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홍

가수 노사연은 ‘만남’이란 노래를 불러 소위 국민가수로서 손색없는 인기를 누렸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요즈음 망년회다 송년회다 하면서 모이고 있는 자리에 뒷풀이로 하고 있는 노래방에서도 노사연의 ‘만남’이 단골 메뉴로 등장하고 있는데, ‘만남’이란 노래는 언제 어디서든 낯설지 않고 우리들에게 감흥을 주거나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학생들의 졸업식장이나 결혼식장은 물론이고, 정년퇴직 기념행사장에서도 불리어지고 있는 ‘만남’이란 대중가요가 역시 우리나라 국민정서에 안성맞춤이라는 것을 노랫말을 통해서 보면 직감할 수 있다.
우리 만남은 우연히 아니야 /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
잊기엔 너무한 나의 운명 이였기에 / 바랄 수는 없지만 영원을 태우리
돌아보지 마라 후회하지 마라 / 아-바보 같은 눈물 보이지 마라
사랑해 사랑해 너를 너를 사랑해
못다 이룬 사랑에 대해서 바보 같은 눈물을 흘리지 않겠지만, 내 곁을 떠난 님을 영원히 잊지 않고 죽도록 사랑하겠다는 절규에 가까운 ‘사랑의 세레나데’ 를 음미해 보면, 여기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의 만남’에 대한 성찰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만남``이란, 단지 이성간의 만남만이 아니라 부모와 자식, 또한 형제간의 만남을 포함하여 친구들과의 만남 또는 스승과 제자간의 만남 등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루어지는 모든 만남의 대상을 총괄하여 일컫는 표현이라 하고 싶다.
그런데 이러한 만남은 그냥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필연적이건 우연적이건 간에 반드시 인연이 존재한다. 여기서 필연적 인연은 우연적 인연이라는 1차적 과정을 거쳐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다시 말하면 선연(善緣)이 됐던 악연(惡緣)이 됐던 간에 현실적으로 ‘만남에 대한 수용적, 긍정적인 관계가 설정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요즘처럼 단풍잎이 지고, 초겨울 찬바람이 스산하게 불어올 때면 한번쯤 더 읽게되는 50 여년전 노작가 피천득의 수필 ‘인연’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떠올리며 생각해 보면 더욱 절실해 진다.
“그리워하는데도 한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얼핏보면 만날 수 없는 안타까움만을 얘기한 듯 하지만 곰곰히 생각하면, 더욱 절실하고도 오묘한 사랑의 고백서가 담겨져 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요즈음에는 “3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해도 부족할 것 같은, 초스피드 시대를 살아가는 이 마당에, 한번쯤 여유롭고 넉넉한 마음으로 우리들 ‘만남’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 그 소중함을 느껴 봄이 어떨까.
불경(佛經)에서는 가장 길고 영원하며 무한한 시간의 단위로 ‘겁’(劫)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겁’이라 하면, 사방 40리의 성안에 겨자씨를 가득 채워놓고, 100년에 한 알씩 집어내어 그 겨자씨가 다 없어지는데 필요한 시간보다도 더 긴 시간을 말하는데, 겁과 관련하여 ‘만남의 인연’을 확률로 표현하는 내용이 있어 소개 하고자 한다.
같은 나라에 태어난 것은 1,000겁에 한번, 하루 길을 동행하는 것은 2,000겁에 한번, 하루 밤 함께 묵는 것은 3,000겁에 한번, 부부관계로 맺어지게 되는 것은 8,000겁에 한번, 형제로 만나는 것은 9,000겁에 한번, 부모나 스승으로 모시게 된 것은 10,000겁에 한번의 확률이라고.
여기서 나타난 만남의 인연을 보게되면, 부부보다는 형제간의 만남이, 형제보다는 부모나 스승과의 만남이 훨씬 확률상으로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고, 특히 부모나 스승과의 만남은 확률상으로 동일시 했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한 해가 저물어 가는 길목에서 우리들 ‘만남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겠다.
그리고 우리들 만남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고 인식하여 우리들 모두의 만남이 부질없는 만남이 아니고 ‘아름답게 꽃 필 수 있는 뜻있는 만남’이 될 수 있도록 스스로 노력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