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선국사 (8)

 

도선과 풍수지리 Ⅳ

도선국사의 풍수원리에 대해 최창조씨(전 서울대 교수)의 견해를 들어보자.
풍수와 관련하여 도선을 평가한 가장 적절한 표현은 도선본비에 나타난 ¨그가 전한 음양설 (陰陽說) 수편(數篇)이 세상에 널리 퍼져 있으며 후세 사람으로써 지리를 말하는 자 모두 그를 조종(祖宗)으로 삼았다¨는 부분일 것이다.
 

▲ 도선국사는 소위 보사(補瀉)의 원리를 그대로 땅에 적용하여 우리 풍수의 큰 특징을 만들어 내었으니 그것이 바로 비보사탑설이다. 사진은 대대로 과거급제, 부자, 미남미녀를 낸다고 하는 玉女彈琴形.

또한 그의 음양지리의 경지는 깊이에 있어 불조(佛祖)와 같다는 표현도 서슴치 않았다. 그는 우리나라 지리풍수의 할아버지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지리학에서는 그를 다룬 연구논문이 거의 없다시피한 것은 도대체 무슨 까닭일까. 그 까닭을 말하기 전에 필자도 명색이 지리학 하는 사람으로 참괴한 마음이 앞설 뿐이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도선 풍수의 긍정적인 사상성은 퇴색되거나 사라져버리고 못된 발복(發福)·발음(發蔭)의 음택풍수(陰宅風水)가 판을 치게 된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거기에 우리 것에 대한 몰이해와 무시, 서양 지리학에 대한 지나친 경도 등이 우리 지리학의 시조가 이런 대접을 만든 이유였을 것이다.

그의 풍수지리가 중국의 도참이나 음양오행술과 다른 것이라는 점은 그가 지리산의 한 이인(異人)으로부터 그것을 배웠다는 점에서도 분명한 사실이다. 또한 이러한 도선의 사상과 그 법용(法用)에 대하여 조선시대 청허(淸虛) 스님도 그것은 도참이나 음양오행과 같은 맹랑한 학설이 아니라고 보았다.

말하자면 그의 풍수사상은 자생적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접근을 시작하는 것이 옳다는 얘기다. 이 점은 풍수 뿐만 아니라 그의 선수득(禪受得)과 수행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도선은 임제종풍(臨濟宗風)의 선풍을 장기간 당에서 머물렀던 혜철로부터 전수하였다. 그러나 도선 자신은 국내에만 머물렀지 당나라에 유학을 간 적은 없다. 밀전심인(密傳心印)한 다음 그 원형을 충실히 지켜나간 입당승(入唐僧)에 비하면 자국 내에서 상승(相承)한 승려에게는 선지(禪旨)의 각득(覺得), 즉 자기 체험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입적하지 않고 자국 내에서 불교의 흐름 뿐만 아니라 급변하는 시대사조를 조망한 도선에게 있어서는 스스로의 체험이 한층 중요했을 것이다. 그 때문에 그의 생애에는 긴 운수기간(雲水期間)이 필요했던 것이라 여겨진다.

다음에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도선 풍수에 경험적으로 합리적 평가가 가능한 부분이 매우 많다는 점이다. 예컨대 국토 전반에 대한 거시적 시각을 보유하고 있었고 수도의 중앙적 위치의 중요성에 대한 정치지리학적 식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이미 그가 당시 사회상에 대한 투철한 인식에서 국토재계획안적 성격의 풍수지리설을 내놓을 수 있었다는 최병헌 교수의 탁견이 제시된 바 있다.


보사의 원리
도선의 풍수 원리에서 가장 중시되어져야 할 부분은 그가 땅을 살아 있는 어떤 것으로 인식했다는 점일 것이다. 더 나아가서 마치 사람의 몸을 대하듯 땅을 바라보았다는 평가가 적실한 말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기에 그 땅의 순역(順逆)이 있고 강약(强弱)이 있으며 심지어 생사까지 운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고려국사도선전(高麗國師道詵傳)에 나타나는 천지의 혈맥이라든가 산수의 병과 같은 표현이 그런 사고방식을 잘 나타내주는 예로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문제가 있으면 고칠 수 있다는 사고에까지 발전을 한다.

사람의 침뜸술의 기본 원리는 기(氣)가 과(過)한 곳은 사(瀉)해 주고 허(虛)한 곳은 보(補)해 준다는 것이다. 소위 보사(補瀉)의 원리이다. 도선은 이 원리를 그대로 땅에 적용하여 우리 풍수의 큰 특징을 만들어 내었으니 그것이 바로 비보사탑설이다. 땅은 살아 있고 거기에 문제가 있으면 고쳐서 쓴다는 사고는 매우 중요한 자생풍수의 특징을 낳게 되는 것이다.

비보사탑설이란 무엇인가. 산천지리에는 생기가 있으며 따라서 순역(順逆), 길흉(吉凶)이나 성처(盛處)·쇠처(衰處)가 생기고 그것이 음양상생(陰陽相生)·상극(相剋)·상보(相補)의 원리에 의하여 변화하며 그 지상(地相)이 왕조의 흥망성쇠나 인간 장래의 길흉화복의 근원이 된다고 하는 지리쇠왕설로 확장되기도 한다.

