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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전쟁-임진왜란<3>
현 의 송

(사)학산면 광암마을生
전 농협중앙회 신용대표이사
전 농민신문사 사장
한·일농업농촌문화연구소 공동대표

<일본과 한국의 관계는 옛날 신대(神代)에서 시작한다. 그 후 신라의 왕자 하메노히보코(天日槍)가 일본에 귀화하고, 임나(任那, 가야)도 내조(來朝)했다. 진구 황후가 삼한(三韓)을 원정하고 일본의 세력을 넓힌 적도 있었다. 그 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침공하여 무용을 크게 떨쳤다. 메이지 유신이후 일본은 한국과 국교를 맺고 부조(扶助)하고 보호했지만, 한국에는 독립을 위협하는 여러 위기가 닥치고, 마침내 한국 황제는 대세를 보아 나라를 일본에 합병하기를 천황에게 요청했다. 천황은 아시아의 평화와 한국의 안정을 위해 이것을 허가했다. 여기에 한국 전토는 일본의 일부가 되었다.

지금 한국의 합병은 정의에 기초하고 평화롭게 이루어졌다. 실로 아름다운 일이 아닌가. 미야케하치만 신사는 오진 천황을 제신으로 삼는다. 오진 천황은 한국에서 위대한 공훈을 올린 분이니, 한국 합병을 받들어 고하여 축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을 위해 이 비문을 돌에 새기는 바이다. 비록 돌은 닳아서 없어지더라도 영광은 만세에 걸쳐 썩지 않을 것이다.>

비문의 내용에 따르면 일본은 천황이 제정일치의 통치를 행하던 신화시대 이래 한국을 지배해 왔는데, 역사시대 이후 일본에서 떨어져 나가 다른 나라가 되었다. 일본은 이런 한국을 정벌하기 위해 몇차례 원정을 했는데, 진구 황후, 오진 천황,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이 무용을 떨치고, 마침내 메이지 천황이 한국을 다시 일본에 편입시켜 한 나라로 만드는 대업을 이루었다. 옛날에 한국을 정벌하는 데 위업을 쌓은 진구 황후와 아들 오진 천황을 제신으로 모시는 미야케하치만 신사에 메이지 천황의 공덕을 기리는 비석을 세워 그 사실을 알리고 축하하는 것은 신사 관련자와 주민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는 주장이다. 그리고 이 영광스러운 행적을 돌에 새겨 영원히 만세에 전해야 한다는 그들의 천박한 의도가 있다.

이 비석을 아직도 자랑스럽게 보존하고 있는 것은 일본인들의 비뚤어진 역사 인식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다. 교토가 그러한 역사 인식을 발신하는 기지라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병합조약은 1910년 8월 22일 조인되고 8월 29일 발표되었다. 그날을 축하하기 위해 교토에는 꽃전차가 다니고, 두 달 후에는 한국합병봉고제비가 세워졌다.

도요토미히데요시 묘

히데요시는 이런 시를 남겼다. “이슬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사라지는 게 인생인가. 살아온 한 세상이 봄날의 꿈만 같다.”

그의 말대로 이슬처럼 사라졌지만 그의 야망은 지금도 일본인 속 마음에 남아있다.

9월 28일, 새벽에 히데요시의 묘를 찾아 나섰다. 호텔에서 6시에 출발해서 교토 국립발물관과 교토여자대학을 지나서 거의 1시간 정도 오르막길을 올라가서 가파른 계단을 450개 올라서 산 꼭대기에 있다. 주변이 약 30만 평의 규모에 교토 시내를 내려다보는 울창한 숲 가운데 있다. 봉분은 없고 철책으로 둘러쳐 있고 제단이 있고 여기에도 역시 높이 4m의 오륜탑이 있다. 계단이 시작되는 지점에 왕복 40분이 걸린다는 안내판이 있다.

히데요시는 후시미성에서 62세로 사망했다. 그날 밤 그의 심복에 의해 장례절차 없이 비밀리에 교토 국립박물관과 교토 여자대학 뒤편 아미타봉에 매장되었다. 조선에서 전쟁 중인 왜군의 사기를 고려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그의 죽음은 비밀에 부쳐졌고 시신도 몰래 매장했다.
<계속>

현의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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