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중의 오지 빼어난 경관
빨치산 슬픈 역사 함께 간직

최근 영암과 장흥, 강진의 군수들이 모여 삼군봉으로 명명한 곳은 해발 490m(구글어스 측정 기준)의 야산이다. 주변에 수많은 봉우리를 거느리며 세곳의 행정구역이 교차하고 있다.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이 영암은 영암읍 한대리 한대마을이고 강진은 옴천면 황막리 동막마을, 장흥은 유치면 관동리 관동마을이다. 세 마을 모두 각 지역에서 오지중의 오지로 6,25전쟁때 빨치산이 가장 왕성하게 활동한 곳이기도 하다.
3개 군은 이 일대에 정자와 산책로 등 탐방 편의시설을 설치하고 영암의 경우 이곳에서 가까운 금정면 뱅뱅이골등과 연계할 방침이다.
영암읍 행정구역인 한대마을은 지금은 10여가구가 살고 있지만 30여년전까지만 해도 100여가구가 살았던 큰 마을이었다. 마을입구에는 지금도 ‘한대초등학교’ 건물과 터가 남아 있다.



김순임(79) 할머니는 “선생님들이 한대초등학교로 발령받으면 영암읍으로 간다고 좋아 했다가 와서보면 산골중에 산골인지라 한숨을 많이 쉬었다”고 웃었다. 유치면과 맞닿아 잇는 한대마을은 빨치산의 주요 활동무대였다.
한대마을 주민들은 일명 뒷까끔이라고 불렀던 둔덕재를 넘어 영암읍장을 다녔다. 뒷까끔을 넘으면 장암마을로 연결됐다. 걸어서 읍장에 갈때는 새벽 3시에는 나서야 아침밥 먹을 때쯤 장에 도착했다. 주민들은 시장에서 주로 산나물을 팔았다.
한대마을과 불과 5분 거리인 장흥 유치면 관동마을은 하천을 두고 집들이 산재해 있다. 삼군봉과 가장 가까운 곳에 10가구의 집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관동마을 주민 이동흠(52)씨는 “골짜기 마다 집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6.25때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마을주민들은 마을 뒷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를 정자봉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주민들은 유치장을 이용하기도 했지만 밤재를 넘어 병영장을 이용하기도 했다. 관동마을 사람이 산을 넘어 강진 동막마을로 시집을 갔고, 반대로 옴천 사람들이 관동마을로 시집을 온 경우도 있었다.
그만큼 두 지역의 교류가 적지 않았다. 관동마을 주변 계곡에는 곳곳에 숯을 굽는 곳이 많았다. 숯을 만들어 인근 병영장이나 유치장에 내다 팔았다.
관동마을에서 강진으로 넘어가는 도로를 타고 밤재터널을 지나면 강진군 옴천면 행정구역이다. 차량으로 5분 정도 이동하다 북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황막리가 나온다. 황막리 입구에서 한참을 들어가면 동막마을이다.
동막마을 역시 한때 50여가구가 살았으나 지금은 10가구도 되지 못한다. 이곳에서 삼군봉을 가장 가까이서 조망할 수 있다. 마을사람들은 삼군봉으로 명명된 곳을 활성산이라 부르고 있었다. 주변에 호굴재와 밤재가 있었다. 밤재를 넘어온 장흥 관동마을은 동막마을앞을 지나 병영장을 다녔다.
동막마을은 6.25 전쟁때 마을이 전소되는 피해를 입었다. 밤재를 넘어 빨치산들이 수시로 마을을 넘나들자 경찰이 마을을 소개해 버린 것이다.
박흥곤(52)씨는 “예전에는 산에 나무를 하러 많이 갔지만 지금은 숲이 우거져 밤재를 가본지가 오래됐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