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의 송 학산면 광암마을生 전 농협중앙회 신용대표이사 전 농민신문사 사장 한·일농업농촌문화연구소 공동대표

그동안 건강하셨습니까? 지난해 10월 서울 서초동에서 만나 고향 이야기를 나눈 뒤 너무 적조했습니다. 그날 막걸리도 엄청 맛이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요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할 수 있어서 선배님과 저는 금방 친해져서 나라 걱정도 하고 고향 이야기를 나누게 되어 대단히 유익했습니다. 평생을 조국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셨으면서도 초야에 묻혀서 조용히 생활하시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북미주 민주구락부 연합회장직을 수행하면서 교포사회와 미국 정계에 한국의 민주화를 위한 희생적은 귀형의 노력은 이루 다 글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5.18광주민주화 운동 관련한 ‘오, 광주’ 비디오를 제작하여 미국교포와 정계에 광주사태의 진실을 알린 점은 한국민주화운동의 훌륭한 역사적 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비디오 시사회에 참석한 교포들은 눈물바다가 되었고 이를 계기로 교포사회가 일치단결하여 조국의 민주화를 위한 운동에 적극 동참하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고 김대중 대통령은 귀형에게 친필로 이렇게 글을 써 주었습니다.

“항상 웃는 얼굴로 궂은일에 앞장서면서 슬기롭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스스로 찾아 행동하는 동지입니다.” 아마 김대중 선생이 이렇게 극찬하는 표현을 들어 본적이 저는 없습니다. 요즘 우리사회에 말로는 많이 하면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못하는 우리 국민에게 늘 주장하시던 김대중 선생은 귀형의 행동하는 양심을 정확히 보고 인정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보다 더 훌륭한 찬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광주사태 이후 서울에서 농협직원 생활을 하면서 흔히 듣는 이야기가 늘 마음에 걸렸습니다. 친북좌파 또는 종북좌파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동료들 속에서 속이 상하지만 표현을 못하고 이제까지 살아왔던 소생의 삶이 한없이 부끄럽습니다. 심지어 광주사태 때 무명의 희생자는 모두가 북한군인이라는 직장 선배들의 터무니없는 주장을 듣고도 못들은 척 하고 40년을 살아왔습니다. 그 시간에 귀형은 미국에서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자기의 많은 재산과 시간을 모두 탕진해 가면서 행동하는 양심을 실천하신 귀형을 저는 한 없이 존경합니다. 이 못난 저는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민 선배님. 요즘 한일관계도 걱정되시죠? 잠시 임진·정유재란 때 역사를 생각해 봅니다. 1597년 1월 14일 정유재란을 일으키고 히데요시는 이렇게 명령합니다. “매년 군대를 출동시켜 조선 사람을 죽여라. 전쟁이 이토록 오래 끈 것은 전라도민의 조직적인 저항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군은 전라도로 진격하여 한 명도 남김없이 모조리 죽여라. 충청도와 경기도를 비롯한 그 밖의 지역은 알아서 평정하라.”

히데요시가 충청도·경기도는 너희들 제량으로 알아서 하라고 하면서도, 유독 전라도 침략수단을 지시한 것은 전라도에 앙심을 품고 있었고 열등의식도 갖고 있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임진왜란 때 전남해안 곳곳에서 의병이 일어나 더이상 전과를 올리지 못하고 철군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임란 때 부안군 호벌치 싸움에서 의병장 채홍국 부대에게 참패함으로서 전라도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치욕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히데요시의 전라도 침공명령을 받은 왜군 들은 겁을 먹고 부산·울산에 틀어박혀 반년을 지내자 히데요시는 전쟁을 독려하기 위해 조선사람 죽이고 코를 베어 병사 1명이 한 되씩 교토로 보내라고 명령합니다.

이때부터 ‘코베기’라는 참극이 일어났지요. 이러한 만행은 1597년 8월부터 조선에서 철수한 11월까지 집중적으로 저질러졌습니다. 조선 백성의 20~25%가 죽었습니다. 이때 소금에 절여 갖고 간 12만명의 조선인, 주로 전라도 주민의 코 무덤이 교토에 큰 동산을 이루고 있습니다. 4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라도의 어머니들은 ‘이비야’라는 말로 아이들에게 겁을 준다는 겁니다. 이비야는 귀이(), 코비(), 남자야()라는 한자어로 귀와 코를 베어가는 남자라는 뜻입니다. 지금도 전라도 지역에서 무심코 쓰고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때의 호남지역 전투를 높이 평가하고 ‘호남은 나라의 울타리요, 만약 호남이 없으면 곧 나라가 없어진다’( )라는 글을 필자의 14세 선조 현덕승(당시 정읍현감)에게 보냈다고 합니다.

저는 호남의 좌파라고 이제는 떳떳하게 이야기할 겁니다. 이제까지 속마음을 표현은 못했던 것이 부끄럽습니다. 무슨 말을 들어도 쥐죽은 듯 가만히 있었습니다. 이제 다 늙어서 좌파든 우파든 손가락질 당하더라도 손해볼 것도 없겠지요. 역사적으로 보면 그래도 좌파가 나라를 지켜온 것 아닙니까? ‘호남국가지보장’이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공중을 나는 새도 좌우 날개가 있어서 하늘을 날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아베 수상의 한국 수출규제 조치는 한국인의 목줄을 죄는 것과 같습니다. 경제에서 반도체는 쌀이라고 합니다. 일본은 1941년 12월 7일 태평양 전쟁을 선전포고할 당시 미국이 석유 수입 루트를 차단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다고 주장합니다. 한국은 3면이 바다인데 일본이 우리에게 석유와 반도체 생산을 못하도록 차단한다면 우리의 목숨 줄을 죄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기름과 같이 중요한 것은 반도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반도체가 쌀이고 기름 아닐까요? 그런데 그 반도체를 생산 못하도록 수출규제를 하는 나라가 바로 우리의 이웃 일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내부에서 좌와 우가 나뉘어 200만? 300만? 거리에 모여 집회나 할 것입니까? 우도 좌도 존경하는 어른 정치인은 왜 안보입니까? 이제 통 크게 양보하는 행동하는 정치인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존경하는 민승연 선배님. 만난 지는 짧지만 고향 선후배라고 생각되니 스스럼없이 그냥 넋두리 같은 이야기를 두서없이 올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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