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복 전 도포면 목우동生 전 법무부 연구관 영암역사연구회 회장

이 되어 추운겨울 꽁꽁 얼었던 대지에 남풍이 불면 산수유, 개나리, 목련, 진달래에 이어 벚꽃이 만발하면서 사람들의 마음도 설레기 시작한다. 지방과 서울할 것 없이 나라 전체가 벚꽃 거리에는 상춘객으로 인파를 이룬다. 영암도 가로수로 일제강점기 일본 사람들이 구림일대에 벚나무를 심은 것을 시발로, 이제는 영암에서 독천까지 100리(?)길 벚꽃거리가 4월초가 되면 꽃이 만발하여 대장관을 이루면서 왕인문화축제가 전국적인 축제로 부상하였다.

그런데 전국에 벚꽃축제가 성황을 이루면서 우리국민의 마음 한구석에는 좀 챙기는 찜찜함이 있다. 그것은 우리의 국화인 무궁화는 갈수록 재배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는 데, ‘일본의 국화라는 벚꽃’은 가로수 등으로 그 숫자가 늘어나면서, 벚꽃에 대한 애증(愛憎)이 교차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 여러 나라들은 각기 자기 나라의 국화가 있는데, 이 국화는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그 국민의 성향 등을 나타내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한국은 무궁화요, 중국은 목단이며, 영국은 장미이다. 스위스는 에델바이스이고, 네덜란드는 튤립이다. 그러면 일본의 나라꽃은?

우리나라 꽃인 무궁화는 우리나라의 수난의 역사를 상징하고 있다. 5천년 역사를 통해서 931회의 외침에도 멸하지 않고, 지금은 5천만 국민이 3만불 시대에 진입하여 세계 중심국가의 일원이 된 우리국민의 은근과 끈기를 상징하고 있다. 화려하지 않으면서 진디물이 끼고 늦은 여름에야 피는 무궁화이지만 우리는 이 꽃을 사랑하고 아끼고 있다. 동요에서부터 애국가며, 경찰관과 군인의 계급장은 물론, 청와대의 문양에 이르기까지 경배로운 곳에 쓰이고 있다.

그러면 일본의 나라꽃은 벚꽃인가? 아니다. 벚꽃은 그 원산지가 한국으로, 일본 서민들의 꽃일 뿐 나라꽃은 아니다. 지진과 해일, 화산과 폭풍우 등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혹독한 자연재앙을 받는 나라 일본, 지진 때문에 겨울에도 온돌방 사용이나 난로를 피우지 못하고 다다미방에서 움츠리고 살다가 4월이 되어 날씨가 풀리면서 벚꽃은 4월에 한꺼번에 피어 뭇사람의 일시적인 눈요기 감이 되면서, 하나미(花見, 꽃구경)가 시작되고, 움츠렸던 일본사람들의 마음을 녹이게 한다.

일본에서 벚꽃이 서민들의 사랑을 받게 된 것은 일본의 군국주의와도 그 맥을 같이 한다.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치루면서 젊은 학도들에게 천황폐하를 위하여 죽어간다는 것은 너무나 아름답고 의로운 용단이라고 회유하면서, 가미카제 특공대에 소속된 소년의 출격직전에 군복 여기저기에 사무라이의 운명에 비유되는 벚꽃가지를 꽂아주고, 미 항공모함의 연기 통에 꽂혀 죽으면 신(神)은 야스쿠니 신사에 안치된다고 하여 많은 젊은이들을 죽어가게 했다.

그런데 벚꽃의 문양은 길거리의 하수도 맨홀 뚜껑에 장식물로 새겨져 있어 서민들의 발자국을 감내해야 하는 서민들이 사랑하는 꽃이지 나라꽃은 아니다.

그러면 국화(菊花)가 일본의 나라꽃인가? 아니다. 국화는 만세일계(萬世一系, 일본 천황가의 혈통이 단 한 번도 단절된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견해)라 불리는 일본 황실을 상징하는 꽃으로, 국회의원들의 배지에 새겨져 귀한 대접을 받고 있으며, 야스쿠니 신사의 휘장에서부터 메이지신사의 제등(提燈)에 이르기까지 엄숙한 모든 곳에 자리하여 민중들의 경배를 강요하고 있다.

일본에서 국화(菊花)가 막부(幕府)시절에는 별 관심을 갖지 못하였으나 명치유신 이후 천황이 일본의 최고 권력자로 부상하면서 비로소 국화가 황실의 문장(紋章)으로 채택되었다. 이후, 국화는 황실의 전용물로 변용되기에 이르렀다. 국화를 황실의 꽃으로 여기는 것은 다른 꽃은 잡초들과 함께 봄이나 여름에 피지만 국화는 늦은 가을 다른 꽃들이 질 때 홀로 피어나는 고고함 때문이다.

이처럼 벚꽃은 일본의 나라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 국민이 벚꽃에 대한 애증의 교차심리를 가질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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