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척의 배가 드나들던 옛 포구엔 정적만이…
그대, 길을 아는가?

연암 박지원은 청나라 여행 도중 강을 건너면서 묻는다. “그대, 길을 아는가?” 그리고 이렇게 답한다. “길이란 알기 어려운 게 아닐세. 바로 저편 언덕에 있거든. 이 강은 바로 저들과 우리의 경계로서 언덕이 아니면 곧 물이지. 사람의 윤리와 만물의 법칙 또한 저 물가 언덕과 같다네. 그러므로 길이란 다른 데서 찾을 게 아니라, 언덕과 물 그 ‘사이’에 있는 것이라네.” 길을 찾아 떠난 나그네들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문답식 화두(話頭)이다. 그가 말한 언덕과 물 ‘사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연암은 스스로 ‘사이’에 있다고 한 그 길을 찾았던 것일까?
나 또한 길 위에서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그대는 왜 길을 걷는가? 어디로 가는가?” 연암처럼 자신 있게 대답할 능력이 아직은 내게 없다. 그것은 ‘왜 사는가?’와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과 같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답을 찾을 때까지 계속 걸어야 할 것 같다.
무송동 포구

수문 위에 서호 간척지를 조성했던 무송 현준호의 업적을 기리는 공덕비가 세워져 있다. 비의 뒷면에 한자로 쓰여 있는데 한글로 번역하여 조그마한 비석에 새겨 놓았다. 비에 새겨진 내용은 다음과 같다.
침랑 무송 현준호 서호 간전 기적비문
능히 한 지역에 이로움을 흥기시키고 해로움을 제거한 사람이 있어 비록 그 은혜와 이로움이 한때에 그쳤다 하더라도 한 지방의 사람들이 장차 다 집집마다 민요와 동요로서 노래를 하는데 하물며 한 사람의 몸으로 분발하여 만세에 이로움을 준 사람은 전국을 들어봐도 겨우 한 두 사람 밖에 더 있는가? 영암의 서호면에 후미진 곳이 있어 강물이 길게 흐르며, 갓도 끝도 보이지 않는 곳이 있으니 물고기와 게 등을 잡아내는 곳으로 크고 작은 배가 다니는 곳이 있는데 그 고을에 무송 현공 준호라는 아사(雅士)가 있는바 그는 넓고 활달한 큰 뜻을 가진 사람으로 거만(鋸萬)의 큰 재물을 가히 사사로운 재물로 여기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베풀기를 좋아하여 한 지방이라도 윤택하게 하고자 바다를 측량할 토목기사를 부르고 인부를 모집하여 토석을 절취 운반하여 바다에 그 제방을 수십만 질이나 뻗어 쌓으니 높이는 십여만 자와 넓이는 육십여 자였다.

차츰 집안 사람들이 마음을 안정시키고 공은 비록 죽었더라도 그 사업만큼은 그칠 수 없어 이어서 준공하였다. 수 천 두락의 논을 개간하여 농사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칠·팔만석의 곡식을 얻을 수 있게 되니 고을과 이웃 간에 뜻이 있는 사람들이 서로 더불어 비를 세워 그 공적을 기록하기로 하였다. 아! 옛날 소동파와 진공은 항주 서호에 둑을 막아 그 이로움이 후세에까지 미쳤으므로 칭송을 하고 있으나, 저 현철하고 뛰어난 항주태수는 한 고을의 힘을 기울려 그 사업을 이루었으니 어렵지 않고 쉽게 이루었다 할 것이다. 그러나 공 같은 이는 한 고을의 힘도, 태수의 위엄도 없으면서 다만 맨손으로 경영을 하였으니 더욱 장하지 아니한가?

정유(1957)년 삼월에 광산 김문옥 글을 짓고 여산 송성용 글씨를 쓰다.
비문을 읽다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한 사람의 생애는 저 흘러가는 강물과 같다. 그러나 사람의 행적은 다르다. 강 속에 박혀 있는 암초처럼 물길(세월)을 따라 흘러가지 않는다. 무송의 행적은 후세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따라서 무송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그가 했던 행적은 아직까지 후세 사람들에게 상반된 모습으로 회자되고 있다.<계속>
글/사진=김창오 편집위원
영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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