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대 제 영암군무공수훈자회 회장

지난 11월 28일 1박 2일 일정으로 거제도 포로수용소와 충무공 이순신 장군 기념비를 둘러보고 몇자 적어본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조국 분단의 역사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 역사의 진실을!

나라를 지키다 전쟁터에서 부상 또는 전사하여 운명을 달리한 전쟁 영웅들의 넋을 기리고 추모하는 것은 우리 후손들의 몫이다. 6·25 전쟁의 아픔을 딛고 통일을 희망하는 역사의 현장 멀지않은 과거로의 여행 이제 우리는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

6·25전쟁과 거제도 포로수용소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를 기해 북한 인민군이 38도선 전역에서 일제의 기습 남침을 개시하여 서울은 3일만에 함락되었다.

국군은 미군 및 유엔군의 지원을 얻어 낙동강 교두보를 확보하는 한편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역전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100만 여명의 중국군 개입으로 다시 38도선을 중심으로 치열한 국지전이 전개되었다. 전쟁 중에 늘어난 포로를 수용하기 위해 1951년부터 거제도 고현수 등 최대 17만3천명의 포로를 수용하였는데 그 중에는 300여명의 여자포로도 있었다. 1950년 7월 10일 최초의 휴전회담이 개최되었으나 전쟁포로 문제에서 난항을 겪었다.

특히 반공포로와 친공포로 간에 유혈 살상이 자주 발생하였고 1952년 5월 7일에는 수용소 사령관 돗드 준장이 포로에게 납치되는등 냉전시대 이념 갈등의 축소 현장과 같은 모습이었다.

1953년 6월 18일 한국정부의 일방적인 반공포로 석방을 계기로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이 조인됨으로서 전쟁은 끝났고 수용소는 폐쇄되었다.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1983년 12월 20일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99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으며 지금은 일부 잔존 건물과 당시 포로들의 생활상 막사 사진, 의복 등 생생한 자료와 기록물들을 바탕으로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전공원으로 다시 태어나 전쟁역사의 산 교육장 및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조성되었다. 6·25전쟁은 꼭 기억해야 하는 동족상잔의 아픔이다.

역사를 왜곡하는 자는 미래가 없다. 우리의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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