왕업과 관계되는 지덕은 쇠처에 사원을 건립함으로써 생기를 보하지만 거꾸로 맞지 않으면 지덕이 훼손된다. 따라서 도선은 쇠처, 역처 등을 보아 사원 건립지를 점정(占定)하고 그 이외에는 일체의 창건을 막았다.

우리는 여기서도 도선 풍수가 발복의 명당을 찾아 다닌 것이 아니라 병 든 땅을 고치려 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비보사탑설에는 정치적 책략이 있을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즉 당시 사찰들은 대체로 자사(自寺) 보호를 위한 자위적 무장활동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한 연구 예가 있고 지방호족들이 사원을 거점으로 인근에서 활동한 것이 사실인 만큼 각종 사찰들은 고려 개국자의 입장에서는 경계의 대상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을 순리적으로 제한하고 규제할 수 있던 방안이 사탑비보설일수도 있다는 뜻이다.

다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도선 풍수의 또 다른 특징은 그것이 매우 포괄적이며 다른 사상의 접수가 광범위하다는 것이다. 우선 그는 불교와 재래의 민간신앙을 조화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산천순역의 비보법에 음양오행술을 더 연구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또 비보사탑설은 풍수, 도참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밀교의 법용으로서 국토를 하나의 만다라(曼茶羅)로 보고 택지하여 사탑을 세움으로써 복리를 얻는다고 보았다는 연구도 있다.

하나의 사찰을 세우는 데 있어서도 그 원칙은 마찬가지며 전 국토를 대상으로 함에 있어서는 국토지리에 대한 지식이 필수적이었을 것이므로 요컨대 당시의 지리학도 당연히 도선 풍수에는 합쳐져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어머니인 땅

▲ 오는 10월 7일 개관을 앞두고 있는 ‘도선국사 성보관’은 도선국사에 관한 각종 유물이 보관돼 있다. 사진은 도갑사 경내에서 출토된 기와류와 자기류.

도선은 결국 밀교가 지닌 모든 사상을 융합할 수 있는 가능성의 장점과 밀교의 지영사상(地靈思想)을 조화시켜 신라말기 사회 실정에 알맞는 신앙사상으로 승화시켜 제시한 것이 도선의 비보사상이라 보기도 한다.

거기에 선종과 풍수지리는 아무 모순 없이 함께 받아들여졌으며, 또한 도교와 신선사상도 받아들인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구령의 이인은 지리산 산신``이라는 표현도 있고, 서거정의 ``필원잡기``에 ¨도선이 출가하여 입산 수련하는 데 어떤 천선(天仙)이 하강하여 천문, 지리, 음양의 술법을 전수하였다¨는 대목도 있다.

그리하여 심지어는 도선에게 풍수를 가르친 이인을 고신도(古神道)라 단정한 예까지 있는 실정이다. 풍수연구로 우리나라 대학 지리학과에서는 최초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몽일씨도 풍수는 애니미즘, 샤머니즘, 불교, 유교 등 어느 사상과도 상충하지 않았다고 확언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선의 자생풍수는 왜 그렇게 많은 주변 사상을 포섭하였을까. 그것은 도선 풍수의 목적이 땅의 이치를 이해하고 그럼으로써 땅과 그 땅에 의지하여 살고자 하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확정짓고자 하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즉 어떤 논리체계를 만들고 거기에 땅을 투영하여 적부나 진부를 판별하려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땅과 인간사이의 상생, 조화관계, 다시말해 풍토적응성(風土適應性)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까닭에 그의 풍수에 어떤 사상이 끼어들었느냐 하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일이 아닌 것이다. 도선 풍수에서의 땅 사랑은 그런 근본적인 인식 속에서 출발이 된다.

명당이니 승지니 발복의 길지니 하는 것은 도선 풍수의 본질에서는 너무나 멀리 떨어진 개념들이다.

결함이 있는 땅에 대한 사랑이 바로 도선 풍수가 가고자 하는 목표이다. 그것이 곧 비보풍수이기도 하다. 도선 풍수는 땅을 어머니와 일치시킨다. 어머니인 땅이다. 그 어머니의 품안이 우리의 삶터가 된다.

만약 어머니의 품안이 유정하며 전혀 문제가 없는 자모의 표본 같은 경우라면 어느 자식이 효도를 마다할 것인가. 그것은 효도도 아니고 당연한 되갚음의 의미밖에는 안 될지도 모른다. 좋은 어머니는 그 자체로서 완벽 지향적이고 따라서 이상형이다. 현실에 완벽이라든가 이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어머니라도 얼마만큼의 문제는 지니고 있는 법이다. 피곤하실 수도 있고 병에 걸리셨을 수도 있으며 화가 나 계실 수도 있다. 우리는 그런 어머니의 품안도 생각해야 한다. 도선 풍수는 바로 그런 완벽하지 못한 어머니, 우리 국토를 사랑하자는 땅에 관한 지혜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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