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형 빈집 재생 프로젝트를 제안하며-

김 기 천 영암군의원

4월 15일부터 2박3일 일정으로 제주도 벤치마킹을 다녀왔다. 청년인구정책팀장을 비롯한 기획팀, 농산물마케팅팀, 주택팀, 귀농지원팀 주무관과 군의회 경제건설전문위원이 한 팀을 이뤘다. 빈집 재생 모범사례로 꼽히는 ‘다자요’ 프로그램 현장을 돌아보고 남성준 대표와 속 깊은 얘기를 나눌 목적이었다. 또한 감귤나무를 도시 소비자와 연결해 감성과 공감을 직거래하는 ‘당신의 과수원’ 운영사례를 연구해보고 싶었다. 의회와 행정이 한 팀을 이뤄서 현장을 답사하고 토론을 진행하는 ‘보기 드문’ 새 길을 연 셈이다.

우리는 제주 여러 마을에서 리모델링 중인 빈집과 예정부지 등을 둘러보았고 농촌 민박집에서 묵었다. ‘다자요’ 남성준대표와 사업추진 과정을 격의 없이 나눴고 집 고치기에 한창인 목수들, 빈집을 내놓은 주인과도 대화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 과정 내내 우리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질문은 ‘과연 이 빈집재생 프로그램이 영암에서 가능할까?’였다. 나는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영암형 프로젝트’여야 성공한다고 믿는다. 나는 이 글을 통해 벤치마킹에서 얻은 문제의식을 영암군민에게 보고하고 군민의 창조적인 제안과 활발한 논의를 요청 드리고 싶다.

사실, 그동안 빈집에 대한 의논은 끊이지 않았다. 우리 군이 해마다 하는 빈집 전수조사 결과를 보면 2018년 기준 250채가 넘는 빈집이 각 읍면에 고루 분포하고 있다. 그 중 100여채는 즉시 혹은 수리후 거주가 가능한 상태로 양호한 반면 나머지는 반파 이상으로 철거가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매매나 임대의사를 밝힌 경우도 80채가 넘었다. 우리군은 해마다 철거비용을 지원하고 있는데 올해 세운 80채분 1억6천만원 예산이 벌써 바닥나 추가예산을 편성해야 할 형편이다. 빈집은 마을미관을 크게 해칠 뿐만 아니라 석면배출 구조물 붕괴 등 그 자체로 위험요소다. 따라서 빈집을 헐어 주차장으로 활용하거나 쌈지공원으로 꾸미자는 설득력 있는 제안에 귀기울 일만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빈집이 너무 많다. 허물기 전에 잘 고쳐서 제대로 활용하는 방안부터 우선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빈집에 대한 수요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군은 빈집을 철거하는데 2백만원, 귀농인이 빈집을 고쳐 사용할 경우 500만원의 수리비용을 지원하고 있는데 헐기에도, 고쳐 사용하기에도 참 어중간한 규모다. 지원하고도 인색한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이제부터는 중장기 전략을 세워 빈집재생에 나서야 한다.

우선 소유주로부터 최소 10년 임대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래야 투자하는 사람도 입주자도 안심할 수가 있다. 대신 제대로 고치고 확실하게 관리해서 소유주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그런 다음 쓸모에 맞춰 빈집을 리모델링해야 하는데 실제로 거주할 사용자의 욕구에 충실한 설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나는 ‘영암형 빈집재생 프로그램’의 길이 세 가지 정도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영암에 와서 평생 살겠다고 하는 사람들을 위한 집이다. 실속형 집이 되겠다. 살림하는데 불편하지 않아야 하니 보일러, 수도, 화장실, 부엌, 샤워실, 인터넷 시설 등이 바로 들어와 살 수 있을 정도로 갖춰져야 하겠다. 창고까지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다음으로 지역의 작은 학교를 위한 집이 필요하다. 도시의 삭막하고 경쟁이 치열한 환경에서 벗어나 참교육의 기회를 누리고 싶어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이런 경우 아이들과 생활이 가능한 학교주변 마을 빈집을 찾아서 제공해야 수요자 만족도가 높겠다. 아이들 교육 목적으로 온 경우는 마을공동체와 학부모들과의 연대와 교류가 매우 중요한데 이 같은 조건을 갖춘 마을의 빈집을 우선적으로 고쳐 쓰면 되겠다. 집 안팎의 환경정비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집이기도 하다.

