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기 천 영암군의회 의원

지난 7월 29일 영암군의회 주관으로 ‘대불산단 노동자 작업복 공동세탁소 설치·운영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주제발표와 지정토론만이 아니라 생생하게 터져 나온 노동현장의 목소리로 토론회장은 한여름 열기만큼 달아올랐다.

토론회에서는 대불산단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전남노동권익센터의 수요조사 결과와 전국 1호 노동자작업복 세탁소를 운영 중인 김해시의 사례를 공유했다. 뒤이은 토론에서는 조례 제정까지 마치고 의욕적으로 개소를 앞두고 있는 광주광역시의 추진상황과 영암군의 계획을 청취했고 작업복에 얽힌 현장 노동자의 실상을 접했다.

특히 조기형 금속노조 서남지회장의 증언은 참석한 청중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딸아이가 오랜기간 동안 아토피성 피부질환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데 그 원인이 다름 아닌 자신이 입었던 작업복이었다는 서글픈 고백이었다. 작업복과 일반 옷을 함께 세탁했던 세탁기가 고장 나서 분해해보니 놀랍게도 쇳가루와 분진이 가득 쌓여 있었다는 것이다.

2005년 일본을 큰 충격에 빠뜨렸던 구보타 기계의 아스베스트 사건을 연상하게 한다. 아스베스트(석면)에 전혀 노출된 적이 없던 구보타 기계 직원의 아내 4명이 중피종으로 사망했는데 그 원인을 추적해보니 남편들의 작업복에 묻어 있던 석면을 세탁과정에서 아내들이 들이마셔 발병했던 것이다.

전남노동권익센터가 조사한 결과 대불산단 노동자 75%가 작업복을 집에서 세탁한다고 응답하였는바 교차오염으로 인한 2차 피해가 심히 우려스러운 지경이다. 작업복 세탁은 노동자만 아니라 노동자 가족의 건강과 복지에 직결된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토론회에 참석한 노동자들의 현장감 넘치는 문제의식과 다양한 대안 제시야말로 토론회의 일등공신이었다. 노동 형제들은 무엇보다 먼저 대불산단의 특징을 잘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불산단은 조선소 중심의 생산공장들로 이뤄져 있다. 그런 탓에 용접 잔해물과 페인트 분진, 쇳가루 기름때 등 유해물질로 인한 오염이 빈번하고 작업복의 부피가 크며 무겁다. 그런가 하면 민감한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사업장도 혼재돼 있다. 따라서 대불산단 작업복세탁소는 일반 작업복과 유해물질오염 작업복을 분리해서 세탁하는 공정이 필요하고 세탁기계의 처리용량도 대폭 상향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두 번째로, 작업복 세탁소는 건강하고 안전한 노동을 위한 첫걸음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소규모 사업장도 세탁소 샤워실 휴게실 같은 산업안전과 노동자 건강을 위한 필수조치를 명문화해 놓았지만 노동현장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대불산단이 산업재해로 악명 높은 것이 과연 우연일까? 작업복 세탁소는 노동자 평균연령 50세를 넘어버린 대불산단에 청년들이 다시 돌아와 일하고 싶은 산단으로 거듭나는 돌파구가 되리라 믿는다.

대불산단 작업복세탁소는 친환경세탁소여야 한다는 점도 강조되었다. 유해물질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친환경 세탁방식을 도입하고 배출물의 정화과정 또한 친환경적으로 설계하여 깨끗한 작업복을 위해서 타인과 생태계에 오염을 전가하는 우를 범하지 말자는 것으로 깊이 공감한다.

세탁소 노동자들의 깨끗하고 건강한 작업환경도 매우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세탁소의 입지와 작업 동선, 휴게공간은 철저하게 세탁소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을 보장하도록 설계해야 마땅하다.

그렇다면 대불산단 작업복 공동세탁소는 누가,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당사자들의 의지와 지혜를 모으는 일이 시급하다. 작업복 세탁소의 성패가 이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영암형 노사민정 협력모델을 찾아야 한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단체는 지역 노동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세탁소 운영에 필요한 물질적 준비와 인력개발에 나서야 한다. 경영주들은 세탁소의 한쪽 수혜자이므로 세탁소 설치와 운영에 필요한 재원을 출연해야 한다.

영암군 행정은 전남도와 협력체계를 갖춰서 세탁소 건립과 중단기 운영전략을 세워야 하고 경영주들과 노동자들의 참여를 적극 유도하는 한편 홍보에 힘을 쏟아야 한다. 전남노동권익센터는 세탁소 개소 후 이용자와 운영자 실태조사를 통해 노동자 샤워실을 포함한 세탁소 발전방안을 연구해주면 좋겠다. 의회는 조례제정을 통해 지원 근거를 마련하고 이해 당사자들 간의 원활한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데 역할을 해야 하겠다.

이번 토론회는 노동자와 노동단체, 지역주민, 경영주, 의회와 집행부, 사회단체까지 한자리에 모여 모처럼 지역 현안에 대한 격의없는 소통과 공감을 이뤄냈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일은 통과의례가 아니라 집단지성을 형성해가는 필수과정이란 것을 이참에 다시 새롭게 깨달은 셈이다.

저작권자 © 영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