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현 수 군서면 구림마을生 관세법인 부일 대표관세사

그날이 그날,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듯한 일상에서 벗어나 모처럼 2박3일 나들이를 했다.

이미 70줄을 훌쩍 넘겨 까까머리 코흘리개들은 머리에는 하얗게 서리가 내려앉았고 이마에는 살아온 세월의 길이 만큼인지 아니면 그간의 인생길의 징표인지 큰 주름 잔주름이 깊게 패어진 우리들 상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뒤돌아보니 우리가 지나온 길 또한  만만찮은 여정이었다. 6.25전쟁 직후인 1955년 우리 코흘리개들은 교문·교실 없는 허허벌판과 같은 곳을 학교랍시고 입학하였었다.

운동장 한 편에 수백수천 년은 돼 보이는 밑둥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고목나무가 몇 그루 서 있고, 또 다른 편에는 가교사라 하여 유리창 없는 초가집이 기다랗게 늘어서 있었는데 그것이 우리들의 유일한 교실이었다.

그 큰 고목나무 밑둥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어 거기를 바짝 들여다 보면 마치 도깨비나 귀신이 금방 튀어나올 것 같은 그런 분위기의 늙은 나무였었다.

그래도 그 고목나무에는 그넷줄이 매달려 그것 또한 우리들의 유일한 운동시설이자 위락시설이었다.
의자 없는 앉은뱅이 책상은 몇 년 후 들여왔고, 우리는 맨 흙바닥에 짚가마니 깔고 엎드려 공부시늉을 하는 그런 분위기였다.

지금도 동남아나 아프리카 오지에는 그런 분위기가 방영되곤 한다.

그래도 우리 입학생 120여명은 1·2반으로 나뉘어 가방은 꿈도 못 꾸고 헝겁 보자기에 책과 도시락을 준비해와 형설의 공을 이루어가고 있었다.

그런 과정의 고단한 인생길을 걸어오면서도 우리는 객지에 나와 서로 돕고 서로 의지하면서 오늘에 이른 것이다.

어느 친구는 은행으로, 또는 공무원으로 또는 사업현장으로 뛰고 달리면서 결코 주저앉지 않고 열심히도 살아왔다.

누구 하나 사회적으로 또는 경제적으로 신문 ·TV에 얼굴 자주 내보이는 누구 말마따나 크게 출세한 사람은 없어도 그 어렸을 적 보릿고개를 낙오자 없이 잘도 넘어왔고, 그 무섭고 두렵다던 IMF 고개도 무사히 넘겨온 것이다.

우린 휴식인지 휴양인지 한 번 떠나보자 하면서 이번 5월 25~27일 홍도·흑산도 행을 결행하게 된 것이다.

구림초 43회 졸업생들은 의기투합, 쾌속정에 몸을 싣고 2시간 반의 항해 끝에 국내 유일의 천연기념물 섬, 홍도에 하선하니 7년 전, 5년 전 그대로인 우릴 반긴다.

홍도 유람선 관광과 1박 후 일찍 홍도를 출발, 흑산도에 도착한다.

흑산도에서 특산물 홍어 3합에 취기가 오른 친구들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한 이야기꽃으로 밤새는 줄 모른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그 이야기꽃들 속에는 우리 어렸을 적 눈물과 웃음과 정과 한이 함께 버무려진 것으로, 해도 안 해도 그만인 얘기가 아니고 우리 인생길에서 꼭 해야만 그런 소중한 추억담인 것이었다.

일박인지 무박인지 잠자리에 눈을 뜨니 TV에서는 미세먼지 소식을 전하고 있었고, 창밖에는 안개와 섞여진 미세먼지로 대기가 온통 잿빛이다.

흑산도에 화력발전소도 공장도 차량도 많지 않을 터인데 왠 미세먼지? 중국산일 것으로 추측된다.
흑산도 명물인 ‘흑산도 아가씨’ 동상엘 갔더니 사업가 친구 조삼수가 먼저 도착, 아가씨 상에 손을 밀착한 채 깊은 상념에 젖어 있다.

누구나 가슴 속에 한두 개쯤 공개하기 거시기 할 사연이 없을까만, 그 친구 첫 사랑을 회상하는지 자못 심각한 표정이다.

2박 3일의 여정 끝에 우리는 목포에서 이별주로 건배하면서 또 다음 기약을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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