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형 중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영암사무소장

EBS 교육방송의 「해외테마기행」은 간접경험으로나마 세계 각 나라의 자연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유익한 프로그램이다. 조금 지나긴 했지만 스코틀랜드 하이랜드지방 양 목장의 모습이 기억에 남아 있다. 푸른 초원의 집에서 오래된 도구와 방법으로 양을 사육하고 양모를 채취하는 모습을 보며 영국 전통 양모 산업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고작 스물 댓 마리 양을 길러서 과연 먹고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앞섰다. 오래된 가위로 양털을 깎는 모습이 인상적이긴 하지만 일이 고되지 않을 리 없고, 한 소쿠리 양털을 얻기 위해 투입하는 기회비용치고는 지나치게 비경제적인 행위임에도 저 일이 지속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바로 직불금제도였다. 전통 방식 농업인에게는 수익에 상관없이 직불금을 지급하고 있었다. 즉, 공익적 기능인 역사ㆍ문화ㆍ생태적 가치를 인정하여 일정 금액을 보전하여 줌으로써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스코틀랜드의 양모 산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EU에 소속된 많은 나라에서 다양한 형태의 공익직불제를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을 계기로 직불금제도가 최초로 도입되었고 총 9종류의 직불제가 운용되고 있다. 특히, 2004년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에 따라 도입된‘쌀소득보전직불제’는 모든 직불제의 핵심을 이루는 것으로, 그 동안 쌀시장 개방으로 피해를 본 농가의 소득을 보전하고, 쌀 생산의 규모화와 효율화에 기여하는 등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하지만 쌀직불금 중심의 기존 직불제도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노출하여 왔다.

쌀에 대하여 다른 작물보다 월등히 높은 단가를 지급하여 쌀 공급 과잉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었으며, 전체 농가의 55%에 불과한 쌀 농가에 직불금의 80.7%가 지급되는 불균형 문제도 비판을 받고 있다. 비료와 농약 사용량 또한 선진국보다 매우 많아서 안전한 농산물 공급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농업의 환경ㆍ생태ㆍ문화보전 등 공익적 기능에 대한 국민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되었다. 이와 함께 현행 쌀변동직불제는 WTO 농업협정상 감축대상보조로서 보조총액측정치(AMS) 이상은 지급할 수 없기 때문에 직불제도의 안정적 운영에 어려움이 있었다. 농업인들은 2017년 공공비축 벼 수매 당시 우선지급금(수매대금) 일부를 되돌려주었던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농가에 지급해야 할 변동직불금(1조 5,167억 원)이 AMS(1조 4,900억 원)를 초과하였기 때문에 농가에 주었던 수매대금 일부를 환수해야하는 참담한 사태가 발생하였던 것이다.

이렇듯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던 직불제도에 대한 개선 논의는 꾸준하게 제기되어 왔다. 정부에서는 관련 기관, 단체, 학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직불제 개편에 대비하여 왔으며, 지난 연말(2019. 12. 27.)에 「공익증진직불법」이 국회를 통과하여 올해부터는 공익직불제가 전면 시행된다.

공익직불제는 농업활동을 통해 환경보전, 농촌공동체 유지, 식품안전 등 공익기능을 증진하도록 농업인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이다. 기존의 직불제도가 농지 형상 및 기능 유지에 따라 농지면적을 중심으로 운영되었다면 공익직불제는 사람과 환경 중심 농정이라는 변화된 국민의 눈높이를 반영하고 있다.

공익직불제 개편의 기본방향은 첫째, 재배작물에 상관없이 같은 금액을 지급한다는 것이고 둘째, 소규모 농가는 면적에 상관없이 일정한 금액을 지급하고 그 밖의 농가는 역진적 면적직불금을 지급하여 직불금의 양극화를 개선한다는 것이며 셋째, 농업의 공익적 기능 확대를 위해 생태환경 관련 준수 의무를 마련한 것이다. 공익직불제는 기본형 공익직불제와 선택형 공익직불제로 크게 나누어 기존 쌀소득보전직불, 밭농업직불, 조건불리지역직불은 기본형 공익직불제로 통합하고, 경관보전직불과 친환경직불 등은 선택형 공익직불제로 유지하여 현재와 같이 기본 직불제와 중복지급이 가능하도록 설계하였다. 즉, 친환경 농업을 하는 농업인은 통합된 기본형 직불금 외에 친환경직불금 등을 따로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지금까지 공익직불제 시행의 의의와 개략적 의미에 대해 살펴보았고 다음 기고에서는 이에 대한 구체적 내용에 대하여 말하려고 한다. 하지만 농업인들은 이런 원론적 이야기보다는 돈을 얼마나 주는지, 혹은 개편 전에 비하여 불이익을 보는 것은 아닌지 하는 매우 현실적인 문제에 관심이 더 클 것이다. 특히, 다른 지역에 비해 쌀농업의 비중이 높은 영암에서는 쌀 농가에 대한 지급액이 줄어들 것이라는 걱정과 변동직불금 폐지에 따른 쌀값 하락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제 막 법률이 공포된 시점에서 세부적인 내용까지는 알 수 없지만 쌀 농가도 직불금 지급액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사실과 양곡관리법 등을 개정하여 쌀값이 떨어지면 이를 구제할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그것은 틀림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람 중심의 농정 패러다임 변화에 따른 공익직불제는 우리 농업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유럽의 사례처럼 규모와 수익에 관계없이 농사를 짓는다는 이유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꿈같은 이야기가 실현될 수도 있지만 잘못하면 또 다른 정책 실패의 사례가 될 수도 있다. 정책에 대한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이다. 공익직불제의 빠른 정착과 성공을 위해 농업인, 정부, 농업 관련 기관단체가 서로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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