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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배근 발행인께 감사함을
한 정 규

금정면 출생
행정부 공무원 퇴직
문학평론가

2010년 1월 필자가 영암신문 낭주골 필진으로 인연을 맺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 새 10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그해 1월 두 번째 주 발행된 신문 낭주골에 ‘세월 속에 묻혀버린 고향’ 제하로 칼럼을 쓴 것을 시작으로 그해 12월까지 열두 번 글을 썼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것이 계기가 돼 2020년 4월 30일까지 20여 개 신문에 총 1천 번의 칼럼을 썼습니다. 1천 번째 칼럼은 경기도 수원에서 경기도와 인천지역 독자를 대상으로 발행하는 중부일보 ‘사람과 삶 코너’의 ‘4월15일 총선 결과를 두고 착각해선 안 돼’ 제하로 글을 써 게재했습니다.

필자가 영암신문에 칼럼을 쓰기 시작한 후 그 동안 조선일보, 매일경제, 경향신문, 세계일보, 경북일보, 경기일보, 충남일보, 충북일보, 전남일보, 경인일보 등에 글을 써 왔습니다.

필자에게는 더없이 영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필자가 신문에 칼럼을 쓸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신 영암신문 문배근 발행인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 펜을 들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말씀 드립니다.

1872년 철학자 새무엘 버틀러가 인생은 많은 사람 앞에서 바이올린을 홀로 연주하면서 그 악기를 배워가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는 또 소설 에러휀에서 언젠가는 컴퓨터가 인간을 대체할 거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필자도 새무엘 버틀러가 말한 것과 같이 글쓰기를 하면서 독자들에게 문장 하나하나를 배우고 있다는 심정으로 창작을 하고 있답니다. 내게 그런 눈을 뜨게 해 준 내 고향 영암이, 영암신문이 자랑스럽답니다.

그래서 필자는 기회 있을 때마다 내 고향 영암을, 영암신문을 자랑합니다. 내 고향은 왕인박사와 도선국사 그들이 태어났던 곳이자, 한석봉이 어린 시절 공부했던 곳, 뿐만 아니라 월출산의 빼어난 경관이며 풍부한 먹을거리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것 없는 고장이라고, 필자가 그런 고장에서 태어났다고 자랑을 한답니다.

아쉽다면 고향에서 줄곧 살아 보지 못하고 객지를 떠돌며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금정에서 태어나 열네 살에 금정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광주로 중학교를 가면서 고향을 떠나 광주에서 학업을 마치고 공직생활을 시작해 강진군과 영암군교육청(현 교육지원청에서 2년여 동안) 그리고 전남도교육위원회(현 도교육청)에서 근무하다 1980년 4월 5일 환경부로 전출됐습니다. 이후 1980년 5월 15일 광주에서 서울로 이사를 와 서울과 경기도지역에서 현재까지 살고 있습니다.

광주에서 서울로 이사를 하고 3일째 되던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광주를 떠나 수도권에서 40여 년을 살고 있지만 필자가 태어나 육체는 물론 정신세계를 확장 해 준 영암과 광주를 잊을 수 없습니다.

특히 공직을 떠난 노후에 신문에 칼럼 등 글을 쓸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준 영암신문이 필자에게는 더 없이 자랑스럽답니다. 그 점 거듭 감사 말씀 드립니다.

무엇보다도 전라남도 영암이 태어난 고향이라는 당당함, 어린 시절 광주에서 공부를 하며 몸에 차곡차곡 쌓은 정의감, 잘못된 것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한 의협심, 그 정신 변하지 않고 가슴 속에서 영원히 불 화산처럼 훨훨 태우겠습니다. 제 조상은 물론 내 고향에 욕되지 않게 살겠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그렇게 살겠습니다. 그게 고향을 사랑하는 자세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한정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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