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 벚꽃 백 리 길[121]
■ 구림마을(30)

도선 발자취 따라 구림마을 한 바퀴
도선국사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구림마을 여기저기에 산재한 도선 관련 유물·유적을 만날 수 있다. 도선 어머니 최 씨 처녀가 빨래하다 물에 떠내려온 오이를 먹었던 장소인 ‘조암(槽巖)’, 도선국사 탄생지 ‘최씨원’, 아기 도선을 버린 바위 ‘국사암’, 도선이 어린 나이에 출가해서 살았다는 ‘문수암’, 도선이 창건했다는 ‘도갑사’, 도갑사에 세워진 ‘도선국사비문’, 상대포에서 배를 타고 가던 중 옷을 걸어 놓았다는 ‘백의암’, 바위에 버려진 아기 도선을 보호하러 비둘기가 날아간 ‘비죽’ 등 도선국사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와 유물·유적이 가득하다.
특히 성기동 최씨원에서 문수암터에 자리한 문산재까지 이어지는 아기자기한 숲길은 월출산 둘레길 중에서도 가장 고즈넉하고 싱그러운 산책로로 손꼽힌다. 소나무, 동백나무, 산벚나무, 단풍나무 등이 울창한 이 오솔길은 구림마을 주민들 뿐만 아니라 인근 마을 주민들의 건강 산책로로도 인기가 높다. 문산재 위 미륵불상(문수보살상)을 친견한 후 정상의 월대암에 올라 사방을 바라보면 그 호쾌한 풍경에 반하지 않을 수 없다.

도선체험 탐방로, 왜 필요한가
한편, 도선 탄생지 최씨원에서 남송정마을을 거쳐 서호정마을 국사암에 이르는 길은 구림마을의 유서 깊은 고택과 정겨운 돌담길을 만나 예스러운 정취에 푹 빠져볼 수 있는 매력적인 탐방길이다. 마을 곳곳에 회사정, 죽림정, 간죽정, 호은정 등 고풍스러운 정자가 구림천을 따라 늘어서 있으며, 홍랑과의 사랑으로 유명한 고죽 최경창 기념관과 이순신 장군의 편지를 새겨놓은 ‘약무호남 시무국가’ 기념비도 만나볼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도기박물관과 하정웅미술관을 방문하여 품격있는 예술작품을 차분히 감상할 수도 있다. 외지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어떻게 하든 마을 안으로 끌어들여야 구림마을의 진면목을 널리 알릴 수 있고 주민들이 운영하는 한옥 민박이나 마을 카페도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도선국사의 발자취를 찾는 전국 풍수지리학자들과 불교 신자들의 ‘성지순례 활동’도 기대해 볼 만하다. 

국사암과 태호공 조행립
지난 호에서 문곡 김수항과 그의 아들 김창립이 국사암에 대해 읊은 시를 감상해보았다면, 이번에는 창녕인 조행립이 읊은 국사암 관련 시를 살펴보고자 한다. 
조행립(1580~1663)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본관은 창녕이고 호는 태호(兌湖)이다. 시문집으로 ‘태호집’을 남겼다. 광산인 사계 김장생의 문인으로 태인현감, 금천현감, 익산군수, 온양군수 등을 역임했다. 그는 만년에 외가인 구림 서호로 돌아와 회사정을 중창하고 향약을 만들어 풍속을 교화하고자 노력했으며, 1657년에 지역의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성기동에 마을서당을 지어 운영했다.
이것은 나중에 문수서재(문산재)의 모태가 되었다. 
그가 남긴 문집에는 국사암과 관련된 여러 편의 시가 등장한다. 국사암 앞에 거처를 마련하여 살면서 느낀 감회를 읊은 시다.

낭주(朗州)의 고사(古事)
낭주의 흥폐를 자세히 알기 어렵지만
가는 곳마다 앞다투어 월출산을 일컫네
하물며 이 국사암이 아직도 남아있으니
천 년을 이어온 풍경이 지금까지 보이네

한편, 태호공 조행립은 국사암을 구암(龜巖)이라고도 불렀다.

구암에 살 곳을 정하다(卜居龜巖)
내 사는 집이 구암 옆에 있어
구름과 연기 좌우에 둘러있네
옥병풍이 위아래로 에워싸고
물새가 오가면서 소리치네
동쪽으로 도갑사의 승경과 닿고
서쪽으로 처사의 호수가 비껴있네
아무리 바라봐도 질리지 않으니
오직 취하고 길게 탄식할 뿐이네

소화산 속에서 읊다
이번에 외딴 소화산의 밑에 와서 / 今來小華孤山下
서호에 자주 간 것도 뜻이 있었네 / 頻往西湖意亦存
도선이 구암에서 처음 자취를 떼었는데 / 詵老龜巖初發迹
모두가 우리 집이 후손이라고 말을 하네 / 皆云吾宅後子孫
 
소화산은 미암면 선황리에 있는 산으로 조행립이 말년에 별장을 짓고 머무르다가 이곳에서 운명했다. 그는 구림 국사암(구암) 앞에 있는 본가와 선황리 별장을 오가며 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하면서 지냈는데 유독 집 가까이에 있던 회사정을 즐겨 찾았다. 그의 문집에는 회사정과 주변 경치를 노래한 시가 수십 편이 넘는다. 아래 시에서는 세속을 초탈한 도인의 풍모를 보인다.

회사정에서 짓다
구암(국사암)이 비록 내 집 뒤에 있지만
회사정에 단숨에 갈 수 있네
서호 가에는 하얀 돌이 깔리고
고기 잡는 배는 죽도 옆에 있네
두건을 벗은 채 도갑사를 찾아가
달을 불러 술잔이 오기를 기다리네
누가 나를 허약한 사람이라 하는가
이제는 늙은 신선이 되어 보려네
<출처: 국역 태호집/조행립/태호선생 기념사업회>

태호공 조행립은 국사암(國師庵)을 줄여서 사암(師庵)이라고도 불렀다. ‘사암유거(師庵幽居)’(사암에서 한가하게 살다)라는 제목으로 6수의 연작시를 지었는데 다음 호에 소개하기로 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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