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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 공부로 코로나19를 극복하자
윤 재 홍

서호면 몽해리 아천마을 출신
연합뉴스 뉴스통신진흥회 이사
전 경기대 언론미디어학과 교수 (정치학 박사)
전 KBS제주방송총국 총국장

자택 서재에서 하얀 화선지에 붓글씨를 써 내려간다. 검은 먹물이 붓끝을 통해 흰 종이 위에 흘러내려 온갖 글씨가 디자인 하듯이 정교하게 그려진다. 이 순간 온갖 세상의 고통과 잡념이 말끔히 사라진다. 마치 신선이 되는 황홀한 기분으로 상쾌해진다. 깊은 산속 바람소리·새소리·물소리를 들으면서 명상을 하고 있는 중견스님의 기분보다 더 맑고 청아한 분위기로 바뀐다.

지난 2월부터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19는 국내는 물론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각종 모임은 중단되었다. 학교와 공공시설 등에서도 비상 상태에서 전염병과 대치하고 있다. 24시간 답답한 마스크를 쓰고 더위와 함께 견디기 어려운 일상생활을 해야만 한다.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요즘 무더위와 함께 더욱더 인간다운 생활이 어려워져 걱정이 태산이다.

이럴 때 서예하는 사람들은 글씨에 전념하며 답답한 상황을 극복하며 보람을 느낄 수 있다. 위기의 전염병 속에서 여유 있고 가벼운 마음으로 화선지에 붓글씨를 쓰는 모습은 멋지고 편안해 보인다. 특히 서예는 정년 후 노후를 건강하고 보람을 느끼게 하는 정신건강에도 큰 도움을 준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서예를 바로 시작하면 된다. 큰 돈 들지 않고 시간과 약간의 흥미와 노력만 있으면 서예를 할 수 있다.

서예 공부는 대부분 주민센터에서 서예를 가르치는 동호회나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이런 가까운 교육프로그램에 가입만 하면 된다. 이곳에는 유명한 서예가들이 자원봉사자로 나와 매우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또 동료들과 함께 붓과 먹과 화선지만 준비하면 된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서예가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열심히 배우면 자신도 모르게 실력이 늘어 서예가의 길을 갈 수 있다.

서예의 정의는 ‘붓으로 글씨를 쓰거나 그 방법을 배우는 조형예술’ 이라고 한다. 서예란 말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정부가 실시하는 예술전람회가 처음 열려 글씨부문이 다른 미술품과 함께 참여해 붙여진 이름이다. 서예는 크게 한자서예와 한글서예로 나눠진다. 한자서예는 크게 다섯 가지의 종류가 있다. 전서(篆書), 예서(隷書), 초서(草書), 행서(行書), 해서(楷書)다. 전서는 한자 중에서 가장 오래된 읽고 쓰기가 어려운 글씨체다. 예서는 관청에서 사용되었던 전서가 너무 복잡해 간략하게 고쳐 쓴 글씨체다.

초서는 전서와 예서를 쉽고 빠르게 쓰기위해 간략하게 만든 서체로 알아보기가 어렵다. 해서는 점획이 가지런히 정제된 정자(正字)체다.

서예 공부는 처음에 전서부터 또는 해서부터 시작해 행서, 초서, 등급으로 차차 써 나간다. 서예작품은 주로 누가 썼느냐에 따라 가치가 정해진다고 한다. 옥중에서 쓴 안중근의사의 서예작품,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의 서예작품, 김종필, 윤길중 등 유명한 정치인들의 서예작품이 작품 자체보다 인물 중심으로 평가된다고 한다.

60여 년 전 필자는 초등학교 4학년 습자시간에 처음 붓을 들었다. 당시에는 서예시간을 습자 시간이라 불렀다. 그때는 습자지가 귀해서 먼저 신문지에 글씨를 연습한 후 썼다. 한글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썼다. 수업이 끝난 후 담임 선생님은 잘 쓴 서예글씨 10편을 골라 교실 뒤편 게시판에 붙였다. 필자가 쓴 붓글씨는 뽑히지 않았다. 잘 썼다고 생각했는데 무척 화가 났다. 수업을 마치고 모두 귀가한 뒤였다. 필자는 본인 글씨를 게시판에 붙여진 다른 친구의 글씨 위에 덧붙여놓고 집에 와버렸다. 그 친구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직도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당시 어른이 되면 반드시 유명한 서예가가 되겠다고 다짐했던 추억이 서예가의 길을 가게 했다.

KBS기자와 대학교수 정년을 하게 되면 서대문구 연희동에 서예학원을 차려 서예와 한자를 가르치는 선생이 되겠다는 목표로 기자생활 틈틈이 서예공부에 매진했다. KBS보도국 정치부 기자시절 민정당 대표인 서예가 청곡(靑谷) 윤길중 선생을 취재하면서 서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연희동 같은 동네 주민으로 틈틈이 찾아가 서예기초에 대한 이론과 실습을 개인지도 받으며 서예가의 꿈을 키웠다.

그 후 KBS여수방송국장과 KBS제주방송총국장 재직시절 여수의 남재(南齊) 송전석 선생님과 제주 라석(羅石) 현민식 선생님의 지도로 두 번 국전에 입선했다. 이어서 대한민국 전통사경 기능전승자 외길 김경호 선생님과 헌정회와 국회의원을 지도하는 국회 서도실 지도교수 이무호 선생님의 지도로 제21회 세계서법문화대전 삼체상과 동상을 받았다. 2011년 교수 정년 퇴임식에도 서예 개인전을 열었다. 당시 참석자들의 격려가 서예공부를 더욱 열심히 하게 해주었다.

서예를 하는 동안 붓과 먹, 종이 그리고 나의 정신이 하나가 되어 잡념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시간이다. 더구나 자신도 모르게 서예작품이 나날이 발전되어 지도 선생님으로부터 칭찬과 격려를 받을 때 서예의 진미를 크게 느끼게 된다. 서예를 하면 항상 보람과 기쁨이 넘친다. 30년 가까이 취미 삼아 시작한 서예 공부가 노후에 시간도 잘 보내고 건강에도 좋다. 특히 서예는 요즘 코로나19 사태에서 정신적으로 지치고 힘든 상황에서 건강하게 보낼 수 있는데 큰 도움과 위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윤재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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