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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전쟁-임진왜란<5>
현 의 송

학산면 광암마을生
전 농협중앙회 신용대표이사
전 농민신문사 사장
한·일농업농촌문화연구소 공동대표

겨레얼본부 이찬구씨는 이런 시를 썼다.
“위대한 조선의 의병들이시여, 민초들이시여! 탄환이 몸에 맞아도 가슴에는 충절로 빛나고,
귀와 코를 베어가도 그 얼굴은 조선의 하늘에 빛 낫도다”

오륜탑(고린도)의 의미

코무덤과 히데요시의 묘에는 그들이 말하는 오륜탑이 있다. 히데요시 묘에는 봉분이 없고 오륜탐만 있다. 히데요시 묘에는 높이 7m의 오륜탑과 그 주위에 폭 8m, 길이 9m의 철책을 둘렀다. 그 봉분 정상에 오륜탑을 세웠다. 코무덤의 봉분 정상에 오륜탑을 설치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이야기하는 공양과 자비는 허구이고 한국인의 기(氣)를 끝까지 눌러 놓고 있겠다는 의미가 아닌가 생각된다.

오륜탑은 주로 공양탑이나 묘에 사용되는 탑의 일종이다. 일설에는 오륜탑의 형태가 인도가 발상지이며 본래 사리(舍利)를 넣는 용기로 사용되고 있다고 하나 인도, 중국, 한국에는 이런 형태의 유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헤이안(平安)시대 말기부터 공양탑 혹은 공양묘로 사용된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래서 현재는 경전의 기록을 보고 일본에서 고안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유력하다.

교리상으로는 네모난(地形), 원형의 수륜(水輪), 삼각의 화륜(火輪), 반월형의 풍륜(風輪), 단형(團形)의 공륜(空輪)으로 되어 있어 불교에서 말하는 지수화풍공(地水火風空)의 다섯가지를 표현한다. 오륜탑의 형식은 밑에서부터 지륜(地輪)은 방형(方形 6面體), 수륜(水輪)은 구형(球形), 火輪은 보형(寶形 )즉 지붕형, 풍륜(風輪)은 반구형(半球形), 공륜(空輪)은 보주형(寶珠形)으로 표현된다. 밀교계의 탑으로 각륜 4방에 네 문의 범(梵)자가 있는 것이 많다. 그러나 종파를 떠나서 사용되고 있다.

동작동 국립묘지 같은 료젠묘역

히가시야마(東山)의 료젠역사관(靈山歷史觀)은 도요구니 신사와 마루야마 공원 부근에 있다.
막부 말기 유신에 초점을 맞춘 박물관과 유신에서 죽은 지사 3천100여명이 합사되었다. 메이지 정부에서 1868년 포고를 발하고 1853년 이래 국사로 인해 죽은 재야 유지의 영혼을 히가시야마에 합사하도록 명령했다. 그들의 충혼을 기리기 위함이라는 명목이다. 료젠묘역은 이에다라 만들어진 현충사로서 도쿄의 야스쿠니 신사와 비견되는 묘역이다.

아뭏튼 교토를 방문하는 한국인은 반드시 료젠역사관과 료젠묘역에 들러 막부 말기부터 메이지 유신까지의 일본역사를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 만들어진 오늘의 일본을 다시 돌아봐야 한다. 혁명의 도시 교토를 제대로 관람하기 위해서다.

근대 한일 관계는 세계사의 문명 전환이라는 시각에서 보면 일본이 소화해낸 서구의 근대문명이 한국에 도입되는 측면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일본이 제국주의적 침략과 지배를 관철해 가는 과정에서 일어난 부수적인 현상일 뿐이다.

교토에서 노력 동원된 한국인

한국인 노동자가 활약한 것은 제2소수(蔬水) 공사(1908~1912)부터다. 히에이산 밑에 터널을 뚫어 비와호 물로 전력을 생산하고 전차를 운행하고 운송수단으로 활용하는 대역사다. 이 공사에 한국인 노동자가 동원되었다. 난젠지 앞의 비와호 소수기념관에 가면 잘 알 수 있다. 한국인 노동자의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괴롭고 나라의 운영이 부실하면 백성이 곤궁해진다. 1920년대 후반 히에이산 케이블카와 로프웨이 공사에도 한국인 노동자는 동원되었다. 당시 도시샤대학에 다니던 정지용이나 교토대학에 다니던 송몽규 등은 조선인 노동자의 삶을 보고 안타까워 했다. 정지용의 수필 ‘鴨川상류’는 아가씨와 산책을 하다가 그 노동환경을 목격하고 울적해진 심정을 잘 묘사하고 있다.            <계속>

현의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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