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빛 노을 삼켜버린 들녘


▲ 뒷동산에서 내려다본 동호마을의 봄들
동호마을 뒷동산에 올라 주변 풍경을 둘러보았다. 너른 들녘이 마을 앞과 옆으로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모내기를 하기 위해 가득 담아놓은 논물이 산들바람에 출렁거린다. 언둑 너머로 새롭게 생긴 간척지에도 논물이 가득하다. 때마침 은적산 너머로 물드는 석양빛이 논물에 반사되어 온 들녘이 빠알갛다. 저 들녘 위로 석양빛을 받으며 휙휙 날아다니는 제비들을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나 웬일인지 제비 한 마리 볼 수가 없다. 특히 이 마을이 제비형국의 마을이어서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제 제비가 강남에서 돌아올 마음을 품지 못할 만큼 환경이 오염된 것일까?

마을 주민인 최석연씨는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직후 소년단 창단과 함께 불리어졌다는 ‘동호소년단가’를 보여주셨다. 전남대에서 재직했던 고 최석진 교수가 작사 작곡했던 곡이라고 한다.

동호소년단가

1. 동쪽에 솟아있는 월출산의 기상을
받아서 자라나는 동호 소년들
미래를 약속하는 고고의 소리
희망을 찾아가며 전진을 하자.

2. 서쪽에 주렁 파도 가슴을 스쳐가며
참답게 자라나는 동호소년들
양양한 전도가 굳게 맺히는
그날을 바라보며 돌진을 하자.


느릅나무 당산이 있는 오돈재는 동호마을의 자랑거리이다. 네 칸 팔작지붕인 오돈재의 단아하고 소박한 자태도 볼만 하지만, 선조들이 남긴 상량문의 문자향 또한 대단하다. 오돈재 상량문은 영암 문헌집에도 실려 있다. 이 글을 보면 옛 조상들이 집을 지을 때 얼마나 겸손한 마음을 지녔는지 느낄 수 있다. 오돈재는 삼강오륜의 ‘오륜’에서 나왔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오륜을 잘 지키고 서로 우애를 돈독히 하자는 뜻에서 당호를 ‘오돈재’라고 했다.

 

=오돈재(五敦齋) 상량문=

천지가 개벽하여 십의의 큰 길이 그 극에 돌아와 있으니
오칸 중옥을 경영하여 오돈재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지었네

인륜에 근본하였으니
즐겁도다 여러 사람 힘이여
오직 공손하게 오륜의 가르침을 생각함은
먼 옛날에 요임금 순임금 때부터였네

인성은 한가지로 이덕을 좋아하나

▲ 오돈재 현판

도를 통함은 스스로 경서에서 얻은 것이네
백성은 때에 따라 극명하게 변하는 것이니
불손할까 하여 오교를 공경스럽게 폈네
그러나 풍속은 쉽게 퇴색하고 변하니
임금과 신하가 서로 경계하였네
하물며 남녀가 음탕하여지니
또한 이는 중국의 변방족이었네
우주의 기둥과 들보 몇 번이나 부러졌던고
백성들은 반석같이 편히 살기 어려워졌네

우리 탐진의 성손을 생각하면 백부의 유언이 울적하게 탄식되고
영암 이 동호리에 부쳐 살아오면서 중엽에 옛 전자리 다행히 도둑 면하였도다
몸은 말세에 당하였으나
우리는 옛 어른을 생각하네
북쪽 부자와 남쪽 가난뱅이의 모든 구경거리의 세를 말하지 말게
이지경 저지경에 시하의 시 모으기는 없다가도 있는 것이네

격식을 맞추어 집을 짓자고 말하는 것은
드디어 일가가 모이는 장소로 하고자 함이네
앞면의 형세를 이미 살펴보고
여러 사람의 의견이 일치하여
추녀와 기둥 툇마루등이 툭 틔였는데 긴 물줄기 천이랑에 흘러 들어오고
평고자와 대청마루 바다쪽으로 곧게 늘어져 햇빛은 여덟자 표주에 휘영하네

▲ 탐진최씨 문각 오돈재 전경
순박한 옛날 풍속을 만회하고
돈후한 세상 이룰 것을 기하네
친의의 차례별로 춘하추동 강신하며
유식하고 장수하여 서전의 이전편 읽으리
조용히 축하칭송 잘 부쳐
긴 들보를 드는데 돕는다

어기어차!
들보를 동쪽으로 던지려하니
요순시대 백성도 우리의도 가운데 있었네
청하여 월출산 달 떠오른 것을 보니
차디찬 연못에 가을빛은 예나 지금이나 한가지네

어기어차!
들보를 서쪽으로 던지려하니
은적산 천봉우리 멀리에 희미하네
나 홀로라도 깨끗함이 정녕 본디의 뜻이니
기린과 봉황이 쓰러져도 또한 슬픔 견뎌보리

어기어차!
들보를 남쪽으로 던지려하니
서호강에 봄철 물이 쪽빛같이 푸르구나
그 가운데 사는 이치 살펴서 알게되니
이는 필시 하늘과 땅 사이에 모든 사람 적셔주리

어기어차!
들보를 북쪽으로 던지려하니
북두칠성 있는 곳이 황극과 같구나
이륜을 쓰지 않으면 영원히 다른 곳으로 향하리니
천고에 준칙삼아 서로서로 전해가리.

어기어차!
들보를 위로 올리려하니
하늘은 말없으나 도심은 기네
사람이 묻고자하는 밖의 일은 가르치지 말게나
복과 선 그리고 화와 음의 영향이 있으리

어기어차!
들보를 아래로 내리려하니
꽃나무 섬돌과 뜰이 지극히 소쇄하네
봄바람을 넉넉히 얻어 온 집안이 풍요하니
다만 공평균일하게 있어 적은 것 근심없네

엎드려 원하옵건데 상량을 한 이후로는
기초가 공고하고 문호가 더욱 번창하여
일가간은 합심하여 몸소 어짊을 행하고
종중에 은혜되게 자자손손 바뀌지 말고 백세토록 이끌어 주시고
의를 쫓아 사사물물에 실로 오륜행실이 나타나게 해주옵소서

계해년(1924년) 3월 22일
영욱 호는 남은

이제 동호마을 떠나 맞은 편 모정마을을 향해 길을 떠난다. (계속)

글 / 사진 김창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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