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중 재 덕진면 노송리 송외마을生 전 광주 서광초등학교 교장 전 광주시교육청 장학사 한국전쟁피해자유족 영암군회장

올해가 한국전쟁 70주년이다. 영암군에서는 이 전쟁으로 농사밖에 모르던 민간인 1만여 명이 죄 없이 억울하게 희생당하고 행방불명 되었지만 그 진실은 모두 규명되지 않았다. 지난 노무현정부 당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에 신원이 파악된 희생자는 영암 37명, 삼호 31명, 군서 15명, 금정 135명, 그 외 학산, 덕진, 도포, 미암 등지에서 16명 등 모두 234명이다.

김모씨 외 68명은 ‘진화위’에 한국전쟁 전후 영암 일대에서 발생한 민간인 희생사건에 대해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이에 ‘광주전남지역 군경토벌작전 관련 민간인 희생사건’ ‘광주전남지역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2007년 2월 28일), ‘부역혐의 민간인 희생사건’(2007년 1월10일) 등의 유형으로 조사를 개시했다. ‘진화위’는 1950년 10월부터 1951년 3월 사이에 주민들이 ‘빨치산’ ‘부역 혐의자’ 및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군경이 이 지역 일대 수복·토벌작전 현장에서 또는 연행한 후에 사살하거나 행방불명된 희생자를 350명으로 추정했다.

본 사건의 가해자 해군은 월출산에 약 3천 명의 적부대가 목포 주변을 위협하므로 진해방위대 제1대의 한 중대를 1950년 10월 3일 목포에 상륙케 하고, 10월 10일 목포경비부를 복구했다. 적들이 점차 산악지대로 옮겨가고 조직적인 게릴라전을 펼침에 따라 해군에서는 해병대의 일부 병력으로 목포지구의 잔적 섬멸작전을 전개했다. 그래서 1950년 10월 18일 ‘솟대봉 사건’을 포함한 삼호면 일대, 12월 18일 ‘연보리 냉천마을 사건’을 포함한 금정면 등 일대에서 민간인들이 집단 희생됐다.

한편, 금정면 일대의 군경합동 토벌작전 과정에서 피난을 가지 않고 마을에 남아 있던 주민들을 가족단위로 몰살시키고 가옥 전체를 불태웠다. 수복된 지역에서도 군경은 주민들을 입산가족, 부역 혐의자로 몰아 어린아이를 업은 주부까지 현장에서 사살했다. 경찰서에 자수하거나 자진 출두한 주민도 포함됐다.

이 사건이 발생했던 시기가 전시계엄 상황으로 국민의 권리가 제한되었던 시기였다고 하더라도 국가기관에 소속된 군경이 적절한 절차 없이 비무장·무저항의 민간인을 사살하고 재산상의 피해를 입힌 행위는 인도주의에 반한 행위이다. 헌법에 보장된 기본인권인 생명권과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 것이며, 법치국가 최소한의 원칙을 위반했다. 실제로 빨치산에 도움을 준 자라고 하더라도 ‘국방경비법’ ‘비상사태하의 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법’ 등을 적용, 법원 재판을 거쳐 형벌이 집행하도록 규정되어 있으나 이 사건의 희생자들에 대해서는 법적 절차가 진행되지 않았다.

유족 김모씨(여·당시 13세)는 “남동생(당시 9세)을 불 속에서 데리고 나올 때 총에 맞아 다리뼈가 빠지고 허벅지가 벌렁거리고, 창자가 나와 목숨이 붙어 있었어요. 나도 죽게 생겨서 동생을 놔두고 도망갔습니다. 지금도 동생의 얼굴이 선하고 동생의 울부짖는 소리가 귓가를 맴돌아요.”라고 진술했다.

냉천마을 사건으로 가족을 잃고 현장에서 살아남은 하모씨(당시 18세)는 “젊은 사람들이야 인민군에 협조할 수도 있으니까 전쟁 통에 군인·경찰이 죽일 수도 있다고 하겠지만 어떻게 인간으로서 어린이, 노인, 부녀자까지 보이는 대로 한마을 사람들을 다 죽였냐 말이에요? 군인이 동료가 죽은 것에 대한 앙심풀이로 마을사람을 마구 죽였다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향을 떠나 살았습니다.”라고 진술했다.

진실이 규명되면 국가는 과거 국가권력이 불법적으로 민간인을 살해한 사건에 대해 희생자와 유족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한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희생자에 대한 위령사업 지원방안을 마련하고 위령비 건립 및 위령제 봉행사업 등을 지속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사망일자 오기, 소실, 출생신고, 혼인신고, 가족관계가 잘못 기재된 경우 법적 절차를 통해 정정 조치를 취할 뿐만 아니라 역사기록물에 이 사건의 내용을 보완, 추가 수록해야 한다. 국가는 군인, 경찰, 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전시 인권교육을 강화하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평화인권교육도 철저히 실시해야 한다.

1차 ‘진화위’에서 진행한 영암군 조사결과를 언급했다. 우리 군에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234명만이 신고하여 조사를 받게 됐다니…. 많은 유족들이 누락된 것이 아닌가? 연좌제가 무서워, 몰라서…. 그동안 유족들이 목놓아 기다렸던 진실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5월 20일, 20대 국회 본회의를 어렵게 통과했다. 환영할 일이지만 배·보상 내용이 빠진 것이 흠결이다.

앞으로 또 유족들의 투쟁이 남은 것이 아닌지…. 이제 6개월 후면 정부에서 이 법을 국민들에게 선포한다. 유족들은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서류를 지자체에 신청해야 한다. 신청기간은 2년이고, 진실규명 기간은 4년이다. 유족들이 준비해야 할 일은 진실을 규명할 수 있는 증거를 수집해야 한다. 희생자들의 희생 사실을 증인들에게 확인, 기록하여 변호사 공증을 받아야 한다. 증언내용을 녹화해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우리 군 유족회에서는 2년 동안 340여 명의 인증서류를 만들어 유족 개인이 비치하고 있다.

금년 12월경, 이 법이 시행되면 유족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신고해 모두 진실을 규명하고 명예를 회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명예회복의 그 날, 지금까지 하늘에 오르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고 계신 억울하고 불쌍한 영혼들이 왕생극락하고 하느님 품속에 편히 잠드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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