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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전쟁-임진왜란<4>
현 의 송

학산면 광암마을生
전 농협중앙회 신용대표이사
전 농민신문사 사장
한·일농업농촌문화연구소 공동대표

조선의 민초들이 일어나다

정유재란 때의 기록을 보면 이렇다. 왜군은 700척의 병선과 15만 명의 대군을 동원, 한반도를 침략했다. 20일 만에 한양이 점령되고 2개월이 지나면서 전라도를 제외한 한반도 전역이 왜군의 수중에 들어갔다. 그러나 조선 2만5천의 민초들과 23전 전승한 이순신의 활약으로 왜군은 초기병력의 30%만 살아남았다.

전쟁을 끝내자는 명나라 사신에게 한반도 절반을 일본에 넘길 것을 요구했다. 협상이 결렬되고 다시 히데요시 명령이 하달되었다.

“매년 군대를 출동시켜 조선 사람을 전부 죽여야 한다. 장차 조선을 빈 땅으로 만든 다음 일본의 서쪽(규슈지역) 사람들을 옮기고, 동북쪽 사람들을 서쪽에 살도록 하면 10년 후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이 명령으로 1597년 1월 14일 정유재란이 일어났다. 다급해진 히데요시는 전라도를 점령하지 않으면 그의 야욕을 달성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추상같은 추가 명령을 내렸다.

“매년 군대를 출동시켜 조선 사람을 죽여라. 전쟁이 이토록 오래 끈 것은 전라도민의 조직적인 저항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군은 전라도로 진격하여 한 명도 남김없이 모조리 죽여라. 충청도와 경기도를 비롯한 그 밖의 지역은 알아서 평정하라.”

이때부터 ‘코베기’라는 참극이 일어났다. 즉 히데요시가 전라도에 앙심을 품고 있다는 증거다.
왜란이 일어났을 때 조선의 부안군 보안면 호벌치 싸움에서 의병장 채홍국 부대에게 패함으로써 전라도는 포기할 수밖에 없는 뼈아픈 기억이 있었다.

이순신 장군은 이 전투를 높이 평가하고 “호남은 나라의 울타리요, 만약 호남이 없으면 곧 나라가 없어진다(湖南國家之保障 若無湖南 是無國家)”라는 글을 필자의 14세 조부 현덕승에게 보내는 편지에 썼다. 그 기념비가 영암군 군서면 구림리에 있다.

임진년 왜란이 일어났을 때보다 왜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왜군들은 전라도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울산 등에 틀어박혀 반년을 무위도식했다. 그래서 히데요시는 전쟁을 독려하기 위해 다시 강한 명령을 했다. “조선 사람을 죽인 후 코를 베어 소금에 절여 병사 한 명에 코 한되 씩 보내라”고 명령했다. 이를 조선에 전한 자는 대마도 도주 소요시토시(宗義智) 가문의 야니카와시게노부(柳川調信)다. 1597년 6월 15일 부산에 도착한 가도기요마사(加藤淸正)는 사정을 감안하여 병사 1인당 코 3개를 베어 오도록 명령했다. 이렇게 하여 인류 역사상 유래가 없는 ‘코베기’ 만행이 저질러졌다.

남원성 일대가 피바다가 되었다. 전투에 죽은 자는 물론 민간인 남녀들도 무참치 코를 베임당했다. 이러한 만행은 1597년 8월부터 철수한 11월까지 집중적으로 저질렀다. 조선 백성의 20~25%가 죽임을 당했다. 이때부터 4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라도 지역의 어머니들은 ‘이비야’라는 말로 아이들에게 겁을 준다. 어떤 행동을 못하게 할 때도 ‘이비’라는 말을 한다. 정유재란 당시 일본의 종군 승려 게이넨(慶念)이 쓴 ‘조선일일기’에 의하면 이비야는 귀 이(耳), 코 비(鼻), 남자 야(爺)라는 한자어로 귀와 코를 베어가는 남자라는 말뜻이다. 지금도 전라도 지역에서 무심코 쓰는 ‘이비야’라는 말의 유래가 코무덤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러한 만행에 관한 역사자료는 야마구치 현 문서보관소, 도쿄대학 사료편찬소, 오카야마 현 천인비총(千人鼻塚)에 보관되어 있다. 그들이 전과로 내세운 기록에는 1598년 1월 조선사람 코 18만5천738개, 명나라 사람의 코 2만9천14개, 합계 21만4천752개의 코가 매장되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정유재란 당시 종군한 일본승려 게이넨의 말이 섬뜩하다. “역사상 이번 전쟁처럼 슬픈 일이 없었다. 일본 병사들이 가는 곳마다 살육을 일삼았고 불을 질렀다. 그 연기는 고을마다 가득했다. 조선사람의 머리와 코를 대바구니에 담으니 바구니가 가득했고, 병사들은 피투성이가 된 바구니를 허리춤에 달고 싸웠다.”

히데요시는 조선 정복을 꿈꾸며 아침저녁으로 부처님께 기도하기 위해 호코지(方廣寺) 절을 지었다. 조선침략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이 절 앞에 코무덤을 만들었다. 1597년 9월 26일 히데요시 부하 쇼오다이(西笑承兌)가 지은 잔학함을 미화하는 가증스러운 글이 비석에 있다.

“일본군이 적의 목을 베어 보내야 하나 너무 멀어 조선군의 코를 베어 오게 했다. 히데요시는 이들을 원수라고 생각하지 않고 가엽다는 생각으로 친한 사람 대하 듯 공양했다.” 잔학무도한 일을 저질러 놓고 공양을 이야기하는 뻔뻔스러움이 가증스럽다. 이를 보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얄밉고 밉살스러운 일본인의 모습이다. 일본인의 잔혹성을 과시하고자 만들어 놓고 이를 호도하고 있는 그들은 오늘날도 같다는 생각이다.                          <계속>

현의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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