여 년 전, 국가의 외형적 체제와 물질적 근대화는 이뤘지만, 1000년에 이르는 사무라이 시대의 지배구조와 생존방식이 그대로 살아남아 일본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산업화 과정에 따른 직업구조의 변화로, 중상층에 해당하는 새로 생겨난 기술자나 전문가의 머리 수가 늘어나면서 하류층에서 중층이나 상류층으로 올라가는 구조적 신분 이동은 부분적으로 있었지만, 오야붕 꼬붕의 지배구조에 젖어있는 일본사회는 아직도 신분의 변화가 쉽지 않다. 문물은 많이 변했지만, 대부분의 일본 사람들의 의식이 변화를 따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제도는 도입되었지만, 신분 사회의 전통이 그대로 남아있는 폐쇄사회는 신분 이동이 용납되지 않고, 그것이 당연시 되다보니 가업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형태가 되어버렸다.

능력에 상관없이 지배계급은 대를 물려 정치(지배)를 하고, 명문대학을 나온 수재도 높은 신분의 벽을 넘지 못하고 가업을 이어받아 우동가게를 이어가야 하는 폐쇄사회,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지배계급에 순종하는 일본사회, 어떤 사람들은 이를 장인정신 전통이라고 추켜세우지만, 단순히 정체된 사회다.
 
변화를 따르지 못하면 도태뿐이다

전통을 사랑한다? 전통을 사랑하고 지키는 것과 옛날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은 다르다. 일본사회는 변화를 두려워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일본은 모방의 천재라고 불렸다. 매뉴얼 사회라고도 부른다. 얼핏 좋은 말로 들렸는데, 매뉴얼이 갖춰지지 않은 사태는 어떻게 대처했는가? 후쿠시마 원전사태나 코로나19 상황에서 보듯이 준비된 매뉴얼이 없을 때 무너졌고 무너지고 있다. 모방은 누군가 먼저 해놓은 사람들이 있을 때만 비로소 가능하고, 정체된 사회의 매뉴얼은 겪어보지 못한 일을 대비하지는 못한다. 창의적이지 않기 때문에, 결코 먼저 앞서서 나가지를 못한다.

기술의 변화는 그만큼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바꾸고 가치관이나 의식을 바꾸게 된다. 인류역사에서 수 천년에 이르는 농경사회는 변화가 거의 없거나 있었더라도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더뎠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의 사회변화는 농경사회의 변화 속도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일본이 정치형태와 산업형태에서는 일찌감치 변화를 겪었지만 그들의 생활을 지배하는 가치관(오야붕 꼬붕 정신)은 변하지 않고 일본사회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일부 깨인 시민들도 있지만 이들이 주류를 이루지 못한다) 정부(오야붕)가 가만히 있으라 하면, 옳고 그르고 판단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사회가 일본이다.

후쿠시마 원전사태 때, 잠시 세계 언론이 질서를 지키는(약탈이나 방화 같은 혼란이 없는) 일본의 시민 정신을 찬양했다. 일본을 아는 사람이 볼 때 이것은 민주시민 정신이 아니라, 다만 ‘오야붕이 시키면 그대로 따라서 할복이라도 하는 꼬붕문화’였을 뿐이다.

1차(증기기관)와 2차(전기에너지) 산업혁명을 먼저 받아들인 일본은, 한때 아시아 최고였고, 한국을 식민지로 두었었다는 자부심은 있지만, 어디까지나 과거의 영광에 바탕을 둔 오만일 뿐,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사회체제나 정치체제의 변화를 이루지 못하고, 4차(AI) 산업혁명 시대는커녕 3차(인터넷) 산업혁명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신용카드가 안 통하는 곳이 많아 언제나 현금을 지니고 다녀야 하는 선진국(?), 코로나19 상황을 아직도 팩스로 보고하는 행정체계, 도장이 있어야 은행 계좌를 열 수 있는 나라, 인터넷 사용자가 적어서 학생이 학교에 나가고 교사는 집에서 강의하는 우스꽝스런 온라인 수업, PC를 다루지 못하는 IT장관... 지금의 일본을 나타내주는 대표적인 것들이다. 전 세계가 첨단을 걷고 있는데도 아직도 장인정신(?)만을 고집하며 변화를 못 따라가는 디지털 후진국이다.

백인과 인디언의 전쟁, 선과 악의 시각으로 볼 일이 아니다. 백인이 선인이었다 할지라도 인디언은 멸종되었을 것이다. 대포와 총을 가진 철기문화와 돌도끼와 화살로 무장한 석기문화가 부딪쳤으니 뒤진 문화가 무너진 것은 당연한 이치다. 미국과 쌍벽을 이루던 초강대국 소련의 몰락, 창의적이고 자발적인 변화가 이루어질 수 없는 정체된 통제사회의 말로였다. 짐 로저스가 아니라도 사회학자의 시각에서는 소련의 몰락이 쉽게 이해되고, 일본의 몰락이 일찌감치 예견되었다.
 
코로나19와 새 패러다임, 비대면 문화

코로나19로 많은 것이 바뀌고 있다. 사람들이 직접 만나서(contact) 이루어지던 일들이 만나지 않고 비대면(untact)으로 이루어진다. 식당에서 먹던 음식이 배달음식으로, 매장에서 구하던 물건이 온라인구매와 택배로, 모여서 보던 공연이 유투브나 SNS 앱으로, 사무실 출근이 재택근무로, 모여서 하던 회의가 화상회의로, 직접 찾아서 축하나 애도를 하던 결혼식장과 장례식장의 애경사가 전화나 인터넷 뱅킹으로... 지금까지도 부분적으로 이루어지던 것이 코로나19를 계기로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고 나면 재난 상황에서 생존하기 위해 썼던 ‘대체 수단’이 ‘일상 수단’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생활의 대변혁, 문화의 대변혁이다. 많은 업종이 망하고 많은 업종이 새로 흥하게 될 것이다. 세계의 질서도 달라질 것이다. 인간사회의 가치관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

지금까지의 사회변화가 기술의 발달에 따른 것이었다고 하면, 코로나19 이후의 변화는 대재앙의 극복을 계기로 이루어질 것 같다. 지난 몇 달은 우선 눈앞에 급한 불 끄는데 바빠서 부분적으로만 이루어졌지만, 비대면(언택트) 문화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고 비대면 문화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기간이 되었다. 필요성과 가능성을 충분히 겪은 것이다. 앞으로의 생활과 문화, 의식은 코로나19 이전과는 상상도 못할 정도의 속도와 양으로 전개될 것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다행히 우리 사회는 코로나19에 현명하게 대처해왔고 발빠르게 대응해왔고, 세계를 이끌어왔다. 우리의 밝은 미래를 내다본다. 변화를 따르지 못하면 도태뿐이지만, 변화를 이끌어가면 흥할 수 있다. 좋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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