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은 반만년 역사 속에서 수많은 외침을 당하였고, 그때마다 나라와 겨레를 위해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목숨을 바친 의병도 수없이 많다. 특히 임진왜란 때는 김천일, 곽재우, 조헌, 김덕령 등 수많은 의병장이 목숨을 바쳐 조국을 지켰다.

하지만, 1555년 5월 25일, 을묘왜변 때 6천여 명의 왜구가 달량진을 비롯해 10여개 성을 순식간에 함락시키고 영암성을 포위하였을 때 성안에 갇힌 3천여 명의 관병과 영암 백성들을 구한 조선 최초의 의병장 양달사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영암성 대첩 당시 그의 공적이 조정에 전혀 보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공적은 호남읍지와 여지도서 등 향토사에 생생히 남아 있고, 조선왕조실록에도 “공이 있는 양달사는 어디로 갔는가”라는 기록이 엄연히 남아 있다. 조선 헌종 때 도승지로 추증된 사실만 보더라도 그의 공적이 역사적으로 매우 뚜렷했음을 말해준다.

광주 광산구는 ‘한말 어등산 의병의 날에 관한 조례’(2009.12. 30)를, 경북 영천시는 ‘임진왜란 영천성 수복전 기념일에 관한 조례’(2018. 12. 31)를 제정하여 기념식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다. 또, 광주광역시에서는 ‘광주광역시 한말 의병운동 기념사업 지원조례’(2015. 8. 1)를, 부산광역시에서는 ‘부산대첩 기념사업 지원조례’(2019. 2. 6) 등을 제정하여 활발한 사업을 펼쳐나가고 있다. 정부에서 의병의 날로 정한 매년 6월 1일(음력 4월 22일)은 곽재우가 임진왜란 때 의령에서 처음으로 의병을 일으킨 날이다. 그동안 후손들이 제대로 양달사의 업적을 재조명하지 못한 탓에 조선 최초의 의병장이 지금까지 역사의 어둠 속에 안타깝게 묻혀 있었던 것이다.

1555년 5월 25일(양력 6월 13일), 영암성 대첩일은 성안에 갇혀 사경을 헤매던 영암사람들을 구해내면서 영암인의 자긍심과 기개를 대내외에 크게 떨친 역사적인 쾌거이자, 영암군 역사상 최대의 경사이다. 따라서 이제라도 ‘영암성 대첩 기념일’을 제정하여 우리 선조들의 자랑스런 얼을 되새기고, 두 번 다시 외세에 침략당하지 않도록 양달사 의병장의 충과 효의 정신을 이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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