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 벚꽃 백 리 길[119]
■ 구림마을(28)

약 1,500년 전 구림을 중심으로 한 지도. 당시에는 은적산이 섬의 지형을 이뤘고 월출산 아래 영암읍과 덕진면 영보리, 군서면 주암마을도 바닷가 마을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약 1,500년 전 구림을 중심으로 한 지도. 당시에는 은적산이 섬의 지형을 이뤘고 월출산 아래 영암읍과 덕진면 영보리, 군서면 주암마을도 바닷가 마을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세월 따라 상전벽해가 되다

지도를 보면 바닷물이 월출산 기슭 아래까지 깊숙이 밀려 들어와 철썩거렸음을 알 수 있다. 영암읍과 덕진면 영보리도 바닷가 마을이었다. 삼국시대를 지나면서 마을 주변 갯벌은 조금씩 조금씩 간척사업을 통하여 논으로 변해갔다. 구림마을 주변 역시 세월을 거치면서 상전벽해의 모습을 마주하게 되었다.
서호 입구에는 남해와 서해로 이어지는 번창한 포구였던 상대포가 있었고, 주지봉 아래에는 도선국사 탄생지인 성기동 최씨원과 조암(빨래터)이 자리했다. 1657년 태호공 조행립에 의해서 성기동에 세워진 성기서재는 1684년에 월대암 아래의 문수암 터에 ‘문수서재’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하여 구림의 서당 역할을 톡톡히 했다. 문수서재는 나중에 ‘문산재’라는 이름을 얻었다. 구림을 뱃길로 이어주던 서호는 1943년 무송 현준호가 성재리와 양장리 구간에 제방을 쌓아 광활한 간척지로 변했다. 지도상의 갯벌로 표기된 부분은 현재 모두 육지로 변했으며, 1981년 영산강 하굿둑을 건설함으로써 덕진만 대부분도 간척지로 변모했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월출산은 바다로부터 멀리 벗어나게 되었다. 

信甫賦得鳩林四章示余。余亦和之。
(신보가 ‘구림사장’을 지어 나에게 보여 주기에 나도 화운하였다.)

1722년 겨울, 월출산과 구림마을을 답사한 담헌 이하곤은 신보 송상윤(1674~1753)이 지은 시에 화답하는 시를 4수 남겼다. 구림마을을 읊은 네 편의 시로 신보가 지은 ‘구림사장’이라는 제목의 시에 화운하였다. 조선 후기 구림마을 풍경과 감회를 노래하고 있는데, 마지막 4장에서는 성기동 출신의 도선국사에 대한 평가를 담고 있어서 눈길을 끈다. 이하곤은 ‘성기동 기운 모여 도선 태어나 왕건의 스승이 되었지’라고 읊으면서도 유학자답게 불교 승려인 도선의 도참설에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瞻彼鳩林 可耕可居 綠竹繞屋 長松蔭渠
跂玆釣石 俯觀游魚 優游終老 以諷我書

저 구림 바라보니
밭 갈며 살 만하네
푸른 대숲이 집 에우고
큰 소나무가 도랑 덮었구나
낚시하는 바위에 올라서서
헤엄치는 물고기 내려다보고
여유롭게 늙어가며
내 글을 읊으리라

會社之左 溪流其潺 倚杖松下 可鑑吾顔
豈惟溪流 明湖右環 倦言曹子 願与分山

회사정 왼쪽에
시냇물이 졸졸 흐르니
소나무 아래 지팡이 짚고 서면
내 얼굴 비춰볼 수 있네
어찌 시냇물 뿐이랴
맑은 호수가 오른쪽에 둘러있네
천천히 조씨에게 말하노니
함께 산을 나누고 싶구나
*조씨 ; 창녕인 조일귀를 지칭함

明湖右環 亦旣滉瀁 月出涓秀 縹緲其上
西湖靈鷲 可与爲兩 誰繼蘓白 爲湖山長

맑은 호수가 오른쪽에 둘러있어
또한 이미 깊고도 넓은데
아름다운 월출산이 
아스라이 그 위에 있네
서호의 영취산과 
짝이 될 만한데
누가 소식과 백거이 이어
호수와 산의 좌장이 될까


東峰特秀 厥惟聖基 鍾生詵公 爲王建師
功雖統三 俗未變夷 讖說多妄 吾不取斯

(출처: 두타초 4권 327쪽/이하곤/문진출판사)

동쪽 봉우리 특히 아름다우니
그곳이 바로 성기동이라
그 기운 모여 선공(도선국사) 태어나
왕건의 스승이 되었지
비록 삼국을 통일했으나
오랑캐의 풍속 바꾸지 못했네
도참설은 허황된 내용 많으니
나는 이것을 취하지 않노라

없는 것 꾸미기보다는 있는 것부터 잘 활용해야

이처럼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구림을 답사하면서 남긴 시문은 구림마을의 아름다운 자연풍광과 고색창연한 유물유적에 더하여 문자향 서권기의 인문학적인 정취를 더해주는 소중한 유산이 아닐 수가 없다. 없는 것을 억지로 만들기보다는 선조들이 남긴 소중한 기록과 유물·유적을 면밀하게 조사 발굴하고, 그것을 토대로 오늘날 트랜드(추세)에 맞는 콘텐츠를 개발하여 잘 활용하는 것이 지역문화 창달과 문화관광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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