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 벚꽃 백 리 길[111] ■ 구림마을(20)

문산재 월대암에서 내려다본 구림마을 늦가을 풍경 – 구림마을은 열두 동네로 이루어진 큰 마을이다. 서쪽 은적산 아래로 펼쳐진 너른 평야는 원래 서호(西湖)라고 일컬어진 바다였는데 무송 현준호가 1943년에 갯벌을 막아 간척지를 조성했다. 구림리 신흥동에서 모정리와 양장리를 거쳐 신기동에 이르기까지 소나무 숲이 길게 늘어진 구릉 동쪽에 형성된 너른 들녘은 1540년 월당 임구령이 제방을 쌓아 조성한 간척지로 그 이전에는 역시 바다였다. 바닷가 마을이었던 구림은 이제 북쪽과 서쪽에 커다란 평야를 마주한 농촌으로 변모했다.

낭호신사에 기록된 도선국사

구림마을의 진면목(眞面目)을 노래한 귀한 가사(歌詞)가 있으니 바로 박이화가 지은 낭호신사다. 구림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낭호신사를 읽고 연구해야 한다. 구림마을 기행은 낭호신사의 노랫말을 따라가는 여정이다. 박이화의 낭호신사에 도선국사가 강조되고 왕인박사는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왕인은 영암 구림에 있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당시(4세기) 왕인이 살았던 공간은 한반도가 아닌 중국의 대륙 백제였다. 백제의 본국이 대륙에 있었기 때문이다. 대륙 백제로 망명한 한나라 유방의 후손인 왕인이 천자문을 들고 간 곳은 현재의 일본 열도가 아니라 중국 동해안과 섬을 의지하며 살고 있던 대륙의 왜(倭)였다. 지금의 타이완(대만)이 당시의 왜(倭) 중심지였다. 
1932년 일본 승려 아오키가 도선국사 전설을 간직한 백의암을 왕인 도일 전설로 날조하여 그 곁에 왕인 동상을 세우기 위해 간사한 술책을 꾀한 후부터 그야말로 황당무계한 구림마을 왕인 탄생설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일제가 내세운 왕인은 대일 항쟁기 때 조선인들에게 ‘내선일체 황국신민’ 이데올로기를 강조하기 위해 일제가 불순한 의도로 조작하여 퍼뜨린 허상일 뿐이다. 이제는 그 왜곡 날조된 환상에서 깨어나 역사적 사실과 진실을 직시할 때이다. 구림 지명 원조인 도선의 마을로, 공동체 정신과 의기가 넘치는 선비마을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영암이 살고 구림이 산다.


박이화(朴履和) (1739~1783)는 조선 후기 문신으로 본관은 함양이고 호는 화이(和而), 또는 구계(龜溪)다. 구림에서 태어나 평생동안 고향에서 살면서 향토 교화에 힘썼다 문집으로 《구계집》이 있고 가사로 〈랑호신사〉 외에 〈만고가〉가 있다. 

낭호는 낭주(지금의 영암)와 서호(서구림리에 있는 호수)에서 따온 이름으로 영암군 군서면 구림마을을 가리키며, 낭호신사는 이 마을에 대한 새로운 노래라는 뜻이다.

박이화의 문집인 《구계집》과 필사본《랑호신사》에 실려 있다. 내용은 구림 열두 마을의 역사적 유래 및 주요 인물, 그 인물들이 세운 집과 정자 등을 두루 거론함으로써 마을의 품격이 빼어남을 자랑하는 것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여기 국한문 혼용체로 기록된 원문 대신 이해하기 쉽게 현대로 해석된 낭호신사 본문을 소개한다.