셋째, 영암살이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집이 필요하다. 이참에 제주에 가서 보고 온 집이 바로 이 경우라 하겠다. 짧게는 하루나 이틀, 길게는 한 달에서 1년을 영암에서 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빈집재생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물론 지금도 한옥민박이나 펜션같은 빼어난 숙박시설이 즐비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고 잘 지어진 집이 아니라 가장 영암다운 집, 가장 시골(농촌)다운 집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역사가 오래돼 살아온 사람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마당의 풀 한 포기 뒤안의 나무 한 그루조차 평범하지 않은 고샅길 안쪽의 텃밭 딸린 집을 고쳐 써보면 어떨까? 영암에 와서야 비로소 누릴 수 있는 다양한 체험 컨텐츠까지 준비한다면 말 그대로 금상첨화다. 그렇다고 살기 불편한 집을 말하는 게 아니다. 도시민들이 평소 꿈꿔온 특별한 집에서의 하룻밤을 실현할 정도의 공간으로 세련되고 고급스럽게 꾸며야 한다. 이 집의 쓰임과 값어치가 제대로 빛나려면 앞의 두 집보다 훨씬 많은 재원을 투자해야 한다.

한 가지 고민이 더 있다. 제주에서는 물론이고 다녀온 뒤로도 머리 속을 가득 채운 화두가 있었다. 바로 ‘영암다움’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어메니티(amenity) 라고 한다. 영암 특유의 자연환경과 전원풍경, 지역공동체 문화, 지역 특유의 수공예품, 문화유적 등 다양한 차원에서 사람들에게 만족감과 쾌적함을 주는 요소라고 해석하겠다. 과거에는 발전이란 이름으로 낡은 환경을 개선하는데 초점을 맞춰서 고유의 자원을 해체하는데 앞장섰다.

그러나 지금은 그 사라져가는 영암고유의 농촌다움, 시골다움을 되살려 지역민과 지역을 찾는 도시민에게 선물하자는 게 시대흐름이다. 요즘 여행 트렌드를 보면 딱 그곳에만 있고 가본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지역 자원에 열광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그 자원들이 얼마나 많은가? 구슬을 꿰듯 우리지역의 어메니티 자원을 매우 정밀하고 섬세하게 발굴해서 다듬고 포장하는 일을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

재원을 어떻게 조달하느냐도 과제다. 제주 ‘다자요’의 경우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초기 종자돈을 모았다고 한다. 지금은 정식으로 투자를 받아 투자금에 대한 배당도 지급하는 수준까지 발전한 상태다. 영암의 경우 도심 재생이나 농어촌 민박사업에 공모하는 방법도 있겠고 우리군이 시범사업에 힘을 실어 영암형 모델을 창출하는 길도 있겠다.

나는 이 대목에서 젊고 창의적인 청년창업 정신이 필요하다고 여긴다. 그리고 부지런히 실력을 다지고 있는 마을기업, 체험마을, 창조마을, 협동조합 같은 사회적 경제영역이 개척자로 나서기를 기대해 본다.

짧은 사흘 일정이었지만 함께 간 공무원들의 열의에 깊이 감동했다. 끊임없이 묻고 솔직하게 토론하는 자리에 함께여서 행복했다. 젊은 그들의 열정과 문제의식에 앞으로도 쭈욱 어떤 한계도 미리 설정되지 않기를 소망한다.

 

 

 

 

 

 

저작권자 © 영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