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의 기대와 우려

죽정마을 여기저기를 답사하던 중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가 영암에 들어서게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월출산 생태탐방원’ 유치에 이은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대와 함께 걱정도 들었다. 최근 경남 김해의 ‘가야사 복원’ 사업 과정에서 일어난 역사 왜곡 사건과 현재 전라남북도와 광주시가 공동으로 주관하여 출간하기로 한 ‘전라도 천년사’가 식민사관에 입각하여 심각하게 마한과 백제의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실태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마한(馬韓)을 강조하기 시작한 우리 영암은 이러한 식민사관의 역사, 한반도 남부지방에 갇힌 ‘일본의 황국 식민 반도사관’으로부터 안전한 것인가? 중국의 광적인 ‘동북공정’의 역사 왜곡으로부터 안전한 것인가? 영암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에 전시될 삼한의 역사, 마한과 백제의 역사, 영산강과 영암의 고대역사는 일제강점기 때 우리 역사를 왜곡하고 조작하고 난도질한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대를 이은 이병도, 신석호가 양성한 역사학자들의 식민주의 ‘반도사관’과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 옛 동이(東夷)의 역사, 고조선의 강역, 광활한 대륙과 해양을 아울렀던 삼한과 삼국(고구려·백제·신라)의 영광스러웠던 역사를 오롯이 담아내고 재현해낼 수 있을 것인가? 김해 ‘가야사 복원’ 사업에서 보듯이 과장과 조작이 심한 「일본서기」에 나온 인명과 지명을 근거로 자칫 ‘임나일본부’설을 우회적으로 뒷받침하는 오류를 범하지는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치열한 한·중·일 역사전쟁

지금 한·중·일 삼국은 역사전쟁 중이다. 중국은 동북공정이라는 이름 아래 동이(東夷)족의 삶터였던 고조선과 삼한의 역사뿐만 아니라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역사를 심하게 왜곡시키고 있으며, 한복과 한글마저 중국 것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펴는 문화 왜곡, ‘문화공정’ 만행을 일삼고 있다. 

 일본 또한 가관이다. 온갖 거짓과 조작으로 얼룩진 역사서인 「일본서기」 내용을 근거로 야마토 왜 정권 신공왕후가 369년에 신라와 가야를 공격하여 가야를 정복하고 또 전라도를 정복한 후 임나일본부를 설치하여 가야뿐만 아니라 영산강 유역을 비롯한 전라도를 200여년 동안 지배했다고 궤변을 늘어놓고 있으며,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에 저지른 잔악 행위를 부정하고 끊임없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은 삼한을 정복했다는 일본서기의 신공황후 신화를 근거로 정한론을 펼쳐왔고 현재도 포기한 적이 없다.

 그 뿌리는 일제강점기에 한국사 왜곡 전담기관인 ‘조선사편수회’의 몇 가지 기본 방침에서 비롯된다. 1. 삼국사기 초기 건국 불신론 - 일본보다 조선의 역사가 빠르면 안 된다. 2. 고려는 조선보다 작았다.(쓰다 소키치) 3. 임나일본부는 한반도 남부다. 3. 독도, 대마도, 오키나와는 일본 땅이다. 대마도는 잊게 독도를 자주 언급한다.

 나가 미치요(那珂通世 1851~1908)의 가라고(加羅考), 아유카이 후사노신((鮎貝房之進 1864~ 1946)의 일본서기 조선지명고,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 1873~1961)의 임나강역고, 이마니시 류(今西龍 1907~1943) 기문·반파고, 스에마쓰 야스카즈末松保和 1904~1992)의 임나흥망사 등이 대한민국 역사를 날조하고 왜곡한 대표적인 경우인데, 이 식민사관을 그대로 이어받아 해방 후 역사학자들에게 이식한 대표적인 자들이 이병도와 신석호이다. 우리나라 역사학계는 이들의 영향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임나7국이니, 임나4현이니, 반파·기문이니, 강진·해남 침미다례니 하는 식민사학자들의 매국 행위와 역사 왜곡 행위가 그 도를 넘고 있다. 어렵게 유치한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를 이러한 일제 식민사학자인 이병도의 추종자들에게 맡긴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가둔 삼한의 역사 

이들은 삼한의 역사를 철저하게 왜곡하여 한반도 내에 가두고 밖으로 뛰쳐나갈 엄두도 못나게 했다. 고조선의 역사는 단군신화로 격하시키고 실제 역사가 아니라고 억지 주장을 펼쳤으며, 기원전 108년 중국 한나라가 설치했다는 낙랑군의 위치도 한반도 평양지역으로 조작했다. 삼한(마한·진한·진한)의 강역을 한반도 남부지역으로 한정시켜 한민족의 기상을 꺾으려 했으며, 삼한에 이은 고구려, 백제, 신라의 강역 또한 한반도 내에 가두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1870년대부터 일제는 첩자를 청나라와 조선에 보내 정보를 수집했고, 조선의 역사를 한반도 내에 가두기 위해 동북아 지도까지 조작했다. 결국 낙랑군 평양설이나 임나일본부설 등은 조선의 강역을 반도 내로 축소시켜야만 설득력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일본명치왕 군부는 조선과 청국 국경 지역의 지리를 변조하여 경계선을 동쪽으로 이동·확산 재배치한 습작 지도를 간행하고 대대적으로 유포했다. 
 