호남의 명승지는 낭서가 제일이라
바위가 신령하니 읍 이름을 영암이라
월출산 억만 장이 하늘에 솟아올라
천황봉이 서남하고 주지봉이 남서하니
구름 기운 양양하고 산세는 빼어나다

그 아래 열두 마을 명승지 되었도다
마을 터는 뉘 정하고 마을 이름 뉘 일렀나
관음사 폭포수에 동지섣달 외가 솟아
빨래하는 아이 계집 자식 배기 기이하다
신인이 탄생하니 승명은 도선이라

지리를 통달하여 산맥을 살펴보니
도갑산이 주산이요 은적산이 안산이라
북두칠성 본뜬 바위 북현무를 둘러 있고
고산으로 쌓은 재는 남주작이 되었도다
봉황이 알 품으니 황산이 높이 나고
목마른 말 물 마시니 조암이 뚜렷하다

십 리 연파 서호강이 눈썹같이 둘렀는데
쌍룡이 구슬 물고 수구를 잘랐으니
경치도 좋거니와 살만도 하겠구나
옛 이름 쌍와촌은 돌을 보니 분명하다
뒤에 이른 구림촌은 비둘기의 숲이라네
국사가 놀던 바위 몇백 년 자취인가

예로부터 이른 말이 세 박씨의 옛터로다
설립한 삼성바지 남포 함양 반남이라
문호는 창성하고 자손이 번성하니
여러 성이 이웃하여 촌락을 벌였으며
무릉도원 군자 마을 집들이 몇 집인가

예의를 숭상하니 동서에 배움터라
글도 하고 활도 쏘니 문무 함께 출입한다
번화도 하거니와 풍류남자 많을시고
요월당 높은 집은 임목사의 별채로다
연못에 배를 타고 형제끼리 노는구나
강호 백발 두 그림자 쌍취정이 분명하다

닷새에 지은 정각 이름을 간죽이라
오한공이 창건하고 고광공이 중수하니
백면서생 유생들이 강학하는 소리로다

마을 아래 연원수는 남은 물결 바삐 보내
굽이굽이 시내 되어 평원을 둘렀는데
그 아래 좋은 정각 회사정이 아름답다
오색단청 칠분도로 누각 들보 꾸몄으니
연년가무 사시잔치 노소가 다 모일 때
의관을 정제하니 풍광이 아름답다
현판을 둘러보니 몇 군자의 감회던가
태호공 조선생은 사당 배향 되었구나

그 아래 여러 곳집 수천 금이 출입한다
시내 남쪽 바라보니 우아한 육우당은
한 형제 여섯 벗이 우애하는 정사로다
반송은 무성하고 돌무더기 쌓였는데
호젓한 취정자는 주인이 누구던가

물가의 층암절벽 상하대를 쌓았으니
육칠 명 모든 벗님 음풍영월 하는 데라
사안의 강좌풍류 초당 마당 바둑 두고
소동파의 황주 설움 서호가 이곳이라
바둑판 밀쳐두고 배를 타고 내려가니
푸른 물 속 작은 섬은 떨기 대가 둘러있고
해문 높은 바위는 백색이 생색이라
백구로 벗을 삼고 뱃노래로 이웃하여
물결을 거스르니 물 구경에 세월이라
물결같이 가는 세월 가는 줄을 뉘 알쏜가

죽순봉 높은 곳에 저 곳이 문산이라
한가한 문수암은 경승지도 무궁하다
도갑사 늦은 쇠북 백운 간에 소리하고
주룡의 저문 풍경 맑은 창에 비치도다

지역 안 좋은 천지 공부하기 제일이라
남사산 북사산에 과녁을 높이 걸고
기운 좋은 한량님네 활쏘기도 좋을시고

앞강과 뒷내에 물고기 살쪄간다
고기 잡는 소년들은 물고기를 잡아내니
버들가지 꺾어들고 행화촌을 찾아갈 때
춘삼월 꽃 계절에 온갖 꽃이 피었거늘
누각에 높이 올라 여러 이웃 살펴보니
예쁜 꽃이 몇 집이며 푸른 나무 몇 마을인가

차례차례 세어보니 작은 마을 무수하다
남송정 북송정은 남북으로 갈라 있고
동계리 서호정은 동서 이웃 되었도다
동정에 달이 밝고 고산에 매화 피니
달구경도 하려니와 봄소식을 전하리라

솔을 심어 정자하니 종송정이 분명하다
대 심어 수풀 되니 죽림정이 저곳이라
안용당 삼태암은 산도 좋고 물도 좋다
학림암 반월정은 터도 좋고 들도 좋다
그림 누각 가득하니 맑은 호수 즐비하다
낙양이 곧 여기라 어디든 승지로다
(하략)
<출처: https://gugeobucks.tistory.com/entry/가사문학사전21> 

저작권자 © 영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