삼한의 강역은 사방 4천리였다

중국의 고서인 삼국지 위서 동이전과 150여년 후에 쓰인 후한서에는 삼한의 강역이 사방 4천리라고 동일하게 소개되어 있다. 하지만 일제 식민사학자들과 그 추종자들은 4천리에서 4자를 빼버리고 마치 금붕어를 어항에 가두듯이 삼한을 한반도 중남부 지방에 가두어 버렸다. 그리고 초중고 국사 시간에 학생들에게 반도사관을 강요한다. 이들은 각종 시험을 통해 대한민국 청년들이 역사의 지평을 넓히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청소년기에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대학입시 수능시험으로, 대학생들에게는 교원임용시험으로, 취업준비생들에게는 공무원시험과 각종 자격시험으로, 석박사 준비하는 대학원생들에게는 학위논문 제한으로 자신들이 가르치는 내용만 암기하게 만들고 청년들이 한반도 역사 영역에서 뛰쳐나가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그들의 카르텔은 놀라울 정도로 철저하고 강고하다. 한반도의 영역을 뛰어넘어 역사의 지평을 넓히려는 청년들과 뜻있는 국민들의 시도와 노력을 비웃으며 좌절시킨다. 환단고기와 같은 우리나라의 상고사를 다루는 모든 책들을 ‘국뽕’을 위해 위조한 책으로 폄훼하며 아예 다가가지도 못하게 원천봉쇄한다. 그들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중국의 여러 사서들, 일본서기 등 1차 사료를 제멋대로 취사 선택하고 견강부회하며 때로 확대 축소하고 심지어 조작까지 일삼는다. 그러면서 날조와 왜곡이 심한 일본서기 내용을 금쪽같이 떠받든다. ‘가야사 왜곡’이나 ‘전라도 천년사 왜곡’은 저 이병도의 추종자들에게 과업을 맡기는 순간 불을 보듯 정해진 결과물이었다. 

다음은 중국의 사서에 나오는 삼한의 강역에 대한 설명이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 한(삼한)은 대방군 남쪽에 있는데, 동쪽과 서쪽은 바다(큰 강, 큰 호수)를 한계로 삼고, 남쪽은 왜와 접경하니, 면적이 사방 4천리 쯤 된다. [한에는] 세 종족이 있으니, 마한, 진한, 변한이다. 

동쪽과 서쪽은 바다(큰 강, 큰 호수)를 경계로 하니 모두 옛 진국(辰國)이다. 마한이 [한족 중에서] 가장 강대하여 그 종족들이 함께 왕을 세워 진왕(삼한을 다스리는 왕)으로 삼아 목지국에 도읍하여 전체 삼한 지역의 왕으로 군림하는데, [삼한의] 왕의 선대는 모두 마한 종족의 사람이다.

영암 마한은 일제가 강요한 ‘반도사관’을 극복하고 보다 큰 세계로 나아가야
이제 영암은 미래로 발돋움할 수 있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우리는 이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한다. 일제가 남긴 식민사관을 온전하게 극복하고 영암 지역에 남아 있는 변질되고 날조된 역사 또한 바로잡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왜곡되고 축소된 역사의 지평을 다시 저 광활한 대륙과 해양으로 넓히고, 새로운 역사의 비전을 제시하는 중차대한 역할을 우리 영암이 수행해 내야 한다. 우리 민족의 뿌리를 간직하고 있는 삼한을, 그 가운데서 커다란 역할을 수행했던 마한을, 한반도 남쪽이라는 작은 영역에 가두어 놓아서는 안 된다. 한·중·일에 남아 있는 모든 역사서를 샅샅이 뒤져 1차 사료를 세밀하게 살피고 철저하게 교차 검증해야 한다. 이 과정에 현재의 양심적이고 의식 있는 강단사학자들과 함께 식민사학을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온 재야사학자들과 우리 역사에 관심이 많은 시민들 또한 대거 발탁하여 참여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현재 기울어진 역사의 운동장을 균형 잡게 하고, 상처받은 우리 역사를 올곧게 바로 세워 앞으로 대한민국의 역사가 걸어가야 할 방향을 미래지향적으로 새롭게 제시하는 영광스러운 땅, 영암으로 비상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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